2014년 10월 1일 수요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Daum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http://durl.me/3qz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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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한 사람의 30년전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적인 제도 아래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으며 서울의 큰 학교에서의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해 온 '한병태'라는 주인공은 어느 누구보다도 남부러울 게 없이 자랐다.

하지만 시골 작은 학교의 칙칙한 학교 건물과, 세수도 했는지 알아볼 수가 없는 선생님은 한병태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더욱이 적응 안 되는 것은 엄석대 급장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는 반 아이들의 굽실거리는 태도였다. 엄석대는 반에서 자신의 힘과 권력을 믿고 온갖 만행을 일삼으며 살아가는데, 한 아이의 라이터를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험을 대신 보게 하여 공부1등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이것은 엄석대의 지나친 독재 정권(?)이라고 생각한다. 한병태는 처음에 엄석대의 만행을 선생님께 알리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아이들은 한병태를 도와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병태는 점점 소외감을 느끼며 괴롭힘을 받는다. 그러다가 결국 엄석대에게 굴복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엄석대의 무리에 끼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한병태의 학교 생활은 피게 된다.
하지만 정당하게 받지 않은 권력은 언젠가는 무너지는 법이니, 6학년 담임으로 바뀌면서 석대의 생활은 반전으로 뒤집힌다.

무기력하고 학급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5학년 담임 선생님에 비해 6학년 선생님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학급에서 정의를 실현한다. 엄석대의 꼬투리를 잡고 아이들에게 자존심과 의지를 되살려 주면서 엄석대의 잘못을 실토 하게한다. 하지만 사실상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난 생각한다. 엄석대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서 굴복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석대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폭력까지 행사한 점은 교사로서의 자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엄석대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30년후 어른이 된 한병태는 학교 동창들에게서 엄석대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엄석대를 만나고 말았다. 엄석대가 형사들에게 잡혀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그리고 지금의 한병태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옆에서 술을 마시며 자신의 지난날 무기력함과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속한 학급에서 지배자와 피 지배자가 맞서는 정치적 권력 관계를 여실히 비추어 주는 인간 세상사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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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병태의 30여년전의 일을 회상한 것이다.

한병태는 도시의 좋은 학교에서 시골의 학교로 내려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첫날 반장 엄석대를 만나게 된다. 엄석대가 반장 이상의 아니 선생님 이상의 권력을 반에서 휘두르자 한병태는 그에 대항하려 했으나 대항하면 할수록 친구들은 자신을 따돌리고 선생님은 자기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자 결국은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그 해 12월초 기말 고사를 칠 때 엄석대는 박원하를 시켜 자신의 시험을 대신 풀게 하였다. 박원하에게 왜 이러느냐고 물어 보자 박원하는 오늘 수학이 자신의 차례였다며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엄석대가 자신의 띄워 주며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6학년이 되자 선생님이 바뀌면서 엄석대의 체제는 서서히 무너져 가며 민주주의 체제가 우리 반에도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 날 엄석대는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췄고 한동안 볼 수 없었다. 나는 커서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나온 상태라 실업자이다 어느 날 난 엄석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양팔이 경찰에게 잡혀 있었다.

그날 난 밤새도록 술을 마셨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박원하를 시켜 시험을 대신 풀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박원하 였다 해도 엄석대의 시험을 대신 풀어 줬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초등 학생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비유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엄석대와 한병태를 보면서 무력과 힘으로 약자를 억압하려는 엄석대에게 굴복하는 한병태의 모습을 보면 이런 모습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하면 안될 걸 알면서도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권력과 현실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며 힘있는 권력자에게 이용당하는 여러 개인의 삶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쓴 작가는 아마도 이런 점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을까? 라고도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우리 사회의 부정. 비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할 수 있었으며 이런 일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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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가 이문열 선생님이 지으신 소설이다. 5학년 때 국어책에 소설의 일부가 나왔었는데 그 때에는 일그러진 영웅이 한병태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6학년에 올라와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정말로 일그러진 영웅이 누구인가 한가지 의문점만을 가지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겨 갈수록 이 책 만의 알 수 없는 줄거리는 나를 흥분 속으로 빨려 들어 가게 만들었다. 사건은 한병태가 전학 오면서 시작된다. 서울의 방식에 길들여 진 한병태는 엄석대에게 길들어 져 있는 학급의 분위기에 못마땅해 한다. 이런 학급의 분위기는 한병태를 알 수 없는 반항의 길로 이끌어 갔는지도 모른다. 이런 한병태를 좋아할 리 없는 엄석대이다. 결국 한병태는 엄석대의 눈 밖에 나고 만다. 혼자 외로운 투항을 하던 한병태는 결국 엄 석대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엄석대의 만행이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엄석대는 떠나고 만다. 엄석대가 떠나 교실은 다시 민주적인 모습을 되찾는다. 그러나 26년 후 한병태는 엄석대가 경찰에게 잡혀 가는 것을 보고 만다. 결국엔 엄석대가 일그러진 영웅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엄석대만이 일그러진 영웅일까? 엄석대 그가 선생님 보다 강한 권력을 믿고 독재와 무력으로 통치하였을 때 그 누구보다도 더 아첨하고 엄석대의 모든 것을 맞춰 주던 한낮 엄석대의 졸개들에 불과했던 그들이 아무리 석대가 강요했다고들 해도 석대의 옆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던 그들이 조그마한 의리도 없이 석대를 배신했다는 것은 더 나쁜 것이라고 본다. 병태가 전학 왔을 때 가장 병태를 괴롭힌 것도 병태가 석대의 측근이 되었을 때 가장 부러워한 것도 그들이었다.

이렇게 행동하던 그들은 석대를 비난하였지만, 난 그들이 그 누구조차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그들이 학급의 임원이 되어 학급을 이끌어 나간다면 차라리 엄석대가 학급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결코 엄석대가 잘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엄석대가 독재와 무력이 아닌 대화, 협력, 타협으로 반을 이끌어 나갔다면 과연 엄석대는 그런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이런 아이들의 잘못도 크긴 크지만 선생님의 행동은 더욱 더 나쁘고 잘못했다고 본다. 한 학급의 담임 선생님이라면 아니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가져야 할 최소한의 관심과 사랑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학급의 선생님은 관심도 없고 사랑도 없고 성의도 없는 것 같다.

학급과 엄석대가 이렇게 된 것도 엄석대와 아이들의 잘못보다는 선생님의 무성의와 무관심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없는 마음에서 불러 일으킨 잘못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나는 선생님도 아니고 제자도 없지만, 내 친구들과 주변의 이웃 그리고 병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그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그들을 따뜻한 손길로 감싸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마지막 부분에는 엄석대가 나쁜 짓을 해서 경찰에 잡혀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은이라면 엄석대가 큰 회사의 주인이 되어 주위의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 병들어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있게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에는 나쁜 길로만 빠져들려고 했으나 커서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열심히 살고 있도록 말이다.

이 책이 과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내가 느낀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진실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과 함께 느낀 것은 무력은 나쁘기도 하지만 타당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서로 대화하고 협력함은 물론 타협하여 밝은 사회를 이룩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앞으로 살면서 배워야 할 것들을 미리 알게 해 주었고 지금 생활 모습을 반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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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먼저 영화로 보아 내게는 강한 영상이 남아 있었던 글이었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깨뜨릴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무언가 사방에서 누르는 그 갑갑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병태가 되어 어떻게 해야 될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나도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는다. 물론 그러한 해법이 나와 있다면 모두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아버지에 근무지 이동에 따라 한 시골 국민학교로 전학 오게 된 어느 정도 부유한 환경과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 울타리 속에 어린양처럼 자란 소년 한병태. 그리고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던 학급 반장 엄석대. 한병태, 그는 절대 권력의 억압된 현실 속에서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나 엄석대에 대한 담임 선생님의 두터운 신임과 학급 아이들의 절대적 복종에 그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소외 당하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시기심 많은 아이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렇게 그의 항거는 무너지게 되고 엄석대의 왕국 속에 편입되어 그의 달콤한 열매에 안주하던 그는 6학년이 되어 새로 오신 담임 선생님에 의해 엄석대의 왕국이 무너짐을 보고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가던 자신의 모습과 민주적 새 환경에 혼란해 하기도 하지만 곧 회복하고 모범생으로서의 평탄한 길을 겪게 된다. 하지만 나이든 그에 뇌리 속에는 엄석대의 모습을 지울 수 없게 되고 피서 가던 어느 기차길 에서 체포되어 나가는 엄석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 권력에 항거하는 한병태, 그는 불의에 항거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당시 사회상을 어느 반의 한 교실 속에 축약 시켜 놓는다.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엄석대와 그러한 불의 속에서도 어찌 할 줄 모르는 무지한 일반 학생들,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며 만족하기를 원하는 무능하게 보이는 5학년 담임 선생님. 그들이 만들어 가는 이 작은 사회는 절대 권력이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맞추어 준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아도 절대 권력을 동원해 무지한 일반인들을 선동하고 힘을 갖지 못한 지식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면서 그들만의 고뇌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병태의 항거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무너지고 만다. 사실 먼저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건이 병태의 영웅적 모습이나 극적인 반전에 의해 해결되기를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정의는 무너지고 병태는 엄석대의 왕국 속에 편입되고 만다. 우리의 일제 시대에 지식인들을 보자. 그들 중 많은 수는 일제 항거하다 무너져 짓밟히거나 일제의 앞잡이 또는 그들 속에 어울려 있는 것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태가 끝까지 저항 할거라 믿는 우리에게 허무함을 안겨 주는 것이다. 거기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에 의해 찾아온 민주적 사회에서도 그는 적극적으로 바꾸어 보지 못하고 혼돈 속에서 엄석대에 대해 방관자적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는 아이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함으로써 만약 새로 오신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엄석대의 열매에 계속 만족해 하며 살아갔을 것이고 그러한 모습에 그는 혼란해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으로서 우리의 주인공에 모습은 비춰 진다. 읽으면서 병태가 느꼈던 괴로움을 생각해 본다면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방관자적 모습은 이해가 안 갈 뿐이다. 하지만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궁극적 해결 방법은 없었다.

자율적이었기 보다는 새로운 어떠한 세력의 개입 물론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리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나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한 우리의 현대사는 다시 비춰 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개입 그것을 통한 우리의 민주주의 성립 그리고서 나타난 모습들이 바로 바로 이 교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지식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어찌할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던 그들, 그리하였던 그들에게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나약한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나이 들어 버린 병태는 사회에서의 절대 권력 부조리를 느끼던 어느 날 경찰에 체포되어 가는 엄석대를 보고 만다. 이것이 어찌 보면 권력에 대한 승리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아직 사회에 비리는 여전한 것이다. 바로 작가는 권력의 허망함뿐 만 아니라 아직도 만연한 비리들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절대 권력의 부조리를 약 80여 페이지에 짧은 글과 교실이라는 한 집약된 공간에서의 절대 권력에 대한 여러 가지의 사건들에 의해 고뇌하는 한 아이를 통해 우리의 고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불의의 상황에 서 있다면 스스로 우리가 깨우칠 수 있는 자주심을 길러야겠다.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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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드물다. 나도 초등학교 때 읽었는데 다시 읽은 이유는 얼마 후에 있을 그 책에 관한 토론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느낌은 엄석대는 나쁜 놈, 한병태는 착한 놈, 아이들은 불쌍한 놈,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멋있는 사람. 그런 단수한 생각뿐이었는데 고등 학생이 되어 다시 읽은 이 책은 색다를 것을 안겨 주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석대가 애들 물건을 강제로 빼앗거나, 시험 볼 때 부정 행위, 구타 등 여러 가지 나쁜 행동들도 화가 났지만 아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더욱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이 오기 전, 그러니까 석대의 권력 하에 놀아나던 때 석대의 총애를 받기를 원하고 석대의 손발 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석대의 권력이 쓰러진 것을 보자, 이때다 하며 사정없이 덤벼들고, 심지어 덤벼들지 않는 애들한테는 수년 동안 사귀어 온 친구를 배신한 사람 보듯 모욕을 해댔다. 마치 자기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은 권력의 피해자인 마냥.......

아이들도 석대의 권력에 굴복하면서 동참한 것이다. 죄는 석대에게 온통 뒤집어쓰게 하고 자기들은 죄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매우 얄미웠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의 행동도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부조리한 석대에게 당할 때는 매도 때리고 석대에게 저항한 애들에게 상도 줬는데 석대가 학교를 떠나고 나서는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내놓느라 아주 혼란스러웠지만 아이들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은 채 지켜 보기만 했다.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이지만 잘 읽어 보면 선생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선생님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혼란스러우면 어떠리? 이런 모든 시행착오를 서로 겪으면서 진정한 민주화를 얻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 혼란스러움도 감안해야 한다. 문득,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산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그런 과정을 다시 거치면서 바다로 가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정과 방법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독재 정권의 지배를 민중의 힘으로 벗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몇 년 전에 터졌던 IMF시대 때, 실업자가 많이 생겨나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는 등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이 싫어 박정희를 그리워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 그 혼란스러움을 해결해 준다면 그 결과는 좋을지 몰라도 부당한 권력에 또 한번 시달려야 하고 모든 민중들의 자유는 무시당한 채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사회는 IMF시대의 혼란스러움보다 훨씬 더 끔직할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잘한 것 같다. 초등 학생 때 느끼지 못했던 아이들의 기회주의적 행동들의 비판적 시각,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독재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가끔 결과를 중요시 하고 어쩔 때는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했던 그런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곧 있을 토론이 또 다른 가르침을 줄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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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었다. 영화로 제목도 들어 봤고, 내가 한참 심취해 있던 삼국지의 저자인 이문열씨가 쓴 책이라고 해서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나는 과거에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읽었을 뿐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고, 이번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는 듯 했다.

내용은 한병태라는 사람이 30년 전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서울에 살던 병태는 시골로 전학을 간다. 병태는 서울에 살던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했지만, 그곳의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석대라는 급장을 만나게 되는데, 서울에서의 급장과는 달리, 석대라는 아이는 선생님의 신임을 받고 있었고, 반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어서 모든 아이들은 석대의 편이고, 석대의 말이라면 꼼짝하지 못한다. 병태는 불합리와 폭력이 있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석대에게 저항하고, 아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여러 방법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석대의 권위와 그 권위 아래 있는 아이들의 행동으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리고 부모님, 선생님도 석대의 편을 든다. 그렇게 되어 병태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온갖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그러다가 병태는 저항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그 환경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석대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석대는 몰락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석대의 잘못을 말할 때, 병태는 석대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석대는 떠나고, 그 반은 처음에는 약간 불안했지만 정상적인 반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병태는 고급 세일즈맨이 되었지만, 실패하여 실업자가 되고, 그 때 다시 석대가 떠오르게 된다. 병태는 많은 사람들이 석대를 비웃어도, 석대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결국 병태는 형사에게 잡혀 가는 석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그 반의 모습은 사회의 여러 모습들, 특히 우리 나라의 4•19전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석대는 이승만 정권처럼, 독재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서울에서 전학을 와서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태의 모습은 합리와 자유 속에 살다가 독재 체제에 와서 적응하지 못하여 독재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승만 독재 정권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석대를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이 병태를 못살게 굴어서, 병태가 결국에는 굴복하였듯이, 이승만 정권, 즉 독재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참하고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고, 결국 몇몇은 독재에 굴복하고 말았다. 나중에 부정 시험이 걸려서, 담임 선생님의 힘으로 석대는 몰락하게 되고, 아이들이 배신을 하는 모습은, 4•19 때, 부정 선거가 드러나면서, 학생들의 힘에 의해 이승만 정권은 물러나게 되고,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변심하여 이승만 정권을 욕하며 다시 새로운 정권에서 일하는 모습에 비교할 수 있다. 병태가 배신을 하지 않는 모습은, 그것은 독재가 끝나기를 바랬지만, 변절자들의 더러운 대열에 끼기 싫어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작가는 4•19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러한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석대가 몰락하고 며칠 후에 4•19가 일어났다는 것이 책에 나오는데, 이것은 이러한 추측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그러면 이 소설을 읽고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먼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이 석대의 잘못을 말하고, 부정적이었던 석대의 권위를 무너뜨린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변심한 것이지, 절대 정의를 위해 변심한 것이 아니다. 석대가 반을 휘어잡고 있을 때, 그들은 석대를 위해 병태를 괴롭히는 등, 여러 행동을 한다. 석대의 세상 안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 석대의 위치가 불리해 지자, 석대의 잘못을 낱낱이 파헤쳐서 석대가 완전히 몰락하게 한다. 이러한 행동은 석대의 잘못을 고발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석대의 권위는 이미 추락하고, 선생님의 힘이 더 세니, 선생님의 편에 붙어서 편하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절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우리는 대나무처럼, 곧은 절개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아이들처럼 행동을 하면, 이 글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솔직히 이럴 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더 올바른가'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나에게 이익인가' 생각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할 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할 때도 있다. 나중에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 후회도 하지만, 나중에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이 글을 읽을 때도 약간 가슴이 찔렸다. 이제는 그러한 행동은 하지 말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석대의 권위가 무너진 것을 볼 때, 결국 악의는 패배하고 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삶을 살다 보면, 분명히 불합리한 것이고,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개선되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회에 실망하고, 사회에서 멀어 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결국에는 밝혀 질 것이란 걸,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입은 피해들도 모두 보상받을 것이란 걸 깨닫고, 삶을 살아갈 때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멀어 지는 모습보다는, 그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또, 병태의 삶을 비판해 볼 수 있다. 우선, 병태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지켜 나가지 못했다. 병태는 처음에는 합리와 자유를 추구하며 독재에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주위의 상황이 자신을 도와 주지 않자, 결국 독재에 굴복한다. 자신의 소신을 지켜서 끝까지 석대에게 저항하는 것이 병태에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견디기 힘들 것이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나는 병태가 참은 시간의 반도 못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합리와 자유를 추구한다면, 끝까지 저항해야 할 것이었다. 또, 석대에게 커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석대가 아직도 위대할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석대는 잘못을 했다. 또, 석대는 위대한 것이 아니고, '일그러진 영웅', 즉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에 대해 미련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소설을 다 읽고, 우리가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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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의 탄생을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 이문열의 소설로 이 소설로 이문열은 1987년 이상 문학상을 받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었고 나에겐 삼국지로 더 알려 진 이문열의 작품으로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지금 읽고 독후감을 쓰니 어렸을 때 읽은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영화도 보았지만 이 소설에 감추어 진 진실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장면과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도 아주 즐거웠다.

소설은 서울 어느 명문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작은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나(한병태)'가 겪은 일을 삼십 년이 지난 후에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울 명문 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나'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학교 생활에서 엄석대라는 독재자가 있는 시골 초등학교의 방식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이미 학교 전체에서 독재 체제를 확고히 하고 있는 엄석대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엄석대라는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나이가 두세 살 많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조종하면서 '나'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엄석대의 독재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나'는 많은 방법을 총동원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막대한 신임과 권력 옹호로 번번히 실패한다. 결국 '나'는 엄석대의 독재 체제에 순응하고 편입된다. 그리고 엄석대의 막대한 지원과 신임으로 편안한 학교 생활을 누린다. 엄석대의 완전한 독재 체제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배정되면서 그 진실이 밝혀 진다. 정기 고사에서의 엄석대의 높은 점수의 비밀(학급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엄석대의 시험지를 작성해 주는 것, 당시 엄석대는 전교 1등을 하고 있었다.)이 밝혀 지면서 단 하루 만에 붕괴하고 만다. 급장 직 박탈은 물론 학급 아이들의 맹렬한 비난으로 다시는 학교는 물론 근처 동네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삼십 년이 지난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석대의 떠올린다. 그리고 실제로 엄석대의 모습(경찰에 잡혀 가는 모습)을 봄으로써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학교에서 그 사건들이 전개된다는 점과 이문열만의 독특하면서도 진솔한 인물 분석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떼어 놓지 못하게 했다. 엄석대의 독재 체제와 '나'의 저항과 마지막의 반전 또한 우리들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충분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평가나 감상은 일반적으로 이렇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 소설에서 학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엄석대는 독재자로서 마땅히 비판 받을 인물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학급 아이들을 독재에서 구해 준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등등…… 하지만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점은 엄석대의 대응 자세였다. 엄석대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만의 완전한 독재 체제를 이룩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독재 체제에 아이들을 편입시키면서 빼앗기만 하기보다는 그에 따른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학급 아이들이 다른 반에서 맞는 일이 없고 반이 엄석대의 지시 아래 어떻게 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또 교내 단체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도 한 예이다. 엄석대의 성적 작성에서도 모두가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게 함으로써 최소한 엄석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부당한 석차 바꿈은 없게 했다. '나'를 자신의 독재 체제에 편입시키는 태도는 치밀함과 그만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엄석대라는 아이는 '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직접 나서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압박을 해 왔다. 그 뿐만 아니라 '나'가 자신의 독재 체제에 순응하자 그에 따른 엄청난 보상을 해 줌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보다 더 확고히 했다. 새로 전학 온 나에게 여러 가지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 준 것과 '나'를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대우했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엄석대의 그런 놀라운 능력, 즉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꾀 뚫고 있고 사람들을 잘 리딩할 수 있다는 점은 비록 그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다음에 나오는 부분은 내가 가장 동감하는 담임 선생님(엄석대를 신임한 선생님)의 말이다.

「짐작은……간다. 모든 게―맘에 차지 않겠지. 서울식과는……많이 다를 거야. 특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 돼먹고―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이곳의 방식이다. 자치회가 있고, 모든 게 토론과 투표에 의해 결정되고―급장은 다만 심부름꾼일 그런 학교도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서울 아이들같이 모두가 똘똘 하면……오히려 학급은 그렇게 운영되는 게 마땅하겠지. 그러나 거기서 좋았다고……그게 어디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의 방식이 있고……너는 먼저 거기 적응할 필요가 있어. 서울에서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이곳은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해. 굳이 그게 옳다고 고집하고 싶다면……너의 태도라도 바꿔. 네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반 아이들 모두와 싸우려 하거나―외톨이로 빙빙 겉돌아서는 안돼. 봤지? 오늘……육십 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그래도 너는 내게 달려오기 전에 아이들로부터 먼저 네 편으로 돌려놨어야 했어. 그게 안되니까 내게 왔다고 할지 모르지만……그리고……아이들이 어리석으니까 선생인 내가 고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틀렸어. 설령 네가 옳더라도……나는 반 아이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석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네가 반드시 믿고 있을 것처럼……아이들의 그 지지란 것이 실상은 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마찬가지야. 나는 어쨌든……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대의 힘을……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 나가던 우리 반을......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흩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다가……어쨌거나 석대는 전(全) 학년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통솔력 있는……모범적인 급장이다. 무턱대고 비뚤어진 눈으로만 보지 말고……그의 장점도―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무엇보다도 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그들과 함께 새로……시작해 보아라. 석대와 경쟁하고 싶다면……정당하게 경쟁해라, 알겠니……」

이 담임 선생님은 '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보다는 '배고픈 민주주의보다는 배부른 독재가 더 낫다.'라는 다소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독재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으로 죽음을 맞고 많은 악행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에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하고 있는 것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아무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부흥으로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은 못 되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각종 세계적인 대회를 유치하는 것에 바탕이 되었음을 명백한 사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시골 초등학교 교실은 어두운 우리 현대사를 집약해서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인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나 줄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처럼 아이들의 집단 생활을 통해 성인 사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볼 수 있다.

엄석대의 독재 체제의 종말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부임해 오면서 시작된다. 반체제적인 젊은 교사는 교실의 부정 부패를 일소하면서 급장의 권력을 무참히 꺾어 버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담임 교사 역시 독선과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이 비단 교육이라는 수단이라고 결론지을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이제 새 담임 교사에게 복종하고 교실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독재에 신음하게 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급장은 정치권력 메커니즘을 노련하게 조종했던 우리의 권력자들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개혁을 주창하며 등장해 결국은 정치에 입문한 그 젊은 담임 교사에게서도 우리는 또 다른 독재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 엄석대와 한병태와 새 담임 교사, 그리고 엄석대의 독재 체제를 붕괴한 학급 아이들은 각기 다른 의미에서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뿐이다. 이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만을 탄생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 현재에도 우리들의 완전한 영웅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독재 체제라는 이름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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