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0일 화요일

사랑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Daum책] 사랑손님과 어머니 http://durl.me/7i7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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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살았다. 옥희의 아버지께서는 옥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옥희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니까 사랑에서 큰외삼촌이 낯선 아저씨를 데려 왔다.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였다. 옥희는 잘해 주는 아저씨가 좋았다. 옥희는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저씨는 그 말을 듣고 아저씨는 얼굴이 빨개 졌다. 옥희는 유치원에서 꽃을 몰래 가져와 어머니에게 주려고 하였지만 어머니께 유치원에서 훔쳐 왔다는 말을 못하고 그만 사랑 아저씨가 엄마에게 가져다 주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 말을 듣고 엄마도 얼굴이 발개져 얼른 꽃을 꽃병에 담았다.

그날 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도 친 적이 없는 풍금을 쳤다. 어머니는 사랑 손님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아저씨는 옥희에게 인형 하나를 주고 기차를 타고 떠났다. 옥희와 어머니는 떠나는 기차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이 책이 어린이의 관점으로 쓰여 진 것이 특별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사랑 손님이 서로 좋아하지만 그 때에는 여자가 재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보고 그때에는 여자가 재혼을 하면 욕을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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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과부인 어머니의 하나뿐인 딸로서 이 소설에서는 관찰자이자 서술자이다. 옥희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같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리 학교 교사로 온 아저씨가 사랑방에 하숙을 하게 된다. 옥희는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고 아저씨가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을 아저씨에게 말씀했더니 아저씨는 ‘못쓴다’ 라고 옥희에게 떨린 체로 말한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꽃을 꺾어 어머니에게 아저씨가 드리라고 말씀하셨다며 거짓말을 하자 어머니의 얼굴이 빨개 진다.

며칠 후, 아저씨는 아쉬움을 남긴 채 옥희의 집을 떠나 버린다. 어머니와 옥희는 떠나가는 아저씨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그 후부터 어머니는 풍금을 다시 키시지 않고 옥희가 좋아하는 계란도 사지 않으신다.

느낀 점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어머니와 아저씨의 사랑이 안타까웠다. 과부인 옥희의 어머니는 이 시대 형편으로써는 재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멀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아저씨가 계란을 좋아한다는 말에 계란도 많이 사고 그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저씨는 옥희가 자기에게 한 말을 듣고 당황하고 옥희의 집을 떠날 때 아쉬움을 느낀다. 이 소설의 배경이 조선 시대쯤인 걸로 보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요즘이야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해도 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아무래도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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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번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프린트 해주신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읽었다. 그 이야기는 소설로 1인칭 시점이었다. 관찰자는 어머니의 딸인 옥희다.

줄거리 - 옥희의 아버지는 옥희가 태어나기 1달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옥희는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고 사람들은 옥희를 유복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외삼촌과 살던 중 아버지의 친구분이 옥희네 집에서 같이 머물게 되었다. 그 친구분이 바로 사랑 손님이다.
옥희와 친하게 지내던 사랑 손님은 어느 날부터 옥희의 어머니에게 관심이 갔고 결국에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시대에는 결혼한 여자가 이혼하거나 남편이 죽었을 때, 다른 남자와 결혼하거나 만나면 바람 핀다 라고 뜻하기에 몰래 옥희를 이용해 식사값과 함께 러브 레터를 보내지만 옥희 어머니가 자신을 차자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고 한다.

느낀 점 -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그 시대의 생각이 맘에 안 든다. 솔직히 이미 남편이 죽고 딸 하나에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데 왜 다시 재혼을 못한다는 것인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생각해야 한다고는 생각해서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6살짜리 아이의 시점에서 쓰기에 나는 왠지 모르게 옥희의 생각에 공감이 많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또한 영상으로 보았는데도 왜 그렇게 다시 공감 또 공감이 되는지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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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는 옥희의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옥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옥희와 옥희의 엄마가 혼자 사는데 어느 날 어느 아저씨가 옥희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옥희는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옥희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옥희의 엄마와 아저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점차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옥희가 아저씨께서 진지를 드시고 있는데 사랑방으로 놀러 가자 아저씨가 너의 얼굴을 엄마처럼 곱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계속 옥희의 엄마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리고 아저씨가 옥희에게 너는 어느 반찬을 좋아하니 라고 말하였다. 삶은 계란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저씨가 삶은 계란을 주었다. 그러자 옥희가 아저씨는 어느 반찬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저씨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옥희는 엄마에게 말을 하였다. 아저씨가 삶은 계란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삶은 계란을 많이 사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어머니가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느 날 옥희는 교회에서 사랑방 아저씨를 보았는데 아저씨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아저씨가 옥희의 엄마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저씨가 어머니에게 이것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 것을 열어 보고 얼굴이 빨개 졌다.

아마도 그것은 연애 편지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안 된다고 고백을 거절하였다. 나는 아마도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저씨는 짐을 싸고 떠난다. 나는 이 이야기는 정말로 슬프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옥희의 어머니가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규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옥희의 어머니가 참을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마을의 규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옥희 엄마같이 동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도 마을의 규칙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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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주로 옥희, 옥희 엄마, 사랑방 아저씨가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긴 옥희네는 옥희, 옥희 엄마, 외삼촌이 같이 사는데 어떤 아저씨가 사랑방 손님으로 오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사랑방 손님은 옥희의 아버지의 친구이다. 사랑방 손님은 옥희와 친해 지기 위해 옥희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 봤을 때 삶은 달걀이라고 한다. 그런데 옥희 엄마가 그 말을 옥희에게 전해들은 이후부터 삶은 달걀을 많이 사 온다. 이 것으로 옥희 엄마가 사랑방 손님에게 호감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옥희 엄마는 봉건적 풍습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옥희 엄마와 사랑방 손님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옥희와 사랑방 아저씨가 함께 뒷동산에 올라가는데 옥희는 아저씨께 자기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근데 사랑방 아저씨는 당황해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옥희는 울었다.

일요일마다 옥희와 옥희 엄마는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간다. 그런데 원래는 사랑방 아저씨는 예배당에 가지 않는데 옥희가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엄마와 함께 간다는 소리를 듣고 예배당에 온다. 어머니는 예배당에 있는 사랑방 아저씨를 보고 부끄러워 앞만 향하여 바라본다. 하지만 어린 옥희는 그 행동들이 어머니와 사랑방 아저씨가 서로 화난 일이 있는 줄 안다.

어느 날 옥희는 엄마를 놀래 주기 위해 벽장 속에 숨었다가 잠이 들었다. 엄마와 옥희의 할머니는 옥희가 없어 진 줄 알고 한참을 찾았다. 옥희의 엄마는 옥희를 찾고 울면서 옥희 하나면 된다고 말한다. 이 걸로 사랑방 아저씨를 잊으려고 노력하는 걸 알 수 있다.

또 옥희가 어머니에게 사랑방 아저씨가 꽃을 갖다 주라고 하며 꽃을 전해 줬을 때 갈등이 심화된다.

하지만 옥희 엄마는 봉건적 풍습 즉 남편이 죽은 아내는 다시 재혼을 하면 안되고 또 그 사람이 남편의 절친한 친구이기에 그러면 안 된다고 결심, 또 결심을 한다. 그래서 사랑방 아저씨께 손수건, 즉 이별을 고한다. 결국 사랑방 아저씨는 떠나는 걸로 결말을 짓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아주 유명한 소설이다. 안타까우면서도 슬픈 이야기이다. 사회와 사랑 중 갈등을 하는 옥희 엄마가 아주 안쓰러워 보였다. 나라면 사랑을 택할 것 같다. 아무래도 지금 시대니까 그런가? 그때 시대라면 옥희 엄마처럼 행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옥희 엄마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옥희의 입장에서 관찰을 하면서 소설을 순수하고 아이러니하게 나타내서 읽기도 편하고 재미있고 내가 상상을 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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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 여덟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어린이용으로 짤막하게 편집되어 생략된 부분도 많고 전체적인 줄거리만 조금 나온 얇은 책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제목을 다시 접한 것은 얼마 전 국어 시간. 선생님께서는 앞을 대비해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몇 작품을 추천해 주셨다. 그 추천 작품 중에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제목이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집에 간 나는 한국 문학 작품집을 뒤져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여섯 살 난 꼬마 옥희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쓴 이야기. 여기서 옥희는 매개자이며 관찰자이다. 어린 옥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른들과는 현저히 다르다. 무심코 던진 사랑방에 있는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아저씨는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유치원에서 가지고 온 꽃을 아저씨가 주라고 했다고 하자 어머니는 당혹스러워서 그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라고 한다. 옥희는 순진하게도 거짓말을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기한테 화를 내는 것보다는 아저씨한테 내는 편이 나으니까.

그러면서도 그 꽃을 간직하는 어머니가 옥희의 눈에는 의아할 뿐이다. 그리고 예배당에서 두 남녀가 보인 부끄러움의 정서가 옥희의 눈에는 단순히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옥희를 통해 어머니를 보는 아저씨가 이것저것 질문하자 귀찮게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다운 사고방식이자,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자기가 아는 좁은 감정의 범위에서만 느끼는 것이 잘 드러난 예시이다.

흰 봉투와 손수건이 옥희를 통해 오가며 젊은 두 남녀는 연정을 키워 나간다. 서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옥희라는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저씨 쪽에서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나, 그 시대 상황으로 보아 인정받기 어려운 일이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사회적인 벽이 확실히 느껴 졌다.

보수적인 어머니는 떠나 주기를 요청하고, 그가 떠난 후에 풍금도 닫고 꽃도 내다 버리며 마음을 정리하는 체념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실은 매우 애달픈 장면이지만, 어리고 순진한 옥희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바람에 저런 일이 아주 표면적인 행동과 옥희의 생각으로만 간추려 져 있다.

귀여운 말투로 이어지는 옥희의 서술 안에 숨겨 진 두 남녀의 애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여자의 재혼을 불건전한 것으로 보는 암묵적인 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에 맺어 지지 못했던 두 사람. 요즘이야 이혼이나 재혼이 두 사람의 합의만 있으면 당연한 것으로 여겨 지는 세상이 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혼은 고사하고 재혼조차 쉽게 허용하지 못하는 완고한 관습의 벽이 있었다.

더군다나 옥희의 어머니는 여섯 살 난 아이까지 딸린 과부였기에 더욱 그렇다. 만일 옥희에게 아버지가 또 생긴다면, 어머니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옥희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되어도 좋지 못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가혹한 세상이었단 말인가. 요새 아이 양육권 때문에 이혼을 꺼린다거나 서로 아이가 딸려 있는데 그럼 어머니 쪽 호적이 동거인으로 되기 때문에 재혼해서도 불이익을 받아 고민하는 부부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다. 시대적 배경이 현재였다면, 이 이야기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까? 그랬다면 두 사람은 쉽게 맺어 졌을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처럼 서로 내외를 한다거나 옥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연정을 한 겹씩 쌓아 가는 이야기는 전개될 수 없다. 아이의 존재는 일단 제쳐 두고 두 사람의 감정에 충실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가볍고 빠르게 진행되어 별다른 탈 없이 재혼을 하는 여성의 이야기 정도로 인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대 배경은 그대로 두고 시점이 옥희가 아닌 전지적 작가였다거나 어머니나 아저씨 중 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럼 다소 무겁고 사회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서술자의 고민이 짙게 드러나서 어두운 소설이 되었을 듯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알려서 독자가 상상하는 재미가 덜했을 것 같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유치원생이 서술함으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두 남녀 사이에 오간 감정의 행방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이 소설을 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옥희의 서술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경박하지도 않게 수위 조절을 하는 효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결국 맺어 지지 못하여 헤어지는 애절함을 나타냄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된 것이 아닐까?

아빠가 웬 원고지 하나를 건네면서, 정리하다가 내가 어릴 때 쓴 독후감을 찾았다고 하는 바람에 놀라서 부랴부랴 읽었다. 내가 저렇게 썼었구나. (;) 그런데 왜 문장이나 그런 걸 볼 때에 난 발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 (...) 지금 보니 새롭기도 하고, 내가 저런 단어를 알긴 알고 쓴 건가 싶은 것도 있다. 사실 중학교 1학년이 아주 어린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왜 이렇게 어리게 느껴 지는지.

그나저나 사랑손님과 어머니라고 하면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저 두 사람에게 오간 편지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해서 쓰는 시간이 있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독창적인 내용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평소에 국어 성적이 나보다 좋은 것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는 것 또한 아니며, 전혀 친하지 않았던 한 급우가 쓴 내용은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아이는 애초에 두 사람 사이에 애정 담긴 편지가 오갔다는 예상은 배제했다.

좀 오래된 일이라 문맥까지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떠올리자면 아저씨가 고향에 일이 생겨서 하숙을 그만 하고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편지를 보냈고, 남몰래 그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어머니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마지막 인사 편지를 쓴다는 내용. '옥희를 통해 삶은 달걀을 드릴게요. 차 안에서 심심하시면 드세요. 그리고 하시는 일 다 잘 되시길 바랄게요.' 저런 식이었다. 그 아이는 자습서나 소설 해설서 따위는 읽은 적이 없다고 했으며, 이 소설도 처음 접한 것이 분명했다.

난 그걸 듣고 가끔은 아예 모르는 백지 상태가 더 창의적일 수가 있다는 걸 느꼈다. 대부분 아저씨가 어떤 말투로 사랑을 고백해야 하며, 어머니는 대체 어떻게 거절을 해야 효과적으로 전달이 될까 고민하는 시간에, 그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적었던 것이다.

몇 주 후에도 충격(!)적인 사건은 또 일어났다. 여러 가지 유명한 책 제목을 칠판에 적고서는 무슨 내용일지 추론을 하라는 수업이었다. 공교롭게도 거기 적힌 책은 전부 내가 읽은 것이었고, 고정적으로 박힌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특히 안도현의 연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알을 낳은 후 죽어야 하는 연어의 고민과 혼란스러운 여정이 담겼다느니 난 저런 식으로 썼던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연어 내용 외엔 절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아이들 노트에서는 별 기상천외한 답이 다 나왔다. 정말 간단하게는 연어의 생태에 대한 과학 소설, 연어를 의인화해서 쓴 동화 같은 소설, 연어라는 것은 상징적 의미이고 그걸 통해 인생을 비유하는 내용의 소설, 심지어는 연어가 관찰자가 되어 다른 대상을 논하는 소설 등. 선생님은 내 답을 보고선, 아주 족집게네. 너 이 소설들 다 읽었지? 저렇게 말하고선 돌아섰다. 난 순간 울컥해서, 책 읽은 것도 잘못이냐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었다. 

지금이라면 읽은 소설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서 충분히 꾸며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 당시엔 그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선생님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내가 읽은 책 가지고 저런 식의 토론을 하면서 날 곤란하게 만드는 건 물론, 내가 쓴 글은 필요 이상으로 직설적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심지어는 백일장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내 글을 뽑았는데 자기가 뺐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점수도 완전 최악으로 줬잖아! (예전 일이지만, 다시 생각하니 화나네.)

에,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여기까지 진행이 된 거지? 이러다가 저 선생님 때문에 화나서 잠시 글도 안 쓰고 반항아 행세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곤란한데. (벌써 했다 이 녀석아!)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쓸 것을,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억울. 주위 어른들 말 듣자면 내가 어릴 때 자존심이 정말 셌다고 하는데, 저건 자존심 이전에 상당히 상태가 나쁜 인간이었잖아!

그렇지만, 아직 예민한 중학생이었는데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글과 그 내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 누가 상처를 안 받고 절망을 안 하겠냐고! 이러면서 나름대로 합리화. 그나저나 오늘의 요점은 우연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쓴 독후감을 발견해서 옮겼다는 것!

15소년 표류기 (Deux ans devacances) - 쥘 베른

[Daum책] 15소년 표류기 http://durl.me/7i7b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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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나이가 적은 소년들이 무인도에 표류되어서 살아가는 것인데 어른들이 못하는 일도 거뜬히 해낸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느 나라에 소년들이 있었다. 그 소년들은 시험이 끝나고 배에서 자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줄을 풀었는데 모두 깨고 보니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소년들은 한 무인도에 도착해서 살아갔다.

15명의 소년들이 가축도 기르고 동굴 집도 만들고 대통령도 뽑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막 편을 갈라서 싸우는데 마치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배 한 척이 그 무인도에 왔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어서 그 사람을 대려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악당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 소년들은 경비를 더 삼엄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당들이 쳐들어와 소년들이랑 싸우게 되고 소년들이 승리해 그 배 선장과 같이 이 섬을 떠나는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빈슨 크루소가 많이 생각났다. 겹치는 점은 많지만 로빈슨은 어른이고 이 책은 아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나도 그 아이들의 협동심과 의지력은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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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쥘 베른 이라는 작가가 썼습니다. 쥘 베른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는데, 15소년 표류기와 같은 내용을 상상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15소년 표류기의 줄거리는15명의 소년들이 슬라우기호에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밧줄이 스르륵하고 풀려 소년들은 떠내려갔습니다.

그 소년들의 이름은 브리앙, 자크, 고든, 드니펜, 클로스, 웹, 윌곡스, 가네트, 서비스, 백스터, 젠킨스, 에버슨, 코스터, 돌과 수습 선원 모코, 고든의 애견 팬 까지 타고 있다가 무인도에서 2년을 동안 표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표류를 한지 1년이 된 어느 날, 게이트 아주머니와 무인도를 탈출하는 내용이다. (이반스 아저씨도 있는데 안 쓴 이유는 해적들(해적도 사실 있었음.)하고 싸우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년들처럼 무인도에 2년 동안 표류한다면 어떨까? 나 혼자도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 앞길이 어둡고, 가족이 보고 싶을 거다.

15명의 소년은 어떻게 2년 동안 자기네들끼리 살아가고, 가족이 보고 싶지 않았을까? 보고 싶었겠지만 참고 2년 동안 열심히 살아가서 생존이 가능 했던 것 같다. 내가 슬라우기호에 선원들 중 한 명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 했을까? 나는 우선 침착하고 쓸 만한 방법으로 상황을 대처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이중 한 명이 된다면 누가 되고 싶을까? 나는 충고를 잘 해주면서도 친절하고 따뜻한 브리앙이 되고 싶다. 나도 노력해서 브리앙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노력하면 잘 될 것 같다. 나도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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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작가는 '쥘 베른' 이라는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발달한 과학의 기초 위에서 미래 과학에 대한 작가의 상상을 펼쳤는데 이러한 예견은 오늘날의 잠수함, 로켓, 우주선 등을 만드는 데에도 한 몫을 했다.

그 중, 15소년 표류기는 모험을 하고 싶어하거나 모험을 생각해 본 어린이들의 꿈을 충족시켜 주면서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된다.

모험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더욱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모험이나 추리를 좋아해서 15소년 표류기를 읽게 됐다.

여름 방학을 맞아 즐거운 연안 항해를 계획한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체어먼 기숙학교 학생들은 출발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밤중에 몰래 요트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가 폭풍에 휩쓸려 무인도로 떠내려가 버린다.

섬에 표류하게 된 15명의 소년들.

어른이 하나도 없는 절해고도에서 작은 공동생활체를 꾸미며 사냥을 하고 재배를 하며 살게 된다. 한정된 과학 지식을 짜 내고 힘을 모아 운명과 싸우는 소년들. 용감한 브리앙과 질투심 강한 도니 펀의 갈등과 탈출을 위한 여러 노력들.. 미국 선박의 표류와 반란자들과 2명의 탈출자들과의 싸움.. 결국 반란자들을 쫓아내고 2명의 탈출자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교훈은 협동심과 인내, 용기가 있다면 어떠한 힘들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인도라는 험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주인공들이 용기와 힘을 잃지 않고 매 순간마다 지혜를 짜 내어 자연과 싸우며 생활을 하고 최후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나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난파선 `슬라우기 호`를 타고 체어맨 섬에 표착한 나이 어린 소년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 내고 사나운 짐승과 악한들의 습격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둔 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협동 정신과 용감한 행동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나라와 인종과 겨레가 다르더라도 어려운 경우에 처했을 때, 서로 도와 가며 사이 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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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의 소년들을 태운 슬라우기호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원인 모르게 무인도에 도착했다. 당황하고, 겁도 났으나, 고든, 드니팬, 브리앙을 중심으로 안정하면서 대표로 고든을 선출하고, 꼬마 코스트의 제안으로 섬 이름을 '체어맨 섬' 이라 하였다.

소년들은 고든의 지휘 아래 물개, 오리를 사냥하여 배고픔을 해결하고 공부도 하였다. 브리앙의 동생 잭은 힘든 일을 자원 하였는데 슬라우기호의 밧줄을 잭이 풀어놓아 폭풍우에 배가 밀려 무인도에 오게 된 것이다. 아주 작은 장난에도 모두를 큰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다.

난 앞으로는 장난 할 때 조심을 많이 해야 되겠다......

잭은 죄책감에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친구들은 잭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위로해 주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라면 너 때문에 죽을 수 도 있어 라고 말했을 텐데......

또한 드니팬은 브리앙을 항상 시기하고 있었으나 브리앙의 동생 잭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 주었고, 드니팬이 재규어에게 팔이 물렸을 때 브리앙이 구해 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 15소년들은 에번스아저씨, 케이트 아주머니를 만나 힘을 합쳐 악당들을 물리치고 악당들의 배를 수리하여 항해를 하던 중 큰 배에 구조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우정과 모험심, 용기,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어떠한 위험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5

‘15소년 표류기’!
제목만 듣기에는 단순히 어린 남자 아이들이 표류하면서 겪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1800년대 사회 배경과 모습 그리고 풍자를 알게 모르게 나타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알 것이다.

주요 인물은 프랑스인인 브리앙(형)과 자크(동생) 미국인인 고든, 자존심 강하고 귀족적인 도니 펀이다. 그런데 이 15소년들이 표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5명 중 한 명은 견습 선원) 14명의 소년들은 영국의 사립학교 ‘체어먼 기숙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다. 체어먼 학교에서는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학부모 중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배(슬루기 호)를 빌려 14명의 아이들을 추첨으로 뽑아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여행을 떠나다가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실종되고 아이들만 무인도로 추정되는 섬에 남게 된다. 처음에는 절망하지만 나중에는 배에서 쓸 만한 물품(술, 통조림, 총등)을 옮기고 거처를 준비하는 등 힘을 내려고 노력한다. 섬의 명칭을 학교 이름인 체어먼 섬이라 짓고, 조금 더 체계적으로 살기 위해 섬의 지도자를 뽑는다. 지도자가 된 고든은 섬을 잘 다스리려 노력하고, 도니 펀과 그의 무리를 뺀 아이들도 고든을 따라 체어먼 섬에서의 새로운 삶을 꾸린다. 이들이 섬을 탐사하던 중, 브리앙은 한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굴 안에는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고, 소지품을 살펴본 결과, 약 50년 전에 한 프랑스인이 그 동굴에서 살았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동굴을 ‘프렌치(French) 동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동굴이 살기에 좋음을 알게 된 아이들은 프렌치 동굴에 들어가 산다.

한편, 언제나 대장이 되고 싶어하는 도니 펀과 브리앙의 갈등은 끊이지 않는데, 결국 도니 펀은 자신의 무리를 끌고 섬의 다른 쪽에 가서 살기를 원해 친구들을 떠났다가 체어먼 섬에 악당들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브리앙은 도니 펀이 걱정되어 구하러 가 도니펀과 화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숲속에 쓰러져 있던 ‘케이트’ 라는 미국 여자를 구하게 된다. 케이트는 악당들에 대한 것을 알려 주었고, 아이들은 이 섬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악당들의 정체와 작전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 소년들은 케이트와 한 배에 탔었다는 일등 항해사 에반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어느 날 밤 온몸이 젖은 채로 동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일등 항해사 에반스였다. 에반스는 소년들과 함께 타락한 미국 선원들을 물리쳤고, 소년들과 에반스, 케이트는 뗏목을 만들어 섬을 무사히 탈출한다.

이 책은 본래 제목인 2년간의 휴가(Deux ans devacances) 가 더 알맞은 제목인 것 같다. 이 소년들은 원래 여름 휴가 겸 잠깐 배를 타 볼 기회를 갖는 것이 목적 이였으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번역할 때 15소년 표류기라 했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15소년 표류기로 알려 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이 만든 사회도 권력 다툼, 의견 충돌 등의 문제가 생기고 어른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 준다. 인상 깊은 대목이 있는데, 섬의 지도자를 투표할 때, 흑인 견습 선원인 ‘모코’는 참정권(?)이 없었고, 모코 자신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곳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 당시 유럽에서 흑인에 어떤 대우를 하였는지 알 수 있다.

표류기는 당시 유행하던 장르의 문학 이였다고 한다. ‘로빈슨 크루소’나 ‘스위스 로빈슨 가족’ 등 많은 표류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비슷한 ‘표류’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쥘 베른은 공상 과학 소설의 창시자답게 ‘15소년 표류기’ 에도 과학의 발전에 대한 경외를 많이 보여 주었다. 소년들이 자신들이 표류한 곳이 어디쯤인지 위도와 경도를 이용해 대강 짐작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나는 책에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의 맛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은 ‘달콤 쌉싸름’을 주고 싶다. 15소년들이 그들만의 한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지명을 붙이고 야생 동물을 길들여 애완 동물로 만드는 장면, 우정과 협동심을 기르는 대목은 달콤함, 표류된 섬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인지 절망하는 대목이나 서로간의 성격 차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갈등은 쌉싸름한 맛으로 평가하고 싶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쉘 실버스타인 (1)

[Daum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 http://durl.me/3oh65

읽게된 동기

굵고 굵은 책들 사이 에서 얇은 책을 찾는다고 정말 힘들게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줄거리 또는 내용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그 소년은 그 나무에게로 와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주워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 속의 왕자 노릇을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서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그리고 사과도 따먹곤 했습니다.
나무와 소년은 때로는 숨바꼭질도 했지요.
그러다가 피곤해 지면 소년은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갔습니다.
그리고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 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갔을 때 나무가 말했습니다.
" 얘야,내 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먹고 그늘에서 놀면서 즐겁게 지내자.
"난 이제 나무에 올라가 놀기에는 다 커 버렸는걸.
난 물건을 사고 싶고 신나게 놀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돈이 필요하고.
내게 돈을 좀 줄 수 없겠어?“ 하고 소년이 대꾸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겐 돈이 없는데.” 나무가 말했습니다.
“내겐 나뭇잎과 사과밖에 없어.
얘야, 내 사과를 따다가 도회지에서 팔지 그래.
그러면 돈이 생기겠고, 그리고 너는 행복해 지겠고.“
그리하여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사과를 따서는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나무는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돌아왔습니다.
나무는 기쁨에 넘쳐 몸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얘야,내 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즐겁게 지내자.
“난 나무에 올라갈 만큼 한가롭지 않단 말이야.”하고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내겐 나를 따뜻하게 해 줄 집이 필요해,
아내도 있어야겠고 어린애들도 있어야겠고 그래서 집이 필요하단 말이야.
너 나에게 집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니? 나에게는 집이 없단다.
“나무가 말했습니다. “이 숲이 나의 집이야,
하지만 내 가지들을 베어다가 집을 짓지 그래.
그러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 아냐.“
그리하여 소년은 나무의 가지들을
베어서는 자기의 집을 지으러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돌아오자 나무는 하도 기뻐서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온, 얘야.”나무는 속삭였습니다. “와서 놀자.
“난 너무 나이가 들고 비참해서 놀 수가 없어.”소년이 말했습니다.
“난 여기로부터 나를 먼 곳으로 데려 갈 배 한 척이 있었으면 좋겠어.
너 내게 배 한 척 마련해 줄 수 없겠니?
“내 줄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렴.“하고 나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멀리 떠나갈 수 있고......
그리고 행복해 질 수 있겠지.“
그리하여 소년은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서
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으나......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 얘야,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사과도 없고..".
" 난 이가 나빠서 사과를 먹을 수가 없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 내게는 이제 가지도 없으니 네가 그네를 뛸 수도 없고...... "
"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뛰기에는 난 이제 너무 늙었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 내게는 줄기마저 없으니 네가 타고 오를 수도 없고......"
" 타고 오를 기운이 없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 미안해," 나무는 한숨을 지었습니다."
무언가 너에게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나는 다만 늙어 버린 나무 밑동일 뿐이야, 미안해......"
" 이제 내게 필요한 건 별로 없어.
앉아서 쉴 조용한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난 몹시 피곤해." 소년이 말했습니다.
" 아, 그래."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굽은 몸뚱이를 펴면서 말했습니다.
"자,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밑동이 그만이야.
얘야, 이리로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소년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느낀점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말 배워야 할 교훈을 배웠다. 책 속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 남자를 위해 말 그대로 아낌없이 다 주었다. 나무는 그 남자를 위해 몸소 희생을 하며 그에게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아마 사람이었으면 간, 쓸개까지 아마 다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세상은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점차 줄어드는 것만 같아, 참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제는 무안 백련 축제에 간 적이 있었다. 가족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두 다리가 없는 채로 나무판자에 바퀴를 단것을 밀고 다니며 구걸하는 모습을 봤다. 어느덧 그 아저씨가 내 옆쪽까지 왔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며 외면을 하였다. 내 주머니에는 돈이 꽤 있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줄 수가 없었다. 왜 줄 수 없었을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시선을 외면하며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그 아저씨를 지나고 몇 분 뒤에도 다른 아저씨께서 오시자 이번에도 외면을 하고야 말았다. 그 아저씨 바구니에는 천 원짜리 몇 장과 오천 원짜리 밖에 없었다.

이처럼 요즘 세상은 정이라는 게 많이 없어졌다는 것을 몸소 체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나무처럼 되지는 못하는데, 나무의 도움만 받는 그 남자가 돼 가는지......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정이 철철 넘치는 그런 따뜻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변해 버렸다. 나눠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이용하고 부려먹는 게 쇄도하고 있다. 이렇게 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을 보면 정말 화까지 날 것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현실에서는 잘려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많긴 많은가 보다. 나도 내 마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심을 것이다. 그래서 이용하지만 말고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베풀고 사랑한다면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가 마침내는 모든 사람들이 못 베풀고는 못 사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