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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홍길동전(洪吉童傳) - 허균 (줄거리)

[Google책] 홍길동전

홍길동전 독후감 모음

1

홍길동전은 조선시대 홍 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길동이 신분 차별에 고통받다 집을 떠나 도적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도술로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던 길동은 나라의 인정을 받아 병조판서가 됩니다.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왕위에 오르지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국하여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립니다.

2

조선 세종 때, 홍 판서의 시비 춘섬에게서 태어난 길동은 얼자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천대를 받습니다.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지만, 길동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을 피해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릅니다. 도적 무리를 만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을 돕습니다.

전국적으로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으려 하지만, 신출귀몰한 도술로 번번이 피합니다. 결국 조정은 길동을 회유하기 위해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고, 길동은 이를 받아들여 도적 생활을 청산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얼 차별이 존재하는 조선 사회에 환멸을 느낀 길동은 무리를 이끌고 남경으로 떠나,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됩니다. 율도국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던 중 아버지 홍 판서의 부음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릅니다. 이후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왕으로서 어진 정치를 펼치며 태평성대를 이룹니다.



3

조선 세종 때, 명문가의 자제인 홍 판서와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술과 무예에 능했으나, 천한 신분 탓에 멸시와 차별을 받는다. 길동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고, 홍 판서의 첩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시기하여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한다. 위기를 벗어난 길동은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고, 도적 무리의 소굴에 들어가 그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된다.

길동은 자신의 무리를 '활빈당'이라 이름 짓고, 부패한 관리와 악덕한 부호를 징벌하여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는 활약으로 그 명성이 전국에 퍼지자,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지만, 뛰어난 도술과 지략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한다. 조정은 결국 회유책을 써서 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제수하고, 길동은 이를 수락하여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결국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남경으로 향하고, 제도라는 섬에 정착한다.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왕위에 오른 길동은 율도국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아버지 홍 판서의 부음을 전해 듣고 조선으로 돌아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 길동은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4

조선 세종 때, 명문가 출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고, 도술과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천한 신분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며, 집안에서도 멸시와 차별을 당한다. 홍 판서의 첩 초란은 비범한 길동을 시기하여 장차 집안에 화근이 될 것이라 여겨 자객을 보내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뛰어난 도술로 위기를 모면한 길동은 결국 정든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게 된다.

정처 없이 떠돌던 길동은 우연히 도적 무리의 소굴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 이름을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진다.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동원하여 체포 작전을 펼치지만, 길동은 뛰어난 도술과 지략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하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결국 조정은 강경책을 철회하고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길동은 이를 수락함으로써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한다.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고,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길동은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을 전해 들은 길동은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형 길현의 간청과 신하들의 충언으로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훗날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길동전 첫 쪽

5

조선 세종 때, 명문가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큰 굴레이자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조선의 신분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즉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형 길현의 간청과 신하들의 충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말년에 길동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6

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남다른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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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용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게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비범한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길동은 학문에도 뜻을 두었지만,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며, 천한 무예를 익힌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고통받던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기 전에 활빈당을 모아 그동안 모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산시킨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은 요괴들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였는데, 길동은 도술을 써서 요괴들을 물리쳐 율도국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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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용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게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남다른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길동은 학문에도 뜻을 두었지만,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며, 천한 무예를 익힌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고통받던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기 전에 활빈당을 모아 그동안 모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산시킨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은 요괴들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였는데, 길동은 도술을 써서 요괴들을 물리쳐 율도국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또한, 조선의 신분제 사회와는 다르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펼쳐 율도국을 태평성대로 이끈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율도국으로 돌아온 길동은 더욱 정치에 정진하여 율도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든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을 제정하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쓴다. 또한, 주변국들과의 외교 관계에도 능숙하여 율도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만년에 이르러 길동은 자신의 두 아들, 현과 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율도국의 백성들은 길동의 어진 정치와 업적을 기리며 오랫동안 그를 칭송하였다. 길동의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전해져, 조선 시대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웅담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옥상의 민들레꽃 - 박완서

  [Google책] 옥상의 민들레꽃

줄거리

안녕! 오늘은 박완서 작가님의 「옥상의 민들레꽃」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궁전 아파트’라는 곳에서 일어난 두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건과,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야. 마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더 마음이 쓰일 거야.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에서 두 할머니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해. 궁전 아파트는 이름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아파트인데, 그런 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지. 아파트 주민들은 이 일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며 대책 회의를 해. 하지만 사람들은 진정으로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보여줘.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야.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라는 아이가 있어. ‘나’는 어른들의 그런 모습에 의문을 느껴. 어른들은 왜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 ‘나’는 예전에 자신도 힘든 시기를 겪었었고, 그때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꽃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아주 특별한 제안을 해. 바로 아파트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자는 거야. ‘나’에게 민들레꽃이 희망을 주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민들레꽃이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나’의 생각은 어른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어른들을 설득해.

‘나’의 제안을 통해 어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돼. 바로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마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물질적인 가치보다 인간적인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지.

이야기 속에서 민들레꽃은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지녀.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꽃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을 상징해. 또한,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도 해.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을까? 혹시 물질적인 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만은 아니야.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야. ‘나’라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가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겨.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될 거야.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 무심코 지나쳤던 이웃의 미소, 이런 작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큰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생각해 보길 바라.

이 이야기가 네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주었으면 좋겠어. 그 씨앗이 자라서 따뜻한 마음과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꽃피우기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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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옥상의 민들레꽃」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았어. 마치 옥상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쉽게 정리되지 않았거든. 이 이야기는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어.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에서 두 할머니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돼. ‘궁전 아파트’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곳에는 슬픔과 아픔이 가득했지.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건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모습만 보여줬어. 마치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돈이 먼저인 것처럼 느껴져서 씁쓸했어. 어른들은 왜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걸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나’라는 아이는 어른들과는 달랐어. ‘나’는 예전에 힘들었던 시기에 옥상에서 민들레꽃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민들레꽃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지.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자는 제안을 해. 어른들은 ‘나’의 제안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해.

‘나’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안타까웠어.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지만, 마음속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따뜻한 인간애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 마치 껍데기만 남은 과일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가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해. 민들레꽃을 심는 행위를 통해, 어른들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되찾게 되는 거야.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나도 모르게 물질적인 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어.

‘나’에게 민들레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어. 희망과 용기,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였지.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꽃처럼, 우리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 또한,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해 주었어.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어. ‘나’라는 아이의 작은 행동이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 예를 들어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이웃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작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큰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옥상의 민들레꽃」은 나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겼어.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마치 ‘나’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이 책을 읽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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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궁전 아파트에는 슬픈 일이 두 번이나 있었어. 칠 층 베란다에서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신 거야. 실수로 떨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라니 정말 마음이 아팠어.

아파트는 멋있어 보이지만, 슬픔을 막아주지는 못했어. 어른들은 이 일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만 했지, 할머니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정말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어. 마치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

나도 예전에 힘든 적이 있었어. 그때 우연히 아파트 옥상에서 민들레꽃을 봤는데, 그 작은 꽃이 나에게 큰 힘을 줬어. 시멘트 틈에서 꿋꿋하게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니까,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어. “우리,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어요!” 하고 말이야. 내가 민들레를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민들레를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른들은 내 말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어른들에게 이야기했어. 할머니들이 왜 힘드셨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야.

내 생각에, 어른들은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것 같았어. 겉으로는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부러움을 사지만, 마음속은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많았던 거야. 서로 따뜻하게 대해주고, 힘든 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린 것 같았어.

이야기 속에서 민들레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척박한 곳에서도 씩씩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우리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는 것 같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혹시 힘든 사람은 없는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는지 말이야. 그리고 나도 민들레처럼 씩씩하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야겠다고 다짐했어.

「옥상의 민들레꽃」은 슬픈 이야기지만,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해. 작은 민들레꽃처럼, 우리도 작은 힘으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야.

이 이야기가 너희들에게도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씨앗이 자라서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쁜 꽃을 피우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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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한 아파트의 비극을 넘어, 현대 사회의 단면과 인간 소외,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잊혀져 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시작됩니다. ‘궁전’이라는 화려한 이름과는 달리, 그곳은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현대 사회의 이면, 즉 물질적인 풍요 속에 가려진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의 재산 가치 하락과 연결 지어 생각하며, 진정으로 고인들의 아픔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현대 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인물입니다. ‘나’는 과거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민들레의 생명력은 ‘나’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합니다.

‘나’의 제안은 단순히 꽃을 심자는 행위를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외침과 같습니다. ‘나’에게 민들레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 그리고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메말라 있던 어른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그들은 점차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물질적인 풍요가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는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가? ‘나’의 행동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즉, 물질적인 가치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우선시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나’라는 인물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개인의 작은 행동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도 깊은 울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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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히 아파트에서 벌어진 연이은 자살 사건을 넘어,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의 폐해, 공동체 의식의 붕괴,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모색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궁전 아파트’는 이 소설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입니다. ‘궁전’이라는 이름은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두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의 무대가 됩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내면적 공허와 고독을 채워줄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그들은 고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애도하기보다는 아파트 가격 하락을 우려하며 대책 회의를 여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붕괴와 개인주의의 심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현대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는 어린 화자는 어른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나’는 과거 자신의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만난 민들레를 통해 위로받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제안은 단순한 조경 사업을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적 유대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민들레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 힘을 상징합니다. 또한, 민들레가 씨앗을 퍼뜨려 번식하는 모습은 나눔과 공존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암시합니다. ‘나’가 민들레를 통해 위로를 받았듯이, 다른 사람들도 민들레를 보며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가? ‘나’의 행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즉, 물질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적인 가치를 회복하며,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삭막한 현실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어른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인간성을 일깨웁니다. 이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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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내포한 작품이다. 고층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의 심화, 공동체 의식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특히, 오랜 사회 경험과 조직 생활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경험한 중년 남성 독자에게 이 작품은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품의 주된 배경인 ‘궁전 아파트’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궁전’이라는 명칭은 외형적인 풍요와 사회적 성공을 암시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이라는 비극의 현장이 된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내면적 결핍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외형적인 번영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물질 중심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이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애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와 개인주의의 심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조직 내의 협력과 공동 목표 달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유대의 약화와 인간성의 상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는 어린 화자의 시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과거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민들레를 통해 위안을 받았던 경험을 회상하며,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은 단순한 조경 사업을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독자에게 ‘나’의 제안은 인간적인 가치와 정서적 교류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품에서 민들레는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수행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 힘을 상징한다. 또한, 씨앗을 퍼뜨려 번식하는 민들레의 모습은 나눔과 공존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행위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고, 잊혀졌던 인간성을 일깨우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는 개인의 작은 행동이 사회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는 데 개인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조직 생활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감을 체득한 독자에게 이 작품은 조직 및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Daum책] 벙어리 삼룡이 http://durl.me/7obmev

[위키문헌] 벙어리 삼룡이 원문 보기 (저작권 소멸)

책 소개

1925년 '여명'에 발표된 단편 소설. 신체적 불구와 함께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을 통해, 고결한 사랑의 가치, 독자적인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불의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작품의 줄거리

십 사오 년 전, '내'가 열 살 안팎인 때의 일이다. 청엽정(동리 이름에 '정'이 붙는 것은 일제 시대이기 때문이다.)을 연화봉이라고 부를 무렵, 그 동네에는 인심이 후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세력도 있는 오 생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오 생원의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있었는데, 볼품없는 외모에 흉한 걸음의 그는 마음이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해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편, 버릇이 없고 성격이 고약한 주인 아들은 삼룡이를 괴롭히나 삼룡이는 언제나 참는다.

주인 아들은 현숙한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매사에 훌륭한 신부와 비교되자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는 자기 아내를 미워한다. 삼룡이는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삼룡이에게 새아씨는 부시 쌈지를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말썽이 되어 삼룡이는 주인 아들에게 죽도록 맞은 뒤 내쫓긴다. 어느 날, 삼룡이는 주인 아씨가 중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걱정 끝에 그 방에 들어갔다가 들켜서 오해를 받고는 매를 맞고 쫓겨난다. 그날 밤, 그 짚에 불이 난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삼룡이는 주인을 구출해 낸 다음 다시 불길로 들어가, 타 죽으려고 불 속에 누워 있는 새아씨를 찾아내어 안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삼룡이는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등장 인물


  • 삼룡: 말 못하는 벙어리이나 충직한 머슴. 새아씨에 대한 사랑을 방화 행위로 표출한다.
  • 오생원: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나 자식을 잘 못 키웠다는 아픔을 지니고 있다.
  • 오생원 아들: 포악하고 무모한 성격. 새아씨와 삼룡이를 비인간적으로 대한다.
  • 새아씨: 영락한 양반의 딸로 돈에 팔려 시집을 와서 남편에게 학대를 받는다.


1

저는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의 줄거리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벙어리 삼룡이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어느 집의 돌쇠로 살아가고 있었다. 삼룡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도 없이 살고 있다.

그 집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할 여자를 보고 삼룡이가 한눈에 반한 듯싶다. 주인의 아들이 결혼한 날 삼룡이는 쓸쓸하게 혼자 있어야 했다. 큰 덩치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주인의 아들이 자신의 색시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넣어 보기도 하였지만, 그 아들은 거부하였다. 자기가 좋다고 결혼했으면서 왜 그러는지 삼룡이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어느 날 색시네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아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색시를 내두고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본 삼룡이는 색시가 너무 안타까워서 자신이 구하러 갔다.

사랑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삼룡이가 너무 보기 좋았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색시를 구했지만, 결국 삼룡이는 죽었다고 한다.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의 줄거리를 끝마쳤으니 제 소감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나도 다음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면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을 무시한 적이 많았는데 함부로 무시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국어수행평가 계기로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벙어리 삼룡이는 추한 외모에 벙어리고 보잘 것 없는 하인이지만 영혼만은 순결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천진성과 충직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상룡이 순결한 사람은 이 벽을 없애고야 만다 불 속에 타 죽고자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주인 아씨를 구해 내고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띈 채 죽는 것이다.

내가 벙어리 삼룡이였다면 나 먼저 살려고 자기만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런 벙어리 삼룡이의 희생 정신이 중요하고 죽음이 갖는 추와 고난의 이미지가 없으며 사랑이 완성되는 짧은 순간을 나타낸다 어린 주인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 못하는 벙어리더라도 사람의 인격은 지켜 주어야 되는데 자기 마음대로 벙어리를 괴롭히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벙어리 삼룡이를 부른다 사람은 말 못하고는 못사는데 장애인이나 벙어리 삼룡이처럼 말 못하는 벙어리라도 무시하면 나도 그만큼 죄를 얻는다는 참다운 교훈을 알아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3

벙어리 삼룡이란 책은 이름만 들어 봤지 내용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독후감도 쓸 겸 책을 한 번 읽어 봤다.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 년 전 일이다.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연화봉에서 살던 오 생원은 아주 부지런하고 인심이 후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다. 오 생원에게는 주인에게 헌신적인 벙어리 하인 삼룡이와 삼대 독자라 너무 버릇없이 자란 열 입골 살 먹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삼룡이를 심하게 학대하고 구박했다. 인심이 후한 삼룡이를 그렇게 학대하다니 오 생원의 아들은 한 대 맞아야 해!

그 해 가을 오 생원은 몰락한 양반의 집 딸을 삼만 냥의 거금을 주고 데려 와 자기 아들과 결혼을 시켰다. 새색시는 아름다운 외모에 참한 인품을 지녔는데, 흠이 많은 새서방은 이런 새색시를 미워하여 혼인한 지 며칠 후부터 신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오 생원과 주변 사람들이 아들을 나무라자 화가 난 그는 새색시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삼룡이는 구박을 받는 주인 아씨를 몰래 동정하게 된다. '아씨를 동정하다가 오해해서 삼룡이가 왠지 얻어 맞을 것 같다. 어뜩해......'

어느 날 삼룡이는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실컷 얻어맞고 길에 자빠진 새서방을 업어다가 누인다. 아씨는 삼룡이의 충직한 마음에 감동하여 비단 헝겊으로 쌈지 하나를 만들어 준다. 어느 날, 이 비단 쌈지를 본 새서방은 삼룡이와 아씨의 관계를 오해하여 새색시를 마당에다 내동댕이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역시 오해하다니.'

삼룡이는 새서방을 내어 던지고, 아씨를 구해 낸다. 이튿날 아침 새서방은 쌈지를 갈갈이 찢으며 분노하고 삼룡이를 채찍으로 마구 때리며 안방 출입을 못하게 한다. '어떻게......삼룡이만 불쌍하다. 새서방 같은 나쁜 놈은 진짜 없어져야 하는데 꼴 보기 싫을 정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계집 하인으로부터 주인 아씨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삼룡이는 안방 출입이 금지된 것도 잊은 채 안방으로 뛰어들어 목 매어 자살하려던 아씨를 구해 낸다.

이 일로 삼룡이는 더욱 새서방의 오해를 사게 되어 심하게 매를 맞고 그 이튿날 밖으로 내쫓긴다. 쫓겨난 삼룡이는 그 동안 믿고 의지한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 역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날 밤 오생원의 집에 화염에 싸인다. 삼룡이는 주인을 구한 뒤에 아씨를 찾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삼룡이는 구해 달라는 새서방을 뿌리치고, 아씨를 찾아 불길을 헤치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안 그는 그제서야 아씨를 내려놓는데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다. '어뜩해.. 진짜로 삼룡이만 불쌍하게 되었다. 주인에게 정말 충직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삼룡이는 순수한 하인이었는데......죽게 되다니......'

집은 모조리 타고 그의 무릎 위에는 아씨가 누워 있다. 그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는지, 그의 입가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엷게 나타나 있다.

돈과 신분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벙어리라는 약점을 갖고 있는 삼룡이가 상전인 아씨를 좋아한 것은 불행으로 닥치고야 말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항상 슬프고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 지는데 벙어리 삼룡이는 그렇지만은 않는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었지만 신체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약자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이 모시는 상전이라니......너무 안타깝다. 불쌍히 만날 매만 맞기만 하고......아씨를 구하고 죽고야 마는데......이렇게 슬플 수가......

그래도 항상 주인에게 순종적이던 삼룡이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 들어가 아씨를 구하는 것을 보고 사랑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줘서 멋있었다.

4

벙어리 삼룡이 읽은 후에 옛날의 고통스러운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게 된다. 삼룡이가 하인으로 주인의 집에서 일했다. 주인이 삼룡이한테 잘 주지 않았지만 삼룡이가 원망하지 않고 계속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특히 주인 아들이 삼룡이에게 자주 폭력을 썼다. 그래도 삼룡이가 아주 충성스럽고 주인 아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인 아들이 위급한 경우에는 꼭 자기의 힘을 다 하였다.

그런데 주인 아들의 색시가 들어왔을 때 이런 상화가 바뀌었다. 삼룡이가 색시한테 점점 사랑에 빠졌다. 색시 때문에 삼룡이가 드디어 주인에게 반항했다. 마지막으로 삼룡이가 주인의 집에서 방화했다. 그때 삼룡이가 주인과 색시를 구했지만 자기가 끝내 색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면서 죽었다. 정말 슬픈 이야기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화재 부분이다. 거기서 이 소설의 절정이다. 삼룡이 드디어 참지 못해서 반행하고 복수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아주 강한 감정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삼룡이가 사랑하는 여자를 구해서 죽어도 기분이 좋아서 독자들의 기분도 점점 좋아졌다.

이 소설 중에서 제일 궁금한 부분은 색시가 도대체 무슨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삼룡이가 무슨 맘호가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맘호인지 궁금하다.

프랑스의 소설 노틀담 성당이랑 벙어리 삼룡이는 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콰지모도랑 삼룡이는 둘 다 장애가 있고 또 자기 부모(콰지모도는 엄마/ 삼룡인 아빠)를 죽인 원수의 손에서 자랐다. 못 생기고 지위가 낮은 남자가 아주 착하고 너그럽고 잘 참은 사람이지만 항상 다른 지위가 높은 사람들한테 깔보고 구박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의 힘을 통해서 나쁜 사람들에게 반항하고 복수했다. 이 두 소설은 다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마음씨가 곱지만 못 생긴 사람들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운명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했다. 아주 의미 깊은 소설들이다.

5

이 작품의 작가 나도향은 1902년3월30일 생이다 본명은 나경손이고, 초기 작품 젊은이의 시절, 환희에는 감상적이며 애상적이고 낭만주의적 색채가 묻어있다. 그 뒤에 그러한 감성에서 벗어나 1923년부터 여 이발사, 백조 등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써 내면서 비로서 주관적이고 애상적인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작가로서 완숙의 경지에 올랐을 때 요절하였다.

나도향의 작품 벙어리 삼룡이는 내가 중학교 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특이하고 웃겨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는 삼각관계처럼 벙어리 삼룡이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그 당시의 신분적 관계로 인해 태어났을 때부터 추남인데다 땅딸보이고 벙어리인 오생원네의 머슴인 삼룡이는 새로 들어온 주인댁의 새아씨가 망나니인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그것이 연정으로 변하여 사모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 속이 시원했던 것은 평생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인댁 어른을 위해 사는 벙어리 삼룡이가 끝내는 그 집에서 쫓겨나 자기 자신의 자아를 깨달았을 때 나는 그때 속이다 시원했다 그리고 불이 난 집으로 뛰어 들어간 삼룡이가 주인님을 구해 오고 이미 죽어 버린 아씨를 불타는 집에서 안고 나오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정말 슬프고 삼룡이의 사랑이 대단해 보이고 그 당시의 신분적 차별로 인해 삼룡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주인 아들은 못되고, 철도 안든 데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마을에서 소문난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삼룡이는 평생을 주인 어른을 위해 부지런하게 살고,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주인 어른을 무지 사랑 하는 머슴이었다. 왜 이렇게 소설에서는 둘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만들어 낸 것일까?

아마도 그건 삼룡이의 순수함과 마지막까지 그 순수함 때문에 자신의 살이 타는지도 모른 채 아씨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린 삼룡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였던 것 같다. 참 다행인 것은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머슴도 없고 주인도 없는, 그래서 이런 신분적 차별로 인한 비극이 없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쓴 나도향은 이때 당시 25살이였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쓴 나도향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 낭만주의 기법을 쓰고 있는데, 특징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인간의 감정에 대한 사실적 해부 등 복합적 요소가 혼합된 작품이다. 아마 이 작품을 쓴 나도향은 이 시대의 신분적 차별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벙어리 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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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 공략일 수도 있다.

1925년 <여명>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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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여명(黎明)>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신체적 불구와 함께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을 통해, 고결한 사랑의 가치와 독자적인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불의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그려 져 있다.

이 소설은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防火)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으로 전형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圖式的)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裏面的) 공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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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는 나도향의 초기 경향인 낭만적, 감상적 정신과 "여 이발사" 등에서의 자연주의적 객관적 관찰의 정신이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세계 인식은 현실적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불구자로서의 운명과 하인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가지고 있고 아가씨는 아름다운 외모의 정상인으로써 주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어 그 단절은 확고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 소설의 낭만적 요소는 삼룡이라는 인물의 설정이다. 즉 삼룡이는 비록 불구이고 보잘것없는 인물이나 그의 혼만은 순결하다. 이는 문학사에 있어 불구자, 혹은 백치의 천진성, 충직성과도 연관된다 하겠다. 앞서 말한 신분적 제약과 신체적 불구의 벽은 소설의 결미에 가서 삼룡의 순결한 사랑에 의해서 그 벽을 없애 버린다. 즉 그의 죽음은 현실적인 醜와 고난의 마침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그 찰나에서 작품이 멈춤으로 인해 낭만성은 더욱 고조되는 것이다.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해서 15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자의 존재는 비일상적인 삼룡의 행위와 그가 관련된 소설의 스토리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변형된 액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 부분을 제외한 소설의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적 시점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점 통일의 결여성이지만 이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적인 갈등과 사건의 극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이러한 시점의 혼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삼룡은 입체적 성격의 인물이다. 즉 삼룡에게 있어 주인 아씨는 애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주인의 부당함과 자신의 처지를 일깨우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품의 진행에 다라 점차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각성해 가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방화로 이어진다. 즉 부당한 억압에 대한 복수와 반항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신의 애정을 승화시키는 이중의 의미를 담은 방화이다. 불을 통해 자신을 억압해 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근원적인 결말 처리 방식은 1920년대 중반 신경향파 문학의 한 조류와도 연관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주, 소작의 관계라는 대립적 구성을 기본으로 살인과 방화로 끝을 맺는 이른바 '살인, 방화 소설'이 유행한 바 있는데 이 작품도 결말은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향의 소설은 초기의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에서 후기에 이르면 대상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변모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기법과 정신이 공존하는 나도향의 후기 소설이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벙어리의 운명과 맹목적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입체적인 성격 창조와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개를 통한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 정신과 사실주의적 기법이 종합된 이러한 성취는 '불'이라는 적절한 상징적 장치의 사용과 더불어 이 작품을 나도향의 대표적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防火)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으로 전형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圖式的)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裏面的) 공략일 수도 있다.

이 작품 속의 삼룡은 벙어리라는 생리적 결함 외에 옴 두꺼비 같은 모습의 소유자며, 물건으로 존재하는 하인의 신분이다. 이런 삼룡이가 새색시를 연모함은 일견 환상적, 낭만적 행위일지 모르나 새색시에 대한 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생원 아들의 새색시에 대한 억압과 학대는 삼룡에게 동정을 넘어서서 연모의 정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어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Daum책] 어린 왕자 http://durl.me/3qz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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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이 책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어릴 때도 많이 읽어 봤다. 그러나 그때는 내용을 잘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번에 읽어 보니까, 내용이 모두 이해가 되고, 교훈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인'나'는 비행기의 추락으로 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서로 친해 지게 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 달라고 했는데, 이것저것 그려도 싫다고 그러다가 빈 상자를 하나 그려 놓으면서 양의 모습을 상상하라고 하자 어린 왕자가 좋아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원래 그 어린 왕자는 우주에 있는 한 별에 살고 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되고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는데, 참 특이하고 다양한 사람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와 장미의 얘기, 바오밥 나무 이야기 등등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어린 왕자가 다시 자신의 별로 떠날 때는 많이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어린 왕자의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도 어린 왕자처럼 많은 곳에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많은 사람도 만나 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해 보고......

그리고 언제나 어린 왕자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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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왕자를 읽기 전에는 빨리 읽고 싶어 지고, 긴장도 되었는데 막상 읽다 보니 재미가 없고 이해도 잘 안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다 보니 어린 왕자가 첫 번째 별나라를 거칠 때부터 왠지 재미있어 질듯 했다. 그때부터 뒷이야기가 궁금해 졌다.

첫 번째 별부터 네 번째 별까지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는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다섯 번째 별에서의 가로등 켜는 사람은 다른 별 보다 훨씬 충실하고 현명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잠시 쉬지도 않고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여섯 번째 별을 지나 일곱 번째 별인 지구로 오게 된다. 그런데 지구에 오니 어린 왕자가 자기 별에서 소중히 여기어 키우던 꽃 한 송이가 수천, 아니 수만 송이나 자라 있어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지구에는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도 어린 왕자의 별에서는 그 한 송이가 너무나도 소중한 꽃이었으니 그것으로도 됐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와서 ‘길들여 지는 것’의 의미와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해’였다. 아마 작가는 어린 왕자를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잘 웃고, 귀여우며, 양 한 마리를 갔고 싶어 했지. 그것이 그가 세상에 존재 한다는 증거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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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베리, 1933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앙투안 마리 장바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 (프랑스어: 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년 6월 29일 ~ 1944년 7월 31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공군 장교였다. 북서 아프리카·남대서양·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 비행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나 다카르에서 툴루즈까지 우편물을 항공 수송하는 회사에 다녔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공군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프랑스 북부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943년부터 다시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1944년의 그의 마지막 비행에서 실종됐는데, (추락사로 추정)1990년에 그의 유품으로 보이는 비행기 부품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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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어린 왕자는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그때 읽고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어린 왕자는 생각이 참 새로운 것 같다. 왜냐하면 ‘나’가 처음으로 그린 모자 모양의 그림을 보아 뱀이 코끼리를 삼킨 거라는 놀라운 생각들이 그렇다. 또 자꾸 ‘나’가 그려 준 상자에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상자 안에 있어”라고 하면서, 상자를 그린 종이를 주니까 너무 행복해 한 것을 보아 어린 왕자의 생각은 순수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어린 왕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점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를 통해 똑같은 눈으로 보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바로 어린 왕자 식 생각이다. 만약 누가 “이 사과는 무엇일까”라고 물어 본다면, 어린 왕자는 평범한 사과를 사과로 보지 않고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 중학생이다. 어른들은 공부 전쟁의 시작이라며 안쓰러워 하신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어린 왕자가 되기로 했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는 새로운 중학교 생활이지만, 내가 이젠 정말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작은 실수나 잘못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셨지만, 이젠 내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는 나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는 좀더 청소년다운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생활하도록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너의 이력에는 OO중학교 졸업이라는 것이 붙어 다니는 거”라는 아빠의 말씀에 후회 없는 즐거운 중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 OO중학교의 어린 왕자, 이제부터 화이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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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하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책입니다.. 나도 어린 왕자를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한번 책에 집중하면.. 푹 빠져서.. 읽을 때 마다 긴 책은 두세 권. 짧은 책은 다섯 권 정도를 읽습니다.

내가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별생각 없이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선생님이.. 어린 왕자를 읽어 오라고 숙제를 내셨습니다. 난 그래서 어린 왕자를 한번 더 읽게 됐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릴 때여서.. 짧은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근데.. 사학년에 올라와서......  아주 두껍게 자세하게 표현된.. 어린 왕자를 읽고...... 육학년이 되어서는 숙제로 어릴 때 읽었던.. 짧은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난 어린 왕자라는 책을 3번씩이나 읽으면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처음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라는 책은...... 그냥.. 어린이의 생각을 길러 주기 위한.. 창작 동화? 이쯤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학년에 올라와서 읽은 어린 왕자라는 책은...... 아주 자세하게 세부 내용까지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짧은 책으로만 접해 왔던 책을 좀더 자세하게.. 긴 책으로 읽으면서.. 난 어린 왕자의 성격...... 양을 그려 달라고 하였던 이유......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좀더 깊숙이 들어가.. 생각을 하였습니다..  육학년이 되어서 읽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 생각을 하면서.. 4학년때 보다는 좀더 깊숙이 들어가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두고 여행을 한 까닭...... 한마디로.. 나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난 내 상상의 날개를 펼쳐 요리조리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비록 궁금증을 상상으로면 펴냈지만...... 앞으로는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어딘가엔 나와 있을 내용을.. 생각하면서 책을 더 자세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음으로써 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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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눈에 띄었다. 아! 이 책은 그 유명한 어린 왕자? 나는 바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 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뭐.. 읽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린 왕자의 스토리를 내 멋대로 상상해 보니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 졌다.

첫 번째 별부터 네 번째 별까지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는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다섯 번째 별에서의 점등인은 다른 별보다 훨씬 충실하고 현명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라도 쉬지도 않고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여섯 번째 별을 지나 일곱 번째 별인 지구로 오게 된다. 그는 자신이 별에서 소중히 여기어 키우던 장미 한 송이가 어린 왕자의 별에만 있었던 줄 알고 있었지만 어린 왕자는 엄청난 무리의 장미 송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왕자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워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 왕자의 장미는 꼭 장미가 자신뿐인 듯이 그렇게 어린 왕자 앞에서 행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지구에는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도 어린 왕자의 별에서는 그 한 송이가 너무나도 소중한 꽃이었으니 그 것으로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중심 내용 또는 내게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다가 와 '길들여 지는 것’의 의미와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해’라고 깨우쳐 주었던 것. 별것도 아닌 듯싶지만 내게 무지 도움이 될 만할 것 같았다.

어린 왕자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조그마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게 해 주었고,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린 왕자 스토리를 한번 더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어린 왕자는 여러 별을 들려 여행을 떠나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으므로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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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들이 사물을 보고 판단을 내릴 때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다. 겉모습이 멋지다, 혹은 크다, 웅장하다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 같다. 사물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다. 친구를 사귈 때는 집이 잘 살아야 한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것만 조건으로 내세울 뿐이지 속 마음이 따뜻하다, 착하다는 것은 보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는 다르다. 그 아이의 성격 등을 보고 판단한다. 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집이 좀 못 산다고 해서 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벌써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가나 보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천사로 태어나서 악마로 죽는다'고. 나는 성격보다 겉모습, 그러니까 쟤와 친하게 지내면 뭘 잘 받을 수 있겠구나...... 같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즐겨 보는 <광수생각>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그 광수라는 작가, 자기가 운전이 미숙할 때에는 규칙이 익숙하지가 않아 신호 위반을 했는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 져서 신호 위반을 한다고. 좀 우스꽝스러운 글일 수도 있지만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나 사물을 대할 때도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판단하지만 나중에는 머리 속에서 모두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른 아니, 어린이라도 지금 같이 겉모습보다 속마음을 보고 느끼며 사람들이나 사물을 그렇게 대한다면 지금 이 힘든 사회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진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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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읽는 어린 왕자

어린 왕자라 하면 어린이들이나 읽는 동화라고 생각되겠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 봐야 하는 동화라고 하여서 나 역시 의구심을 품고 어린 왕자를 집어 들었다. 어린 왕자의 대략적인 내용은 조종사가 사막에서 표류하던 중 어린 왕자를 만나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정도의 흐름은 어렸을 적에 읽었던 기억으로 알고 있었으나 다시 읽어 본 어린 왕자의 세세한 내용은 정말 충격이라고 할 정도였다. 기억나는 구절은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 여우에게 묻는다. '여긴 너무 외롭구나, 사람들은 어디에 있니?' 그러자 사막 여우가 대답하길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라고 대답을 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 이런 구절을 읽었을 때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데 왜 외롭다는 거지? ' 라고 생각하며...... 뭔가 되게 내용이 어려운 책으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 본 어린 왕자는 정말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또 생각나는 구절은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키운다. 그러면서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선 책임을 지어야 해' 라고 이야기 한다. 정말 이 구절도 너무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외에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 보니 마음에 와 닿는 깊은 뜻을 가진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어린 왕자와 같은 삶을 부러워하고 때론 동경한다. 우리의 삶이란 행복 속에서 고난과 역경이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어린 왕자 역시 그 안에서 너무나 외롭고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 본 어린 왕자는, 그 안의 의미들이 마음 깊이 와 닿는 나로써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꼭 다시 추천해 주고 싶은 책으로 자리잡았다.

사하라 사막 추락 직후, 기체 옆에 서 있는 생텍쥐베리
1935년 12월 30일 새벽 2:45. 파리를 이륙한 지 19시간 44분 만에 생텍쥐베리와 그의 동료가 몰던 비행기가 사하라 사막에 추락했다. 그들은 당시 15만 프랑의 상금이 걸려있어 인기가 많았던 비행 스피드 경쟁의 일환으로 사이공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4일동안 사막을 헤멘 끝에 동료와 함께 베두인 족에게 구조되었고, 이때의 고립 경험이 그의 저술 활동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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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왕자'라는 책을 중학교 때 읽게 되었다. '어린 왕자'에는 어른과 아이의 가치관의 차이점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문제의 <보기>에도 나왔던 어린 왕자가 코끼리를 삼킨 구렁이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었을 때 잘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어떤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에게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집어치우고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잘 나와 있다. 어른들은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어린 왕자의 창의적인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순수하고 지금처럼 물질적 가치를 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이 사회의 틀에 맞춰서 생활하다 보니 감수성이 삭막해 졌을 것이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당장의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인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의 인격을 우선으로 보기보다는 재산이나 권력을 먼저 보는 경우도 많이 있고, 미래에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것들만을 좋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순수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창의적이거나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린 왕자의 그림을 '모자'라고 했다. 아마 어른들 중 대부분이 그 그림만 보았을 때는 '모자'라고 답할 것이다. 어린이의 무한한 창의력은 어른들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아이들은 이처럼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을 중시하거나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사람들을 사귀거나 대할 때도 별 조건을 따지지 않고 마음만 잘 맞으면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고, 판단을 할 때 어른들처럼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으로 중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어린이들이 커 갈수록 또 지금의 어른들처럼 사회의 틀에 맞추어 져서 변해 갈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처럼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조금 있지만, 나는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신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비록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가치를 필요로 하는 분분이 많이 있지만 모든 것을 따지고, 깊이 생각해 보면 진정하게 필요한 것인 정신적인 가치이다. 지금의 사회는 고정 관념과 틀에 고정되어 있다. 이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사람들이 물질적인 가치를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 가고 있다. 나는 이 사회체제부터 바뀌어야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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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어린 왕자 이야기를 접해 보긴 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읽어 보긴 했지만 어린 왕자의 이상야릇한 생각들과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읽고 있던 나에게 흥미를 갖게 해서 열심히 읽다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면 화가 나서 중간에 책을 닫아 버리곤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읽고 나니 어느새 어린 왕자가 내 마음속 친구가 되어 버렸다.

책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여행하다가 마지막으로 지구에 들러 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서 양 그림을 선물로 받고, 자신이 다른 별에서 경험한 것, 느낀 점 등을 얘기하다가 얼마 후 자기의 별 B-612호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어린 왕자가 여행한 별들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별이 있다. 가로등 하나와 그 걸 켜는 사람, 비록 한 사람 있을 자리 밖에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별이지만 하루 24시간 동안 무려 1천4백 40번이나 가로등을 끄고 켜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 일은 참 의미 있는 직업인 것 같다. 가로등을 켠다는 것은 마치 별 한 개나 꽃 한 송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고 그걸 끄는 것은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참 직업다운 직업이라 느꼈다.

만약 왕이나 허영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본다면 참 '저 사람 어리석군, 누구 하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고 가로등이 필요 없다고 느낄 텐데••••. 참 시간을 어리석게 허비 하는 것 같아' 하면서 분명히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게 얼마나 자기다운 것인가!

마지막으로 많은 내용 중에서 가장 내 기억에 남은 내용은 장미와 어린 왕자가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사랑해 주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경솔하고 까다롭던 장미이고, 그런 장미를 의심하던 어린 왕자였지만 나중엔 참다운 사랑을 알고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모습들이 와 닿았다. 어린 왕자를 읽고 나서 가장 처음 느낀 건데 어린 왕자의 모습이 순수하고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들 같았고, 우리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내면적인 면보다는 외면적인 배경만 중요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마 어린 왕자가 별을 여행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볼 때도 우리들은 마음에서 비추고 있는 진실 된 모습보다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어린 왕자를 읽어 보고 나와 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나도 어린 왕자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지금도 내게 어린 왕자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친구이지만 그의 순수함과 진실 된 마음, 사랑은 꼭 본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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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이다. 같은 반 친구 중엔 책을 많이 읽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서로 책을 나누어 읽기도 하고, 이것저것 읽고 말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어린 왕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자신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모두 더듬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니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은 것은 있지만 정확히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어린 왕자'라는 이름을 가진 책은 없었다. 수업 시간 동안 계속 책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집에 가자마자 책가방을 던지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점으로 가서 몇 권의 책을 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에는 책 표지를 포장지로 싸고 예쁘게 꾸미려고만 했지 이 책이 내게 주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는 10분의 1도 몰랐던 것 같다. 고등 학생이 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나는 이제 겨우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이 책은 어른들의 동화이며, 어른들의 물질주의에 대해, 또는 상상력이 없이 겉모습만 보는 메마른 모습에 대해 비판을 하는 글인 것 같다. 책을 펴자 처음에서는 셍텍쥐베리가 그린 어린 왕자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읽다 보니 어린 왕자의 순수하고 넓은 상상력이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여러 군데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다르다. 그림에서 ´무제´라는 제목의 그림이 많은 것도 보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가 그 그림의 주제이니 그림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이름을 지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왕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할 줄 알면서 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모두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코끼리를 소화하는 보아 구렁이 그림을 그려 주면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대다수가 모자라고 혹은 다른 이야기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모두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논리인데 그것은 별로 일반적이지 못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처음 봤을 때 모자라고 생각한 데 대한 어설픈 변명일지는 몰라도......

어린 왕자는 소혹성 B612에서 산다. 항상 투덜대는 장미와 뽑지 않으면 언제 커서 자신의 별을 집어 삼킬지 모르는 작은 바오밥 나무들, 불을 뿜어 대는 그렇지만 물을 끓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활화산과 한 개의 사화산과 함께......

여기서 장미는 큰 역할을 한다. 어린 왕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이 장미이기 때문이다. 장미는 하찮은 꾀를 부려 왕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건 결국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왕자는 장미와 함께 있을 때는 알지 못한다. 바람막이를 가져다 달라고도 하고, 유리 덮개를 해 달라고도 하고 왕자를 귀찮게 했지만 장미는 왕자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 별에서는 장미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홀로 먼 곳을 여행하면서 장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장미의 외로움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장미 옆에서 외로움을 느껴 여행을 떠났던 어린 왕자가......

첫 번째 별에 있는 왕은 권위적인 인간과 복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생쥐 한 마리밖에 살지 않는 곳에서 그 쥐를 재판하는 왕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별에 나오는 허영꾼은 자기 자신에게 칭찬과 박수를 보내 주기만을 기대하는 속이 텅 빈 이기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별에 사는 술꾼은 목적의식 없는 방관자 또는 염세주의자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엉뚱한 말로 나를 당황시켰던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 별의 상인은 요즘 늘어만 가는 물질 만능주의를,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기계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의욕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왕자는 그래도 이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라 다른 일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다음 별 또한 자신의 상상력 없이 남이 해 놓은 것을 기록하려고만 하는 사람인 지리학자밖에 없어 왕자는 실망을 한다.

이러한 별들을 여행하면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이 가장 깊이 느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자식이나 조카 등을 곁에 두고 살면서 ‘내 주위의 아이들도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어른들은 얼마나 해 보는지 모르겠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나’와 만나게 된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홀로 남겨 진 ‘나’와 까다로운 장미를 떠나 여기까지 온 왕자는 서로를 만나서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된다. 항상 많은 질문을 던져 오지만 정작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는 왕자. 침묵에서 느껴 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전하려고 하는 왕자.

이런 왕자와 '나'는 참된 우정을 서로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21장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네가 오후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하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행복을 느낄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을 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처음부터 갑자기 다가서는 것보다 기다림을 가지고 천천히 조금씩 다가와서 길들인다는 여우의 말도 우리가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꼬집어 주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왕자는 자신이 길들인, 길들여 진 장미를 생각하고 책임을 위해서 ´나´와 이별을 다짐한다. 왕자는 결국 마지막 모습을 ‘나’에게 보이지 않은 채 떠난다. 죽은 듯이 보이지만 죽은 게 아니고 멀고 험한 길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지 못해 순수한 자신의 마음만 가지고 가는 왕자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왕자가 남긴 말은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요즘은 별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늦은 밤 학원 다녀오는 길에 보이는 몇 개의 별 중에서 왕자의 소혹성을 찾곤 한다. 그리고 저기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듯 반짝거리는 어느 별이건 이렇게 말을 걸어 본다. “아직도 그곳에 있니? 장미는 잘 자라니?”라고......

Saint Exupery exhibit - Air & Space Museum, Le Bourget, Paris, France (12)
2003년 프랑스 연안의 지중해에서, 생텍쥐베리가 몰던 P-38 라이트닝 비행기의 랜딩기어가 발굴되어 현재 프랑스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폴러스

[Daum책] 꽃들에게 희망을 http://durl.me/3rmq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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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이다. 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호랑 애벌레는 태어나 참으로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애벌레들이 서로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서로서로 뭉쳐 있는 모습이었다. 호랑 애벌레도 그곳이 궁금해 올라갔고 위로 올라가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 졌다. 그 곳에서 노랑 애벌레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서 그리하여 서로는 밑으로 내려가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데 호랑 애벌레는 많이 행복했지만 저곳이 너무 궁금했고 노랑 애벌레를 버리고 그곳에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

호랑 애벌레는 열심히 올라갔고 노랑 애벌레는 그사이 아픔을 딛고 한 번데기를 만나게 된다 노랑나비는 그 번데기를 따라 번데기가 되어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다. 호랑 애벌레는 정상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정말 허무한 곳이었다.

호랑 애벌레는 그때가 돼서야 후회하고 내려가려고 하지만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노랑나비가 호랑 애벌레를 찾아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고 호랑 애벌레는 그 힘을 얻어 열심히 내려가 호랑나비가 되어 노랑나비와 꽃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게 된다......라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과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그 점으로 봐서 호랑 애벌레, 즉 호랑나비는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목표를 애벌레 탑 꼭대기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곁에 노랑나비가 도와 준 덕에 다행이 호랑 애벌레는 기어 다니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된 것이다. 목표를 삼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불완전하고 안 좋은 목표를 세우지 말라는 뜻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정말 한편의 동화 같지만 많은 교훈을 주는 책인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2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을 읽었다. 예전에 읽어 보았던 책이라 눈길을 끌어서 한번 읽어 보았다.

대충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어떤 호랑 애벌레가"벌레로 만들어 진 기둥 위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그 기둥을 올라가다 만난 노랑 애벌레와 사랑에 빠져 다시 내려와서 즐겁게 있다가 어떤 사건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나비가 되어 다시 만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점은 제일 먼저 첫 장에서 "그 애벌레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닮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서 나도 이 애벌레처럼 어떤 고난을 겪고 실패를 겪더라도 내가 가야 될 길을 깨닫고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고 궁금증이 있었는데 애벌레가 힘들게 고난을 겪고 겨우 나비가 되는 법을 알아서 나비가 되었는데 왜 제목이 "애벌레에게 희망을"이 아니라 "꽃들에게 희망을 "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 답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70쪽에"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준단다."
"나비가 없으면, 꽃들도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게 돼"
이 말은 애벌레가 나비가 된다면 꽃들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물론 이건 언제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나비가 되어서 노랑나비와 애벌레끼리 서로 껴안는 게 다가 아닌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진정한 사랑을 해서 기뻤다. 내가 글에 대한 느낌을 다 적었으니 그림에서 느낀 점을 적어야겠다.

일단 그 애벌레가 우글우글 거리는 그 그림은 보기도 싫을 정도로 징그러웠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 수많은 나비들이 짝짓기도 하고 날개를 팔랑거리며 꽃에 앉은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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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듦과 함께 떠오르는,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장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지가 벌써 7년전이다. 초등학교3학년떄 담임 선생님께 선물 받았던 잊지 못할 소중한 보물인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10살 꼬마에게 다독 왕 선물로 직접 고르고 골라 선물 해주신 책이 이 책이라는 게 너무 감사 드리고 선생님의 뜻 깊음에 정말 깊이 존경한다. 7년이 지난 오늘 또 다시 이 책이 절실한 시점에서 그 마음 그 가르침을 그대로 받게 해주셔서.

사람들은 항상 배우고 나아가고 알아 가지만 결국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는 '나는 누구일까.' 일 것이다. 지금 나도 그렇듯이 학업 친구 생활 모든 면에서 완성도지 않아 고뇌하는 시간이 많다. 새로움을 찾아 나서고 욕심 때문에 정말 중요한 궁극적인 가치를 잊은 채 앞만 보고 나아가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꽤 많이 지나 버렸다. 끌도 없는 애벌레 탑을 쉼 없이 오르고 알 수 없는 정상을 향해 동료를 짓밟는 그처럼, 내 모습이 그렇지는 않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입시라는 맹목적인 목표 아래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도 잘 알지 모른 체 옆 친구를 오직 밟고 나아가면 내가 정상에 서게 될 것이라는 무모한 생각이 나를 애벌레 탑의 정상으로 무섭게 올려 놓았다.

이기적이고, 맹목적이고, 불확실하고, 목표 없으며, 자만한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인걸. 지금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손잡을 수 있는 우리들 중에 혹시라도 낙오자가 생긴다면 내가 정말 나비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주었다. 나비가 될 자격은 있는지 혹시 제일 잔인한 애벌레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책을 선물해 주셨을 때 내가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길 바라셨을 마음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스스로 꺠우칠 것을 말이다. 또 고난이 온다 해도, 나비를 쉬 만나지 못할 지라도 먼저 나비가 되어 남을 인도 해주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아 노력해 결국 발견하는 날, 때로는 자기 희생을 감수하며, 작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나로 발전시키도록 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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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 애벌레 이야기에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호랑 애벌레가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내용이어서 인물에 집중이 잘 되었다. 호랑 애벌레가 나라면 노랑 애벌레는 누구일까? 지금 나에게는 언니가 가장 노랑 애벌레다웠다. 언니가 오래도록 나의 노랑 애벌레였으면 좋겠다.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서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평생을 함께 해주는 인생의 반려자가 있는 것은 행운이다.

처음에는 노랑 애벌레를 떠나 애벌레 기둥으로 돌아간 호랑 애벌레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 생각해 보니 그것이 꼭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다. 호랑 애벌레는 ‘진정한 혁명’을 원했고 강한 모험심이 그를 평화로운 삶에 만족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게 만든 것이다. 그는 미련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목표를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노랑 애벌레는 그에 비해 시행착오가 적은 편이고 늙은 애벌레를 조력자로 만나 더 빨리 ‘혁명’을 경험했다.

호랑 애벌레가 정상에 올라간 애벌레들의 대화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랑나비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만일 그가 노랑나비를 만나지 못했다면, 정상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다른 애벌레들에게 밀려서 땅으로 곤두박질쳤을지도 모른다.

호랑 애벌레가 다른 애벌레들에게 정상의 비밀을 알려 줬을 때 그들은 왜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었을까? 왜 궁극적인 변화는 두려워했을까? 호랑 애벌레는 특별한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애벌레들의 말을 듣고 정상을 비밀을 알고 노랑나비를 만나 마음을 바꿔 기둥을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애벌레들은 그처럼 자신의 결정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이 기둥 위에 올라서면 대단한 것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애벌레 한 마리가 그 희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애벌레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노랑나비를 만난다면 생각이 바뀌겠지만 호랑 애벌레의 말 한 마디로 그들의 마음을 바꾸긴 어렵다.

기둥을 오르다가, 그저 먹고 성장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삶을 끝내는 애벌레들이 많이 잇다. 하지만 애벌레의 삶을 포기하고 고치 속에서 준비하고 있으면 나비가 될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애벌레 또한 많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현명한 애벌레가 되어 각자의 개성을 가진 나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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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화책이다. 그림도 많고 글자도 큰, 초등학교 때 읽었던 것과 같은 동화책이다. 하지만 중학생인 나에게 내용은 쉽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자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해 주는 책이다.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어느 어린 줄무늬 애벌레가 더 넓은 세상을 보기를 원하던 중 우연히 한 기둥을 발견하게 된다. 그 기둥은 다름 아닌 애벌레 기둥이었고, 애벌레들은 서로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서로를 밟고 있었다. 주인공인 줄무늬 애벌레도 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그 기둥으로 다가가 다른 애벌레들과 마찬가지로 기둥을 오르게 된다. 기둥을 오르던 줄무늬 애벌레는 도중에 다른 노랑 애벌레를 만나 위에 올라가 보았자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같이 내려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지만 주인공 애벌레는 결국 위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궁금해 노랑 애벌레를 버리고 다시 기둥을 오르게 된다.

남은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는 법을 배워 나비가 되고, 줄무늬 애벌레는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지만 그 기둥의 정상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줄무늬 애벌레는 그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나비로 변한 노랑 애벌레를 보고 다시 내려와 결국은 노랑 애벌레의 도움으로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 이다.

책 중간에 노랑 애벌레가 늙은 애벌레를 만나 나비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그때 늙은 애벌레가 ‘나비가 없으면 세상에는 곧 꽃이 없어지게 될 거란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책 제목이 꽃들에게 희망을 인지도 모르겠지만 기둥의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나비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지금도 친구들과 매일 같이 경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도 서로 1등을 하기 위해 서로를 밟으면서 기둥을 올라가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기둥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책에 의하면 기둥을 오르기 위해 애쓰지 말고 나비가 되라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책의 내용과 같이 매일 기둥을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나비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나비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나도 물론 나비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 공부하는 목적이 기둥을 오르기 위해서인지 나비가 되기 위해서 인지 헛갈린다. 물론 어른들은 당연히 나비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어쩌면 기둥을 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어른들도 아마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더 복잡하고 어려워 진 것 같다.

6

누구나 책의 표지와 안에 내용을 잠깐 본다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 없이 읽는다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만 보았을 테지만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다 보면 나비가 되는 과정에 주목할 것이다.

보통 애벌레의 일상은 풀을 먹다 나비가 되는 과정이 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들이 생각을 하고 유언을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인간이다. 지은이는 애벌레를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우리에게 말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호랑 애벌레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애벌레는 호랑 애벌레 혼자가 아니었다. 모두 애벌레 기둥 오르기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학 입시를 기다리는 학생들과도 같았다. 서로 밟히고 밟고 올라가는......우리들의 자화상.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만나고 친구를 밟고 싶지 않아 내려왔지만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은 커져 갔다. 결국 호랑 애벌레는 다시 기둥을 오르지만 노랑 애벌레는 고치 안에 있는 애벌레를 보고 난 후 나비가 된다. 호랑 애벌레는 기둥을 다 오르고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비를 발견한다. 호랑 애벌레는 그 나비가 노랑 애벌레라는 것을 깨닫고 기둥을 내려오며 아래에 있는 애벌레들에게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준다. 그러곤 모두 내려와 나비가 된다. 그래서 꽃들도 피어나고 애벌레들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애벌레들이 기둥을 오르느라 한동안 나무에 꽃이 필 수 없었다. 진정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느라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만 시간을 허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비가 되는 것인데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벌레도 고치로 나비가 되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듯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힘들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게 희망과 사랑인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시련을 겪게 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정말 혼자서 힘든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럴 때면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필요하다. 그냥 몇 십 명의 친구보다 내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1명의 친구가 더 값지고 소중하다. 그래서 내 주위에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고맙다. 나도 친구들에게 인사만 하고 스쳐 가는 사이가 아니라 속마음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애벌레는 우리에게 작고 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도 지금은 힘없고 자신이 작다고 느껴 지지만 용기와 도전 정신만 있다면 충분히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런 진실을 알려 주려 그랬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같이 유아 책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보석같이 귀한 교훈을 담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금방 읽을 수도 있고 미래를 아직 알 수 없는 우리들에게 좋은 것 같다.


7

옛날에 줄무늬진 작은 애벌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줄무늬 애벌레는 매일 먹고 자면서 자라나는 일을 계속 해 오다 문뜩 삶에는 지금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애벌레로 뭉쳐 진 기둥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 곳에서는 모든 애벌레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데만 전념했는데 줄무늬 애벌레는 그 곳에서 노랑 애벌레를 만나 이 일에 후회를 느끼며 기둥에서 내려와 노랑 애벌레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끝내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줄무늬 애벌레는 기둥으로 다시 올라가고 노랑 애벌레는 그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 s랑 애벌레는 고치 안에 있는 늙은 애벌레를 만나 나비가 되는 것을 배워서 나비가 되어 마침 꼭대기에 다다르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줄무늬 애벌레에 다가가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선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줄무늬 애벌레는 나비를 따라 자신도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이 책은 너무나도 사랑이 메마르고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삶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 주는 나비의 이야기다. 또 진정한 삶을 발견하는 길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사랑을 알고 극복해 가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 줄무늬 애벌레의 생의 과정은 우리 인간의 생과 매우 흡사한 것 같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쯤 되면 내가 왜 살까? 지금처럼 공부하면서 같은 날을 반복하기 보단 무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가 되면 자신의 길을 확정하고 그 길을 위해 열심히 산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 돈과 명예를 위해 한번씩은 다른 누군가를 짓밟으며 자신은 한층 더 올라가기 마련이다. 부와 명예를 다 얻고 난 후에 보면 다른 사람들을 짓 밟고 올라갈 만한 진정한 행복을 얻지 도 못하고 많은 사람들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한번씩 꼭 읽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보았으며 어떤 길을 선택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 해보았다. 목적 없는 삶의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 한다고 나도 그 일만 따라갈 순 없지 않나? 나비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계속 노력하면서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그러면 줄무늬 애벌레처럼 나비가 되어 날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치를 만들고 고난을 겪어 나가면서 참을 줄 알고 견딜 줄 알아야겠지.

이 책을 부와 명예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사람 같은 이들에게 권해 보고 싶다. 이들은 나처럼 많은 것을 깨닫겠지.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 책을 펴낸 트리나 폴러스가 존경스럽고 독후감을 꼭 써야 했기 때문에 읽은 이 책은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잊혀 지지 않을 것이며 꼭 나는 훗날 나비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아갈 것이다. 진정한 삶을 위해..


8

한 애벌레가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이었다.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그 때에는 이 책을 읽고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마 이야기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지 몰라 가지고,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이야기’라는 것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나한테서 잊혀 져 갔지만, 이번 중1여름방학 나는 이 책과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다. 동생의 선생님이 추천하셨다는 책. 왠지 이 책으로 독후감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이렇게 나는 지금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독후감으로 쓰고 있다.

중1이 되어 다시 본 이 책은 확실히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 때는 ‘겉’만 보았다면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속’을 느꼈다 할까? 책을 천천히 정독하고 나고 한 번 소름이 쫙 돋았었으니까.

이 책은 주인공인 애벌레들은 ‘그 이상의 것’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애벌레 기둥과 만나게 된다. 그 애벌레 기둥에서는 애벌레들이 그 위에 뭐가 있을 지도 모르고, 그냥 애벌레들이 가는 것을 따라 막연히 ‘아, 저 아이들이 저렇게 바삐 가는 것을 보면은 분명 무엇인가가 대단한 것이 있을 꺼야.’라는 생각으로만 그 기둥을 오르고 있었다. 호랑 애벌레도 그런 애벌레들 중 하나가 되어 자신이 찾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그 애벌레 기둥으로 뛰어든다. 나는 이 애벌레 기둥의 이야기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을 뽑아 내어 고치가 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의 애벌레 기둥 부분을 보자마자 지금 우리들의 학생(사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로 가는 지도 알지 못한 체, 무작정 위로, 위로, 주위에 모습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 우리들. 주위의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이야기에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주위의 분위기에 이끌려서 올라가는 우리들. 위에 올라가면은 그 이상의 것을 얻어 정말로 행복할까...... 공부를 잘하면은 정말로 행복할까......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 밑에 깔리느냐…… 이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위협과 장애물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내가 정말로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은 ‘적’일뿐. 밟고 올라선다. 밟고 올라가야 할 것들이니까. 정말 기둥의 위는 친구들을 버리고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닐까? ‘꼭대기에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정말 이런 길이 맞기는 하는 걸까? 정말 이렇게 가면은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몰라.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을 따라,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그렇게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날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날아야 한다. 우리들도 날아야 한다. 모두와 똑같은 방식으로, 모두 같은 생각으로 모두가 ‘그 이상의 것’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모두의 개성과 특징이 있듯이 자신만의 특별한 생각으로라야, 자신만의 무늬를 가진 나비가 되어서 날아올라야지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치가 되었습니다.

‘이 기쁘고 멋진 소식은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었고,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하지만 우리들 중 위의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두려운 것이다. 만약 저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면? 우리들한테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말도 안되잖아. 겨우 우리들이? ‘그런 이야기를 곧이 듣다니, 너도 참 웃기는 애구나. 우리의 삶은 기어 다니다가 기어오르는 거야. 우리 모습을 봐! 어느 구석에 나비가 들어 있겠어. 이런 몸뚱이나마 최대한 이용해서, 애벌레의 삶이나 열심히 즐기라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 달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언제나 극과 극이 있듯이, 될 수 있다-라는 마음이 있으면은 당연히 될 수 없다-라는 마음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보지도 듣지도, 확신도, 증거도, 가능성도 모른다면?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바로 선택할 수 있을까?

고치를 깨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의 모습을 ‘증거’로 보았다. 확실하지 않았겠지만, 호랑 애벌레는 알 수 있었다. 노랑 애벌레의 눈에 있는 자신을 향한 사랑을 보고, 노랑 애벌레가 노랑 나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자신도 노랑 애벌레와 같이 나비가 되고 싶었다. 그만큼 노랑 애벌레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희망이 생겼다. 나비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호랑 애벌레는 그 두 가지를 가지고 나아갔고,

나비가 되었습니다.

9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참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를 향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짐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책 읽기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맛보았다.

사람은 보통 어렸을 적에는 그저 먹고 노는 데만 신경을 쓰지만 성장해 감에 따라 차츰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사색하며 좀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각자 자기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성취의 기쁨을 맛본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꿈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옳고 진실한 삶의 의미와 방향을 탐색하는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값진 가치를 지닌다.

이 책에서 애벌레는 먼저 애벌레 기둥이라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논리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애벌레 기둥에는 진짜 행복한 삶,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따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경쟁에서 이겨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는 일에만 매달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담겨 져 있다. 따라서 기둥 꼭대기는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일컬어 지는 성공한 삶이 될 것이다. 즉 돈, 명예, 권력과 같은 것들을 얻는 삶을 뜻한다. 이들이 누리는 이러한 가치들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좋고 고귀해 보이지만 실상 그 꼭대기에 도달하여 보면 아무 것도 없다. 흔히들 성공한 삶으로 믿는 물질적인 부,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삶이 그 성공의 정점에서는 진짜 가치 있는 삶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삶을 운명처럼 여기고 주어진 대로 산다면 애벌레 상태로 평생을 살다 죽는 사람들과 같다. 그러나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이기를 포기할 만큼 날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해."라는 이 글의 한 구절처럼 참된 이상과 목표를 발견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결단과 고통의 과정이 따를 것이다. 그러한 부단한 자기 노력을 통해 나비가 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인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임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들이 존경하는 위인들은 바로 나비가 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기꺼이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견딜 줄 알았고, 세상을 환하게 할 꽃을 피우는 데 큰 노력을 한 사람들이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삶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을 상실한 사회다. 자신의 희망, 적성과는 관계없이 그저 남들을 따라 돈벌이 위주로 목표를 정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그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허무감만이 남을 뿐이다. 세속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고 무조건 남을 이기기 위해 참다운 가치를 짓밟음으로써 개인적 욕망을 성취하려고 하기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나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얻게 될 때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진정으로 성공하는 것은 나 자신을 올바로 알고 나 자신을 고귀하고 순수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신념과 투지로 꾸준히 노력하는 일이다.

좋은 책은 훌륭한 스승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한 순간 한 인간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 저런 각오를 가져 본다. 무작정 대학교 입학만을 추구하여 공부만 하기보다는 다양한 인간 관계를 통해 여러 상황을 경험해 보고, 그들로부터 조언도 얻고, 유럽의 나라들처럼 다양한 특별 활동 기회도 갖고 하여 다양한 견문을 넓히고, 교과서 지식 외에 실생활에 유용한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진로를 설정하는 데에 지금과 같이 막연해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이고 자세일 것이다. 지금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되새기며, 바로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내가 정말 어떤 일을 택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더 가치로운 삶을 지향하는 끈기의 행동파가 되리라.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건강하고 평안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고 가꾸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거기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리라. 쉬지 않고 그 날을 향해 노력하리라. 멋지게 창공을 비행하는 나비가 되는 그 날을 위하여......


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명심보감(明心寶鑑)

[Daum책] 명심보감 http://durl.me/7kdgua

1

오늘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주 교훈이 좋은 책이다.
뚱딴지가 주인공이 되어서 여러 가지 교훈을 알려 주는 책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한마디 말이 황금보다 귀하다 등등 많은 교훈들이 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를 반성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그 밖에도 군자는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2

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 명심보감이 이런 것이구나!
책을 읽고 난 후, 착한 마음 가꾸기, 효도하는 사귐의 지혜 등을 배웠다. 명심보감은 우리에게 항상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다.

'명심' 이란 말은 마음을 맑고 밝게 한다는 뜻이고, '보감'은 말의 본보기가 될 만한 보배로운 것이란 뜻이고, 명심보감은 마음을 맑고 밝게 해 주는 데 본보기가 될 만한 보배로운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처럼 명심보감은 기분을 좋게 하고 마음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착한 마음 가꾸기 외 5가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들도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 반 친구들과 선생님께 소개하고 싶다.

3

명심보감은 ‘밝히다'라는 뜻의 명과 ‘마음’이라는 뜻의 심과 ‘보물. 보배’라는 뜻의 보와 ‘거울’이라는 뜻의 감 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400년간 사랑을 받아 온 이 책은 여러 인물과 저자들을 통해서 엮어 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 맹자 등의 유가 사상가. 장자, 열자 등의 도가 사상가. 태공, 사마광 등의 정치가 등의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의 금언과 좌우명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것에 인용되는 저작물도 다양하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논어, 사기, 한서, 근사록, 설원, 이견지, 경행록 등의 많은 책들이 발췌 본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잠언과 같이 삶의 교훈을 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효도를 하라, 몸을 바르게 하라, 마음을 보존하라, 예절을 지켜라, 훌륭한 여성이 되어라.. 등 총 25가지에 이르는 교훈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 `몸을 바르게 하라'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 "남의 좋은 모습과 안 좋은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춰 보는 것."
  • "다른 사람의 착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착한 점이 있나 살펴보라.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나쁜 점이 있나 살펴보라. 이렇게 해야 보탬이 된다."  -성리서-
  •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켜 사물을 마주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더라도 덕 있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일을 너그럽게 처리하면 복이 저절로 두터워 진다"

이 글들 외에도 너무나 보탬이 되는 글들이 참 많았다.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글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마음가짐과 훌륭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절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외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욱 깊이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현숙하게 살아가야겠다.

4

명심보감은 책을 지은 작가가 없는 걸로 알고 그냥 공자가 한말을 엮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책에서는 저자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이었던 秋適(추적)이라고 알려 져 있다. 나도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읽은 명심보감은 빽빽이 글로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림과 같이 있어서 조금 읽기가 지루하진 않았다.

이 책은 제1장 착하게 사는 것. 제2장 효도의 길, 제3장 바른 언행의 길, 제4장 원만한 삶의 길, 제5장 배우며 사는 길, 아주 짧게 요악해서 해 놓은 책인 것 같았다.

제 1장은 말 그대로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하여 나와 있다.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런걸 느끼게 해주는 글이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어릴 적에도 많이 듣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많이 들었다. 단지 많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일을 실제로 경험을 해서 더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병원을 갔는데 진찰을 하고 진료비를 냈다. 그런데 거스름돈이 1000원이 더 많은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조금 망설여 졌지만 돈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것. 나는 돈을 돌려주었다.

이런 일을 있고 며칠 후 나는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게 되었는데 먹고 돈을 내려고 하니 옆의 아저씨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1000원을 주면서 ˝너 천원 치 더 먹어라˝하고는 가 버리는 거였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 돌려준 천원이 이 돈일까? ´ 어쩌면 돈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것인 줄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느꼈다. 선을 행하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제1장은 내생각에 죄를 짓지말고 선을 행하며 살자는 뜻인 것 같다. 비록 작은 선일지라도...... 나처럼 저렇게 그 선이 돌아 올지도 모른다.

제2장은 효도의 길이라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말할까?
여기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공자가 말하기를,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있어 기거할 때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하늘이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정성을 다해 공경하고 수시로 효도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효도를 아직 까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내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제3장은 바른 언행의 길 <하루 종일 시비가 있을지라도 이를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이 책은 저 내용 외에 다른 내용도 엄청 많았지만 내가 꼭 알아야 할 것들만 읽고 독후감을 쓴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느꼈고 지금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 지금 난 고등 학생이다. 나의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이 공부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고 한다. 난 이 시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명심보감을 통해 얻은 것 아직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계신 부모님께 효도를 해 야할 것 같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공부를 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간단한 효도이다. 난 명심보감을 읽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웠으며 삶의 안내자를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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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의 명심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은 거울같이 비춰 보는 교본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어릴 적에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을 읽어 본 걸로 기억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내용을 꼽자면 효행 편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부모님이 부르면 입 안에 있는 것을 즉시 뱉어 내고 대답해야 한다' 같은 내용 정도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엄했던 편이라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이제 대학생이 되어 독서 토론 클럽 덕분에 읽을 기회가 생겨 다시 읽어 보니 어릴 때와는 다른 입체적인 시각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금언집 형식으로 엮어 놓은 책인데 각각 주제에 맞춰 많은 격언과 금언들을 나열해 놓은 형식이다. 물론 이런 격언들이 그렇듯이 대체로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라 입바른 소리로 느껴 질 수도 있고, 격언의 나열 형식이라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소설책 읽듯이 속독해 나가면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글이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거나 혹은 현실에서 겪었던 일에 비춰 볼 만하다고 느껴 지면 여러 번 곱씹어 가면서 탐독하는 방법으로 읽는다면 기억에도 남을 것이고 교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명심보감은 여러 서적과 격언을 엮다 보니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상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령 성심 편을 보면 '배부르고 따사로움 속에서 음탕한 욕심이 생기고, 굶주리고 추운 데서 바른 마음이 싹튼다.'라고 하고, '사람의 의리는 다 빈한 한데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모름지기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같은 내용도 있다. 이러면 독자가 읽으면서 격언의 내용 중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혼란이 생길 것 같다. 물론 검소하고 바르게 살면서 주변의 귀감이 된다면 올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절하게 부를 추구하면서 베풀고 사는 인정을 가지는 것도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명심보감의 내용 대부분이 격언의 나열로 이루어진 책이니 어떤 경우에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라거나 하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의 복잡 다양한 상황은 말 한 두 마디로 온전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격언을 가지고 그것이 황금률인 양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격언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생각해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낸다면 처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심보감의 가치는 책이 주는 교훈 이상의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서삼경 같이 본격적인 학문을 하고자 할 때 쓰이는 책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가정과 서당에서 읽히고, 격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고 들은 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격언들이 우리네 가정에서 교육에 쓰일 정도로 우리 민족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다. 요컨대 계선 편과 천명 편은 권선 징악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목표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효행 편과 훈자편은 각각 자식과 부모가 부모 자식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도리를 지킬 것인가를 설파하고 있다. 정기 편과 존심편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경구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렇게 명심보감은 사람 개인의 행실을 규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금언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내용들이 수백 년 이상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내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민족 안의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큰 틀을 가지게 한 역할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으나, 명심보감에는 개인과 민족의 가치관 형성 이상의 내용 또한 담겨 있다.

말하자면 명심보감에는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중국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으며 다소 사대주의가 가미되어 있지만 고조선부터 조선 건국에 이르는 우리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또 옛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계절과 열두 달의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도 적혀 있어 시간적인 개념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으며 흥미롭게도 '하늘에는 위성이 있으니 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의 다섯 별이 이것이요, 또 경성이 있으니 각수•향수•저수•방수‥(중략)‥진수의 이십팔 수가 이것이다' 같이 천문학적인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즉, 옛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모습으로 세계를 묘사했는지에 대한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렇게 인간 내적인 면에서 세계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그려 놓았기 때문에 명심보감은 옛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자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이 명심보감을 읽는다면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 젊은이들이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옳다고 여겨 진 가치와 도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보완하여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온 어른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성인과 양서에서 따 온 금언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숙독하다 보면 동양적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 지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명심보감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책이기 때문에 명심보감이 현대에서도 널리 읽히고 재조명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삼대(三代) - 염상섭

[Daum책] 삼대 http://durl.me/3qzw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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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 되었고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내려 했으나 일제에 의해 `불온`하다는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8•15해방 후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의 첫 부분을 보면 삼대가 나온다. 덕기의 조부 조의관은 고루한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 의식의 소유자이다.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키워 나가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는다. 칠순 노인이면서 부인과 사별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 댁을 후취(後娶)로 들여 네 살배기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아들 조상훈이다. 맏아들이면서도 집안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교회 사업에 골몰해 집안의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것으로 여긴다.

더구나 조의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봉제사를 조상훈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우상 숭배라고 반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아서 조의관은 아들보다도 손자인 덕기에서 더 큰 믿음을 가진다. 집안의 모든 일도 손자인 덕기와 의논해서 결정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재산 관리도 덕기에게 일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형의 위선자이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인 그는 교회를 통한 사회 운동과 교육 사업에 큰 뜻을 품고 집안의 재산으로 그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민족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저자 염상섭의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진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삼대의 성격과 내면을 표현한 소설의 내용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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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는 덕기라는 인물이 속해 있는 부유한 가문의 세 부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 또는 본받아야 할 인물이라는 식의 소설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 세 명 모두 혈연 관계를 의심치 않을 만큼 셋 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하나이다. 그저 나타나 있는 모습만 다를 뿐, 자기의 본처가 있음에도 첩을 들이고 배당 집을 출입한다.

조의관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 어린 첩을 두고 딸까지 낳는데 결국 나중에는 조의관의 많은 재산을 노리는 소실인 수원 댁에게 휘둘리다 음독 살해 당하기까지 하며 제사 등의 형식에만 치우치는 사람이다.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아들이자 덕기의 아버지인 상훈은 그 시대의 예수를 믿으며 교회 사업을 하는 것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조의관과 대립하게 된다. 그 덕분에 아버지에게마저 신임을 잃고 타락할 데로 타락하여 노름이나 불륜을 저질러 경애와 의경이에게 못된 짓까지 하게 되며 마침내 조의관의 유산을 물려받은 아들의 재산까지 훔쳐 가는 음탕한 사람인데 참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아버지가 그를 믿어 주었다면 아마 그는 그래도 성실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 세 사람 중 가장 나아 보이는 덕기는 있는 집 자식답게 여유 있지만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하다. 생략......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한 가정을 만들어 놓고서 아무렇지 않은 듯 첩을 만들고 방랑한 생활을 하는 일들이 못마땅했다. 그 부모의 그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에서 덕기의 아버지 상훈과 아들 덕기는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을 대물림 하는 것이 잘못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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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 192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만석꾼인 조씨 일가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각기 다른 가치관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작품 속에서의 사건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지만, 세대간의 서로 다른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서울 중구 수하동의 만석꾼인 조씨 일가의 삼대를 다룬 것으로써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한 집안이 어떻게 몰락하고, 그들이 어떤 의식을 지녔으며, 당대의 청년들의 몸부림치는 정황이 어떠한가를 사실적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1931년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 작품은 그 시대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조화시킨 염상섭의 대표작이자. 우리 수설 문학의 중요한 수확이라 할 만하다.

이 소설의 중심 인물 3인은 제각기 문제점을 지닌 인물인데, 할아버지 '조 의관(議官)'은 봉건제도의 전형적 구세대 인물이며 20대의 후처(수원댁)에게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탐욕적 인간으로 나타난다. 아들 '상훈'은 신 문물과 기독교에 기울어진 신사이지만 애욕과 축첩(蓄妾)의 이중 생활에서 재산만 탕진하는 무기력•무의지의 과도기적 인물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으나, 이러한 불협화음 밑에서 재산을 지키는 데 한정되고, 적극성을 가지지 못한 미적지근한 순응 형이다.

<삼대>의 인간 드라마는 조부의 죽음을 둘러싸고 재산 상속 욕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 인물들의 추악성이 절정에 이르고, '병화'가 추구하는 인간에의 길, '필순 아버지'의 혁명가로서의 불행한 일생 등에서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삶을 전개하려는 안간힘을 엿볼 수 있다.

<삼대>에서 작가는 새로운 세대인 '덕기', '병화' 등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일제의 식민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였으리라 생각된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회적 계층간의 갈등도 치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역사적•사회적 변동 속에서 세대 교체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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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때 학급 문고의 책장 속에서였다. 읽은 건 아니지만 그때 처음 삼대를 알게 되었다. 삼대를 접했을 때 따분하게 생긴 책 표지 때문인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그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고등학교에 올라와 방학 숙제를 통해 뒤늦게 나마 삼대의 내용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서울 중구 수하동의 만석꾼인 조씨 일가의 삼대를 다룬 것으로써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한 집안이 어떻게 몰락하고, 그들이 어떤 의식을 지녔으며, 당대의 청년들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어떠한가를 사실적으로 파헤친 작품이었다. 식민지 현실에서 주인공들이 엮어 가는 이야기는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흥미로웠고 식민지 시절의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소설의 작가는 3명의 주인공은 저마다 각기 다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조 의관은 봉건제도의 전형적 구세대 인물로 20대의 후처에게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탐욕적이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나타나 있다. 또 아들 상훈은 신 문물과 기독교에 기울어진 신사이지만 이중 생활에다 재산만 탐하는 무기력•무의지의 인물이다. 아들 덕기는 선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으나, 이러한 불협화음 밑에서 재산을 지키는 데 한정되고, 적극성을 가지지 못한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한 가족의 가족사를 보면서 그 당시의 사회 구조와 모순을 볼 수가 있었다. 조의관의 시대 착오적인 행동과 덕기의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고 할아버지 조의관의 이중적인 파렴치한 행동을 보고 치를 떨었으며 김병화와 홍경애의 과거와 다른 변신 등 여러 인물들의 각기 다른 성격과 그에 따른 여러 행동들을 사건과 연결해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또 이런 인물 설정이 당시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기도 하였다.

삼대는 제목 그대로 三代, 할아버지 조의관, 아버지 조상훈, 아들 조덕기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당시 시대의 의식의 변화와 사회적 변천을 그리고 있었다. 평생 가도 읽어 보지 않을 책을 이런 기회를 통해 읽어 보게 되어 기쁘다. 책 읽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책을 펴는 순간 읽기 싫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세전,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또 다른 염상섭의 작품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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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는 그 이름에 걸맞게 3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들이 바로 조의관과 조의관의 아들 상훈, 상훈의 아들 덕기였다. 조의관은 옛날 관습에 얽매이고 구세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태평 천하의 윤직원 영감처럼 만석꾼이며 가문을 빛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과 집안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얼마를 쓰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일만 성사된다면 무슨 일 이라도 하였다. 그러나 조의관의 아들 상훈은 도덕관과 가치관이 반대였다. 기독교라는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여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고 조의관과는 부자 관계가 아니라 남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지식인층이 다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상훈은 진정한 교인이 아니란 생각을 가졌다. 그는 그저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할 뿐 술집을 드나들고 아들의 동창생이었던 홍경애라는 여자와 불륜의 관계를 갖는 등의 일을 하고 다녔다.

상훈은 조의관을 비판하곤 하는데 보통 옛 관습을 너무나 중요시하고 가문을 빛내기 위한 사업들을 모두 쓸데 없는 짓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뚜렷한 목표 없이 조의관의 돈이나 가져가서 술집이나 사회사업에 투자한다.

이런 대립 속에서 곤란을 겪었던 것은 상훈의 아들 덕기의 몫이었다. 덕기는 일본에 유학을 하면서 조의관이라는 할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 상훈의 대립 관계에서 난처하고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는 청년이다.

이렇게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꾸며 지고 그 주위를 둘러쌓고 홍경애와 병화 그리고 필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세 사람의 소설 속 역할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며 때때로 사건 발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홍경애는 덕기의 동창생이자 덕기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홍경애는 덕기의 아버지인 상훈과 불륜의 관계를 맺어 덕기의 어머니 같지 않은 어머니가 꼴이 된 것이다.

병화는 사회주의에 물들어 있는데 덕기와는 무척이나 친하나 서로 잘 다툰다. 대부분 말다툼은 병화가 덕기에게 시비를 걸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병화는 덕기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덕기에게 부르주아라고 자주 그러면서 말다툼의 원인을 만든다.

이 소설의 주 내용은 주인공 3명의 가족이 점점 몰락 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지루함을 느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마찬가지로 '삼대' 역시 너무나 딱딱하고 고루한 문체로, 지나치게 이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는 구성까지도 산만해서 이해가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염상섭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항시 느꼈듯 한 시대에 대한 고찰로 그 누구보다도 그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두 권의(상․하) 책을 모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개운치 않은 것은 당대의 현실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긴 시간에 걸쳐서 읽어야만 했고 한때는 포기도 하고 싶은 맘도 있었으나, 지금은 만연체의 긴 글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이 든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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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방학 숙제로 내준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별다른 흥미를 찾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 읽기는 읽었다. 먼저 간략하지 않으면서 간략한 느낌이 드는 줄거리부터 만나 보자.

이 책은 한 조 씨 가문의 3대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룬 책으로써, 조 씨 가문의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조 씨 가문의 대지주이자 덕기의 조부인 조의관, 집안의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리는 덕기의 아버지 조상훈, 그리고 조부와 아버지들 속에서 집안의 재산을 지켜 나가기 위해 힘을 쓰는 덕기, 이렇게 3대이다.

조의관은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교회 사업에만 집안의 재산을 탕진해 버리는 조상훈은 아주 싫어하지만, 덕기에게는 큰 믿음을 두어 집안의 모든 일을 덕기와 같이 논의하고, 집안의 재산도 모두 덕기에게 물려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조 의부의 사랑을 받는 덕기는 항상 조 의부나 조상훈과의 마찰이 없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생각과 행동 등을 보여 준다. 조부 조의관의 임종은 다가오게 되고, 수원댁과 최참봉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 유서를 변조하고, 조의관을 독살하게 된다.

그러나 곧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인해 독살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고, 조상훈은 사체 부검을 통해 보다 명확한 답변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완강하게 반대하게 되고, 모든 재산은 덕기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자 상훈은 유서와 토지 문서가 든 금고를 훔쳐서 달아나다가 결국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이런 상훈에게서 아이를 얻게 된 후 내쳐진 홍경애는 술집에서 일하지만 해외 독립 운동가인 이우삼을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과거를 잊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 그녀는 아버지와의 사상 대립으로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는 병화와 자주 만남으로써 애정을 느끼게 된다. 곧 그들은 잡화점을 운영하며 경찰을 피해 다닌다. 하지만 이우삼이 국내를 방문한 뒤 서울에는 엄청난 체포 작전이 시행된다. 그 때문에 경찰을 피하던 병화와 경애도 경찰에 잡힌다. 그와 함께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장훈 일파의 장훈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살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조사가 미궁에 빠지게 되자 상훈을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풀려 나게 된다.

그 후 덕기는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과, 조 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떠맡았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평소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고, 잘 읽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아 읽고 또 다시 읽어야 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계속 흥미가 떨어져서 한 두 번 이 책 읽기를 포기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지은 소설들, 현대에 지어 지고 재미있다는 책만 찾아서 읽을게 아니라,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지어 졌던 작품들, 옛날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책들을 보다 많이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한 가문의 3대가 겪는 갈등과 여러 가지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정말 어딘가에 이런 집안이 있을 법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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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중심 인물 3인은 제각기 문제점을 지닌 인물인데, 할아버지 ´조 의관´은 봉건제도의 전형적 구세대 인물이며 20대의 후처에게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탐욕적 인간으로 나타난다. 아들 ´상훈´은 신 문물과 기독교에 기울어진 신사이지만 애욕과 축첩의 이중 생활에서 재산만 탕진하는 무기력•무의지의 과도기적 인물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으나, 이러한 불협화음 밑에서 재산을 지키는 데 한정되고, 적극성을 가지지 못한 미적지근한 순응 형이다.

´삼대´의 인간 드라마는 조부의 죽음을 둘러싸고 재산 상속 욕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 인물들의 추악성이 절정에 이르고, ´병화´가 추구하는 인간에의 길, ´필순 아버지´의 혁명가로서의 불행한 일생 등에서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삶을 전개하려는 안간힘을 엿볼 수 있다.

만석꾼의 살림을 꾸려 가는 ´조 의관´은 봉건적 관념과 허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안의 위신을 높이는 일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인물로서, 을사조약을 전후해서 사회가 혼란해 지자 2만 냥이라는 큰 돈으로 의관 벼슬을 산다. 다음에는 남의 족보에 끼어 들어가서 가문을 뽐내려 하고, 이 때문에 큰 돈을 들여 족보를 만든다. 기독교에 물든 아들 상훈이 제사도 지내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에 조 의관은 아들을 불신하여 별거하고 있으며, 며느리보다 더 새파란 젊은 부인을 후취로 얻어 산다.

한편, ´상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식인으로서 교회의 장로 노릇을 하면서도 술집 출입을 하며, 아들과 동창생이기도 한 여급 ´홍경애´와 불륜의 관계를 갖는다. 아버지 조 의관의 가문 치장이나 족보 사업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사회 사업을 하기 위해 집안 돈을 갖다 쓰기도 하지만 뚜렷한 의식 없이 안이하게 살아간다.

또한, ´덕기´는 일본에 유학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틈바구니에서 많은 정신적 갈등을 경험한다. 사회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친구 ´병화´로부터 부르주아라는 핀잔을 곧잘 받기도 하는 그는 ´병화´의 소개로 가난한 하숙집 딸 ´필순´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조부의 의문의 죽음 이후 ´덕기´의 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사회는 3•1운동의 실패로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회주의자들 간에 불신과 반발이 고조되고 테러 행위가 자행되는 가운데 ´필순´의 아버지도 여기에 희생되면서 그의 가족을 ´덕기´에게 부탁한다. ´덕기´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삼대´에서 작가는 새로운 세대인 ´덕기´, ´병화´ 등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일제의 식민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였으리라 생각된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회적 계층간의 갈등도 치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역사적•사회적 변동 속에서 세대 교체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삼대에 걸친 갈등과 몰락 속에서 나는 돈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조의관의 돈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조덕기가 할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는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지는 못하는 이유가 바로 할아버지의 돈 때문이고, 조의관이 죽은 뒤,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는 등 타락해 가는 조상훈과 그 돈을 노리고 벌이는 독살 등, 주변 인물들이 보여 주는 부에 대한 욕망 또한 이 글에서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돈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황금 만능주의라는 요즘 시대의 풍조를 비판해 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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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기 말, 돈과 가문을 중시하는 할아버지 조의관, 개화된 문화를 따르지만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아버지 상훈, 그리고 주인공인 신세대 덕기. 이 조씨 집안의 3대와 병화, 경애, 필순 등 여러 인물이 나온다. 이야기는 동경 유학 중 잠시 귀국한 덕기가 친구 병화와 함께 술집에 가면서 시작된다. 거기서 덕기는 경애를 만나게 된다. 경애는 독립 운동가의 딸이지만 술집에서 일하게 까지 된 건 덕기의 아버지 조상훈 때문이었다. 경애의 아버지가 죽자 교회 일과 학교 육영사업을 하던 상훈은 경애 모녀를 도와 주지만 후에 순수성을 잃고 경애가 상훈의 아기까지 낳자 교회의 비판이 두려운 나머지 경애와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처음 서양 문화에 개화되어 서양 종교 사상을 따르지만 타락해 버리고 명예와 쾌락만 추구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계속해 타락의 길을 걷던 상훈은 아버지 조의관에게 재산 사용을 금지 당한다. 기독교 신자였던 상훈이 집안 제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조의관은 의관 벼슬도 사고 족보도 만들 정도로 가문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문의 제사는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교 사상으로 가문, 벼슬, 제사 등을 중시했던 아직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 그가 바로 조의관이였던 것이다.

그는 상훈 대신 손자 덕기에게 재산을 상속하려고 한다. 덕기가 동경으로 돌아 간 뒤 조의관은 댓돌에 넘어져 허리를 다친다. 조의관의 새 부인인 수원댁과 상훈의 육촌 형인 창훈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조의관의 약에 독을 넣고 조의관의 사고 소식을 덕기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덕기는 동생 덕희의 전보를 받고 귀국하고 조의관으로부터 재산 상속을 의미하는 열쇠 꾸러미를 물려받는다.

한편 병화는 상훈과도 술집에 가게 된다. 그 후 경애는 병화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상훈에 대한 복수심과 외사촌 오빠 피혁의 부탁 때문이었다. 피혁은 사회주의자로 활동 자금을 가지고 들어와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경애의 부탁을 들은 병화는 피혁을 만나고 일을 시작한다. 피혁이 떠난 뒤 병화는 신분 위장을 위해 피혁에게 받은 활동 자금의 일부로 일본식 반찬 가게를 차리고 하숙집 딸인 필순을 점원으로 고용한다. 또한 사회주의자 장훈 일파는 자신들과 병화를 보호하기 위해 병화를 배신자로 몰아 위장 공격을 한다. 그 과정에서 필순의 아버지는 갈비뼈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런 위장에도 불구하고 병화의 활동은 장훈 일파가 일본 경찰에게 잡히게 되어 알려 지게 된다. 병화는 조직 보호를 위해 덕기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차린 것으로 덕기와 짠다. 결국 병화와 장훈, 필순 및 경애 모녀도 잡혀 조사를 받게 되고, 장훈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약을 먹고 자살을 한다.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나라나 조직을 위해서 얼마나 자기 희생을 감수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조직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조금은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숭고한 희생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조의관이 죽은 뒤 덕기는 유언대로 가문을 지키는 금고 지기가 된다. 이것은 덕기 스스로가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고 금고 지기라 낮춰 부른 것이다. 아마도 동경 유학까지 다녀 온 자신이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고 그 것을 지키느라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신세대인 덕기에게는 자랑스럽지 못한 일인 것이다. 반면 상훈은 재산 상속이 덕기보다 적은 데 불만을 품고 더욱 방탕한 생활을 한다. 덕기는 병화 사건과 할아버지 독살 사건에 대한 혐의로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게 된다.

상훈은 덕기가 없는 틈에 금고의 토지 문서를 훔쳐 젊은 첩과 도주를 하다가 붙잡혀 덕기와 같이 심문을 받게 된다. 상훈은 덕기의 변호 덕분에 석방된다. 비록 부도덕한 아버지이지만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덕기의 태도에 적지 않은 놀라움을 느꼈다. 요즘 같았으면 아버지라 해도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쳤다면 변호는커녕 법대로 구속시키라고 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덕기는 요즘 신세대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조의관 독살 사건의 진범으로 수원댁과 그 일당이 체포되며, 덕기는 병화 사건에도 혐의가 없어 풀려 나게 된다. 한편 필순의 아버지가 병세의 악화로 병원에서 숨을 거두자 덕기는 그 뒷수습을 도와 주고 필순을 제 2의 경애가 되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종의 의무와 책임을 느낀다.

덕기는 새로운 세대 즉, 신세대이면서도 문화적 갈등을 잘 풀어 나간다. 할아버지처럼 전통적 사고방식과 생활을 고집하지 않고 아버지처럼 개화 사상에 빠져 전통적인 방식은 모두 거부하고 무조건적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 들이지도 않는다.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았어도 가문만을 중시하지도 새로운 문화의 잘잘못도 모른 체 받아들여 자기중심을 잃고 타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덕기는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정답을 찾지 못한다. 일제 치하를 경험하면서도 가문 때문에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이 면에서 적극적인 운동을 벌이는 병화와 대조된다.

지금의 우리 나라는 위기에 빠져 있다. 다른 나라에서 몇 백 동안 이루어 놓은 문화를 우리 나라는 몇 십 년 만에 받아들여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서양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 들였고 과소비와 외제만을 좋아하는 풍속이 생겨나고 IMF시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게 되었다. 도덕 시간에 배웠듯이 우리는 전통 도덕과 서양의 시민 윤리를 조화시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신세대적 지혜도 필요하겠다.

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나 아니 우리 신세대들이 너무 우리의 생활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기성 세대들에게 이해만을 요구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성 세대들의 이해와 문화의 흐름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덕기처럼 우리가 신, 구세대의 조정자로서 기성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어 봄이 어떨까?

이 모두가 신세대가 풀어 나갈 숙제 인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덕기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읽으려고 벼르고 벼르던 염상섭의 ´삼대´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지루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무척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탁류에 빠져들었다.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돈 키호테 - 세르반테스

[Daum책] 돈키호테 http://durl.me/3q2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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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웃기고 재미있는 책이다.

돈키호테의 정신만 나가 버리지 않았더라면 돈키호테도 맘 놓고 라 만차 마을의 귀족 생활을 자유롭게 하였을 것이다.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자기가 기사인 줄 알게 된 라 만차 마을의 귀족 돈키호테는 종자 산초를 데리고 여러 모험을 하다가 은빛 달의 기사와도 싸우고 등등 여러 모험을 하다가 라 만차 마을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아무 죄도 없는데 혼자 죽게 된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 삼손 카르라스코는 파란 만장한 삶을 마친 라 만차의 시골 귀족 돈키호테를 기리는 시를 지어 묘비 문으로 만들었다.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라 만차의 사나이.
고향 들녘에 편히 잠드소서.
죽음의 신도 돈키호테의 영혼을 지우지 못하리.
아아, 맑은 그 영혼을
우리에게 부탁하고 떠나가신 그대여,
그 생애가 영원히 후세에까지 전해 지기를......

2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였다. 책이 두껍고 700페이지 정도나 됐지만 이런 두꺼운 책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읽게 되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기사 계급이 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세 유럽의 어느 한 시골에 몰락해 가는 늙은 귀족인 '돈키호테'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그 소설들의 주인공처럼 기사가 되려고 한다. 자신의 말로는 편력 기사로서 많은 백성들을 도와 주고 악행을 막으려고 한다지만 괜한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등 별 쓸데 없는 일만 한다. 그리고 원래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있던 '산초'라는 농부를 홀려서 자신처럼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종자로서 따라다니게 한다. 겁도 많고 잘 도망치지만 돈키호테보다 현실과 이야기를 더 잘 구분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친구였던 이발사와 신부가 돈키호테가 집을 나가 기사가 되려고 한다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키호테를 도와 주러 가고 돈키호테의 행동을 딱하게 여긴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서 유명한 사람도 만나는 등 많은 일을 겪었지만 결국 열병으로 허무하게 죽게 된다.

이 소설에는 중세 유럽의 시대 배경이나 그 당시 사람들의 계급에 관련된 문화, 그 때 유행했던 소설 등 많은 점을 알게 되었고 약간 지루하지만 괜찮은 소설이었다.

<돈 키호테>1605년 초판 표지

3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해림 방송국에서 온 제시카 기자라고 합니다. 오늘 방랑 기사인 돈키호테님을 인터뷰하러 왔는데요.

산초: 아, 네. 반갑습니다, 기자님. 그런데 저희 주인님께서는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니 제가 대신 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저는 얼마 전에 기사님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계기로 오늘 궁금한 것들이 있어서 직접 여쭤 보러 왔습니다.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산초: 그럼요. 궁금한 것들은 다 물어 봐 주십시오. 성심껏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돈키호테 기사님은 처음에 방랑 기사가 되려고 마음먹으셨습니까?

산초: 아…….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주인님은 기사들의 모험을 그린 소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밤을 새기 일쑤였지요. 결국 기사 소설에 매료된 주인님은 방랑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갑옷과 주인님이 만든 투구를 장만하고, 사랑을 바칠 여인을 정했지요. 그리하여 주인님도 소설 속의 기사들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아, 그렇군요.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님은 왜 여관 주인을 성주라고 여겼습니까?

산초:  그 날, 주인님 정식 기사로 임명해 줄 기사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를 못했죠. 날이 저물고 쉴 곳이 필요했어요. 그때 마침 가까운 곳에 여관이 있었습니다. 그 여관은 아주 지극히 평범했지만 주인님께는 아주 그럴듯한 성처럼 보이셨죠. 또 주인님은 돼지 치는 사람이 부는 뿔 피리 소리가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나팔 소리라고 여기고, 여관 앞에 있는 평범한 여인들을 귀족 부인이라 생각하여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기도 하셨죠. 여인들은 주인님의 우스꽝스러운 옷과 말투를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님은 오히려 여관 주인을 성주라고 여기며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리고는 정식 기사로 임명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기도 하셨지요. 주인님께서 이렇게 하신 모든 것은 자신이 방랑 기사가 된 것으로 착각하셨기 때문이죠. 또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기사 소설에서 본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주인님을 따라 나서야 했지요. 주인님은 영원한 제 주인님이니까요.

기자: 정말 기사님에게 충성을 다하시는 군요. 얼마 전 기사님은 길을 가다 만난 수도사 일행을 보고 마법사들이라고 했는데요, 그 때 마차에 탄 여인이 돈키호테 기사님을 보고 겁을 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산초: 아, 그때요? 하하하, 그때 저는 주인님께 수도사는 마차 탄 여인과 우연히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 아무 상관없는 사이라고 말했지만 주인님은 여전히 마법사라며 수도사들을 공격하셨지요. 결국 그들은 기사님의 공격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안 놀랄 사람도 있겠습니까? 여인의 눈에는 기사님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요. 돈키호테 주인님의 행동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요.

기자: 저도 그 내용을 읽을 때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제가 그때 그 여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을 하면서요. 자, 이번에는 산초님께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저번에 기사님이 로시난테를 구하려다가 마부들에게 매를 맞고 노새 등에 업혀서 여관에 들어갔죠? 그 때 왜 여관 주인에게 돈키호테 기사님이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나요?

산초: ……. 주인님은 훌륭하신 방랑기사잖아요. 그런 주인님을 여관 주인에게 얻어맞았다고 하면 방랑기 사인 주인님과 하인인 저의 위치가 매우 난처해 질 거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주인님의 명예에 금이 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지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산초님 같은 하인을 둔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겠네요. 전 산초님의 그 충성심은 세계 최고라고 여길 겁니다. 돈키호테 기사님은 산속에서 만난 카르데니오가 기사님에게 돌멩이를 던졌는데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는데요,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요?

산초: 평소의 주인님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를 잘 알려 드릴게요.  주인님은 산속에서 만난 늙은 양치기한테 카르데니오에 대한 사실을 들으셨어요. 그래서 카르데니오를 찾아가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러나 카르데니오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치고는 갑자기 주인님께 돌멩이를 던졌죠. 그리고 저를 머리로 들이받고 주인님께 주먹질을 하기도 했어요.

전 너무나도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주인님께 혼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도 주인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이 이렇게 행동하신 것은 제가 생각했을 때 카르데니오의 사랑 이야기가 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공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인님께도 그리운 연인인 둘시네아 공주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렇죠,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공감이 가면 감동을 받기 쉽지요. 기사님도 그런 거군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산속에서 고행 중이던 돈키호테 기사님이 이를 그만두고 산속을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산초: 저한테 주인님이 산속에서 고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이발사와 신부는 주인님을 집으로 데려 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죠. 그러던 중에 만난 도로테아를 미코미콘 왕국의 미코미코나 공주로 속이고 그녀를 왕국의 거인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빠져 있으니 도와 달라고 주인님께 요청했습니다. 이발사와 신부의 계획대로 주인님은 도로테아를 돕겠다고 선뜻 나서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떠나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주인님이 이렇게 쉽게 산속을 나왔던 이유는, 어려움에 빠진 공주를 돕는 것을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셨던 정의로운 기사의 의무감 때문이었답니다.

기자: 그렇군요. 이제 제의 인터뷰도 다 끝났으므로 이제 가 봐야겠네요.

산초: 아, 벌써요? 정말 제게는 주인님과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소중하고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된 것 같네요. 여기까지 오셔서 주인님은 뵙고 가셔야 하지 않나요? 아, 저기 나오시네요. 주인님~ 인터뷰하러 오신 기자님이 인터뷰를 마치고 가신 다네요. 우리도 이제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돈키호테: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데 여기서 헤어져야 할 생각을 하니 유감이네요. 그럼 저희는 소중한 모험의 세계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바랍니다.

기자: 네, 두 분의 중요한 모험을 영원히 간직하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돈키호테, 산초: 네. 기자님도 저희 잊지 마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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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내가 외국의 명작 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된 소설이다. 누나가 나에게 추천을 해 주었는데 정말 책 앞의 제목과는 달리 명작 소설 치고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줄거리를 말하자면 옛날 스페인의 라 만차 마을에 한 영감이 살고 있었다. 그 영감을 소개하자면 나이가 곧 쉰이 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조카딸과 하녀가 집안 살림을 맡았고 머슴 한 명이 농사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는데 그가 읽는 책들은 모두 옛날의 기사 담 이었다. 이렇게 기사 담만 읽던 영감은 책 속의 주인공 기사가 자기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영감은 머리가 이상해 진 뒤로 창고로 가서 조상들이 입던 갑옷을 찾아 내었다.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말에게 로시난테 라는 이름은 붙여 주고는 자신의 이름 역시 '돈키호테'라고 바꾸었다.

돈키호테가 엉뚱해 보이기도 하고 점점 흥미로워 졌다. 돈키호테는 몸과 마음을 바쳐 섬길 만한 예쁜 아가씨를 찾다가 멀지 않은 농가에 살고 있는 농부의 딸 알돈사 로렌소에게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 둘시네아 공주라고 불렀다. 돈키호테는 멀리 작은 여관이 보이자 그곳이 성이라 생각하여 가서 자기를 기사로 임명한다는 기사 임명식을 해 달라고 한다. 그 집 주인은 돈키호테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장난으로 기사 임명식을 해 주었지만 돈키호테는 자기가 기사가 되었다고 우쭐해 하였다. 하지만 나는 돈키호테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기사 담을 너무 많이 읽어 머리가 이상해 졌기 도 하고 또 모든 행동이 기사 담을 읽고 정의감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실행하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해 보기도 전에 안되면 어쩔까 하는 걱정부터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런 나에 비하면 정말 용기 있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나도 내 자신을 정확히 밝히고 용기 있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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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돈키호테라는 노래 제목도 있고 영화도 있다. 그래서 돈키호테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는 않는다. 돈키호테의 의미를 찾아 보니까 돈키호테는 허영 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돈키호테라는 영화는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돈키호테라는 책을 읽어 보는 건 처음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돈 키호테는 에스파냐의 라 만차 지방에서 한 시골 귀족이 가정부, 조카, 하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기사 이야기를 탐독하다가 이성을 잃고, 스스로 방랑의 기사가 되어 모험 길에 나서서, 천하의 사악한 것을 쳐부수어 공을 세우기로 작정을 한 돈키호테가 라 만차, 아라곤, 마지막으로 캬탈루나에로 여행을 하면서 모험을 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인 돈 키호테는 책을 많이 읽어서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자기가 편력 기사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고,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둘네시아 델 토보소라는 여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모험을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내가 읽은 책의 1부에서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을 이야기 해주고 있고 2부에서는 세 번째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일부에서는 알론소 카하노는 한가하고 윤택한 시골 귀족으로 나온다. 그의 취미는 기사 소설을 닥치는 대로 구하여서 읽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그가 읽은 이야기를 사실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가 기사 소설 속에 나오는 편력 기사 중 하나라고 믿게 된다. 결국 그는 새로운 이름을 짖느라고 골머리를 앓는데 결국 그가 지은 이름은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중세의 무기와 복장을 하고서 자신의 상상의 의해 만들어 낸 둘네시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야윈 말 로시난테를 끌고서, 불의를 무찌르고 기사 나름대로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모험을 찾아 세상으로 나간다.

처음 돈 키호테가 기사로서의 여행에서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된 것은 라 만차의 들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주막이다. 돈 키호테는 그곳을 성이라고 상상한다. 그 주막집 주인과 두 명의 하녀들의 조소 속에서 편력 기사가 되는 의식을 거행한다. 그 주막에서 나온 돈 키호테는 길에서 만난 상인들에게 둘네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가 매만 맞고서 길에 찌그러진다. 다행이 같은 마을에 사는 농부가 그를 발견하고 그의 집으로 데려 간다.

돈 키호테의 그러한 광기가 기사 소설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의 조카딸과 그의 가정부, 또 그의 친구, 이발사와 신부는 돈키호테의 서재에 있는 책을 끄집어내어 태워 버린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돈키호테는 집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 책이 나쁜 마법사가 가져갔다는 것을 믿는다. 다음날 돈 키호테는 부와 그리고 권력을 약속하면서 자신의 모험에 같이 동참하도록 시골뜨기 농부 산초 판사를 설득하여 어느 날 새벽 아무도 모르게 두 번째 모험을 하기 위하여 집을 떠난다. 그러나 마침내 모두다 아는 유명한 풍차와의 싸움 장면이 이어진다.

곧 이어서 베네딕트 교회 수도사들과의 모험 및 비스카야 인들과의 모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이 책에서는 완결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잠시 장면이 바뀌게 되는데 계속해서 이 소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랍 인 역사 학자 시데 아메테베넨헬리에 의해서 아랍어로 씌어 진 "라 만차의 돈 키호테 이야기"책을 톨레도의 시장에서 발견하게 된 사건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좀 의아하게 된 것은 왜 이 부분에 이 이야기가 들러갔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선 이야기가 일관성이 끊어지며 처음 에는 이야기도 돈 키호테의 연장인 줄로 착각했었다. 계속해서 앞에서 중단되었던 비스카야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 다음에 양구에스 마을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산초가 주막집에서 담요에 헹가래 질로 시련을 겪고, 돈 키호테가 양떼를 군대라고 착각한 모험 이야기, 다음에 시체와 얽힌 모험 이야기, 노를 젓는 죄수들을 풀어 준 이야기, 둘네니아를 위해서 시에라 모레나 산에서 고행한 이야기 등 가지가지 모험을 벌인 후에 고향의 신부와 이발사가 돈 키호테를 수레 마차로 유인하여 집에까지 데리고 오는 것으로 돈 키호테 이 책의 1부는 막이 내린다.

이 책의2부는 돈 키호테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학자 삼손 카르라스코가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유하기 위해 세 번째 모험을 부추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 번째의 기사 여행도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사건들로 이루어 졌다.

먼저 기사로 변장한 삼손 카르라스코가 의도적으로 돈 키호테와 마주쳐서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이 결투에서는 삼손이 패배하게 되고 돈 키호테는 의기양양하게 여행을 떠난다. 다음에 이어서 사자들과의 모험, 이어서 울음 소리에 얽힌 모험, 아라곤의 땅인 에브로 강에 도착했을 때 마술에 걸린 배에 얽힌 모험, 공작 부부와 만나서 일어난 사건들, 클라빌레에 걸린 배에 얽힌 모험,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이 된 산초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주막집에서 가짜 작품인 돈키호테가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돈키호테는 가짜 작품의 거짓을 폭로하기 위해 목적지를 계획과는 다르게 바르셀로나로 가는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 진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향해 가는 이야기 등이 흥미 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돈 키호테에게 `백월의 기사`라는 호칭으로 위장한 삼손 카르라스코가 다시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결투에서 승리한 삼손 카르라스코는 돈 키호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1년간 편력 기사의 모험을 중지할 것을 강요한다. 상심에 빠진 돈키호테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제정신으로 회복 된 후에 죽어 버린다.

돈 키호테를 1부에서는 돈 키호테는 모든 것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서 사물을 대한다. 그 에게는 풍차는 거인이며 양떼는 군인이고 여관은 성이다. 그러나 2부에 가게 되면 상황은 아주 바뀌고 말고 만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여관은 여관으로, 지신과 산초를 밟는 돼지와 황소의 무리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제 2부에서는 돈 키호테는 1부에서는 상상도 못할 찬미와 존경을 받는다. 돈 키호테는 유명한 인물이 된 것이다. 일부를 읽은 사람들이 그를 찬미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웃음으로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음으로써 정말 대작이란 생각을 했다. 이 글의 주요 인물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인데 이들은 모두 이상주의 와 현실주의를 지향한다. 둘네시아 델 토보소는 돈 키호테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 키호테가 읽은 책의 이야기를 따라서 하다가 어려운 일에 닥치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다. 산초도 원래 착한 사람이지만 약간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나온다. 돈키호테가 총독을 시켜 준다는 말 혹해서 돈 키호테를 주인으로 섬기고 따라다니지만 점점 주인과 닮아 간다. 그러나 산초도 그다지 현실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대중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돈 키호테가 제정신을 찾고서 죽음에 갔을 때도 산초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산초를 이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항상 돈키호테의 행동을 변화 정화하는 기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사실 짧은 시간 내에 읽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게 많았다. 모든 사회에서는 편견이 없어져야지 만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분쟁은 편견에서 비롯 된다고 생각 한다. 항상 그 편견의 틀 안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지만 그 편견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 한다

6

작년 초겨울 어느 밤, 올림픽대로였다. 은근한 주황빛이 살얼음 낀 한강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난 감상적인 분위기에 취해 있었고 그 때 내 귓가엔 노랫가락 구절 하나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야, 돈키호테, 라 만차의 기사!"

힘차게 울려 퍼지는 피날레 곡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던 그 때, 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소설 [돈키호테]을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을 공군 대상으로 할인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예매해서 관람하러 갔던 터였다.

되돌아보면 내가 초등학생 때 처음 돈키호테 이야기를 읽은 뒤로 그는 항상 내 삶의 우상이었다. 기사 소설에 심취해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한 나머지 낡은 창과 삐쩍 마른 말, 충실한 시종을 데리고 정식 기사로서의 모험을 수행하기 위해 홀연히 길을 떠난 돈키호테. 여행길에서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그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굴하지 않고 맞서 나간다. 결국 큰 상처를 입고 마차에 실려 집으로 실려 오지만 그가 길 위에서 보여 준 용기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여태껏 읽었던 여러 문학 작품들 중 내게 이만큼 영향을 끼친 것은 [돈키호테]가 유일무이했다.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대로 실현하고자 달려가는 것이 항상 내 삶의 방식이었다. 돈키호테는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 영웅이자 내가 지칠 때마다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준 조언자 같은 존재였다.

시작은 고등학교 자퇴였다. 일학년 때 마음껏 놀았던 탓에 내 내신 성적은 내가 지망했던 명문대를 가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내신을 떨쳐 내기 위해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다들 말렸었다. 하지만 난 내게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난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한참 대학을 다니다 보니 이번에는 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것도 한국 남성 사이에선 전설 속 존재와도 같은 일본인으로. 그래서 외국인과 교류하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대표도 지내고, 일본인들이 자주 온다는 한국어 학당을 전전했으며 한국에 새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을 마중하러 인천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가기도 했다. 몇 달간 노력한 끝에 난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어릴 적 꿈을 한 번 이뤄 보고 싶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환경 운동가였기에 각종 야생 동물로 유명하고, 또 원시적 자연이 보존된 대지의 크기가 한반도 절반에 달하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는 것은 일생의 꿈이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옐로스톤 공원의 바로 근처 학교로 갈 수 있었고 시간이 될 때마다 난 공원에 가서 늑대와 사슴을 관찰하며 지냈다.

그렇다고 가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공인 경제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안목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게 된 나는 귀국한 뒤에 단신으로 동남 아시아 배낭 여행에 뛰어들기도 했다. 신흥 시장을 탐방하고 세계 경제의 미래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언급할 수 없는 수많은 모험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난 세상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항상 내 삶의 목적을 더 중요시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모해 보이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즐기는 것이었다.

보통 그렇듯이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처절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지금도 생생한 악몽이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새벽, 넘쳐 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터바이크를 몰아 대던 난 학교 캠퍼스를 고속으로 빠져 나오다가 굳게 닫힌 철문에 정면으로 들이박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그 사고로 난 몇 달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으며 심각한 전신 부상과 상당한 후유증이 남았다. 내게 있어 그 철문은 뭐랄까, 돈키호테의 풍차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자아 도취로 충만했던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문이 닫혀 있으리라고 예상했으면서도 자만심에 똘똘 뭉친 나는 무의식 중에 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작중에서도 기사 소설을 읽고 간접적으로 자아 도취에 빠진 돈키호테는 여행 초반기 자신의 눈앞에 놓인 풍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찔러야 할 거인으로 착각해 뛰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게 되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원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 때, 그 사고는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는 무한한 추진력과 자신에 대한 굳은 신뢰로 모험적 삶을 살아간 인물이었다. 내가 실제로 미친 기사로 유람을 나선다면 곤란한 일이겠지만 삶에 대한 그의 자세만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삶에서 용기와 낭만성을 간직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돈키호테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한 번의 사고는 날 낙담시키기에 충분치 않았다.

병원에 누운 채 난 돈키호테를 다시 한 번 읽고 있었다. 2편의 말미에서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임종의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아직도 주인을 따르고 그의 말을 믿는 산초는 이렇게 그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주인님, 죽으면 안 돼요. 저의 조언을 들으세요. 그리고 오래 사셔야 해요.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하는 가장 큰 광기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거예요." 결국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 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예전보다 조금은 겸손해 진,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로 새 세상을 맞이했다.

초판이 발간된 지 어언 400년이 흘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 돈키호테의 해석은 점점 풍부해 지고 그에 따라 가치도 올라갔다.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교훈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세르반테스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 받게 되었다. 돈키호테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요새 유행하는 힐링의 원조 격인 셈이었다.

시대의 엄중함 때문에 정상인이 아닌 광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했고 그나마도 다른 작가의 글을 번역한 마냥 글을 써야 했던 세르반테스. 그리고 종교의 광기, 남녀간 자유로운 사랑의 억압, 세습 제도, 부당한 재판 등 사회의 부조리를 목도하고서 그걸 풍자했던 세르반테스의 위대한 주인공, 돈키호테.

이상주의의 상징인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인 산초 판사 두 주인공이 합동으로 이루어 내는 유쾌한 모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키호테를 통해 어린이들은 만화적 재미를 찾을 것이고, 10대들은 자신이 앞으로 진출하게 될 사회의 창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며 성인들은 굴곡의 연속인 삶에서 자신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내 나이 스물 넷. 나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적인 자세는 아직 무르지 않았다. 제대 뒤에 난 1년 동안의 유라시아 대륙 일주를 계획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 볼 예정이다. 그 때의 나는 2년만에 다시 읽은 돈키호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한 사람이 꾸는 꿈이 결국에는 허무하게 끝나 버릴지라도, 난 그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울인 삶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시 한 구절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을 함께 인용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나의 달콤한 희망이여,
불가능과 잡초를 헤쳐 나아가며
그대가 만들어 놓고 이끄는 그 여정을
강건히 가고 있네.
그대가 죽음과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게으른 자들은 명예로운 승리라도 어떠한 호박도 얻지 못하고,
행복해 질 수 없다네.
운명에 대항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온화한 게으름에 넘겨주는 자들이라네.
사랑이 그 영광을 비싸게 파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며 정당한 일이라네.
기호에 따라 감정하는 보석보다
더 비싼 것은 없으니.
싸게 주고 산 물건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확연한 일이어라.
아마도 사랑의 집념은 불가능한 일을 해낼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나의 집념으로 역경을 헤치며 사랑을 계속하리라.
그리고 나는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노래 중)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가자! 갈 수 없더라도. 이 몸! 지쳐 쓰러져도. 모든 악을 물리쳐서,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세상 품격 높이는 것.
이게 내 길! 그 꿈을 따라, 쓰러지더라도 굴하지 말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싸우자. 하늘의 뜻이라면 지옥엔 못 가랴!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이 한 몸 조롱 받더라도.
싸우리! 끝까지 용감하게. 가자! 저 별을 향하여.
(뮤지컬 주제곡 '이룰 수 없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