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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0일 월요일

책먹는 여우 - 프란치스카 비어만 (Franziska Biermann)

[Google책] 책먹는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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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는 닭이나 토끼 대신 책을 먹었어. 특히 두껍고 글 많은 책을 좋아했는데, 마치 영양가 높은 음식처럼 생각했대. 어느 날 밤, 큰 서점에 몰래 들어간 여우 아저씨는 맛있는 요리책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해져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

다음 날 아침, 서점 주인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지만, 여우 아저씨에게 화내는 대신 따뜻한 차를 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여우 아저씨가 책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할아버지는 매일 밤 서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허락해 주었지.

그 후 여우 아저씨는 책을 먹는 대신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았고,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도 해 주는 유명한 여우가 되었대. 이 이야기는 책을 ‘먹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줘. 따뜻한 마음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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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책을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가 살았어. 이 여우 아저씨는 다른 여우들처럼 닭이나 토끼 대신 책을 먹는 걸 좋아했지. 특히 두껍고 글자가 많은 책을 좋아했는데, 사전이나 요리책처럼 말이야. 여우 아저씨는 책을 먹으면 배도 부르고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었대.

어느 날 밤, 여우 아저씨는 큰 서점에 몰래 들어가서 책들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어. 그러다 맛있는 요리책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지 뭐야!

다음 날 아침, 서점 주인 할아버지는 책이 여기저기 갉아 먹힌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배가 빵빵한 여우 아저씨를 보고는 따뜻하게 차를 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여우 아저씨는 책을 먹는 이유를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할아버지는 여우 아저씨가 책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후로 할아버지는 여우 아저씨에게 매일 밤 서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허락해 주었어. 여우 아저씨는 더 이상 책을 먹지 않고, 밤마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식을 쌓았지. 그리고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책 이야기도 해 주면서 아주 유명해졌대.

이 이야기는 책을 ‘먹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줘. 처음에는 배고픔 때문에 책을 먹었지만, 결국 책 속의 이야기와 지식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야. 서점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여우 아저씨는 올바른 방법을 배울 수 있었지. 우리 친구들도 책을 즐겁게 읽고 책이 주는 즐거움과 지식을 마음껏 누리길 바라!

3

안녕, 친구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여우 이야기, 프란치스카 비어만(Franziska Biermann)의 『책 먹는 여우(The Fox Who Ate Books)』 이야기를 해 줄게. 이 책은 책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야.

이 여우 아저씨는 다른 여우들처럼 닭이나 토끼를 잡아먹는 걸 싫어했어. 대신, 책을 먹는 걸 좋아했지! 그것도 아주 맛있는 책들만 골라서 먹었어. 여우 아저씨는 서점에 몰래 들어가서 책들을 조금씩 갉아 먹었는데, 특히 사전이나 요리책처럼 두껍고 글자가 많은 책을 좋아했대. 왜냐하면 그런 책들이 영양가가 많다고 생각했거든!

어느 날 밤, 여우 아저씨는 아주 크고 멋진 서점에 들어갔어. 그곳에서 아주 맛있는 책 냄새를 맡고 정신없이 책들을 먹기 시작했지. 그러다 실수로 책 한 권을 너무 많이 먹어버렸어. 그 책은 바로 요리책이었는데,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거야!

다음 날 아침, 서점 주인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어. 책들이 여기저기 갉아 먹혀 있고, 배가 빵빵한 여우 한 마리가 책 더미 속에 꼼짝 않고 누워 있었거든. 하지만 할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여우 아저씨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여우 아저씨는 책을 먹는 이유를 설명했고, 할아버지는 여우 아저씨가 책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후로, 서점 할아버지는 여우 아저씨에게 매일 밤 서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허락해 주었어. 여우 아저씨는 더 이상 책을 먹지 않고, 매일 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았지. 그리고 가끔씩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도 해 주면서 아주 유명해졌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여우 아저씨가 책을 ‘먹는’ 대신 ‘읽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책을 먹었지만, 결국에는 책 속의 지식과 이야기들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지. 서점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도 아주 중요해. 만약 할아버지가 여우 아저씨를 혼내기만 했다면, 여우 아저씨는 계속 책을 먹었을지도 몰라.

우리 친구들도 이 책처럼 책을 즐겁게 읽고, 책 속에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길 바라! 책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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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독서의 의미, 지식의 습득 방식,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주는 작품이야.

주인공 여우는 여느 여우와 달리 닭이나 토끼 대신 책을 ‘먹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 여기서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책을 섭취하는 것을 넘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여우의 방식은 다소 극단적이지. 그는 책의 내용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문자 그대로 삼켜 버리니까.

이야기 속에서 여우는 특히 사전이나 요리책처럼 두껍고 정보가 많은 책들을 선호해.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지식의 양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마치 많은 정보를 ‘소유’하는 것이 곧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를 꼬집는 거지.

여우가 서점에서 요리책을 과식하여 꼼짝 못하게 되는 장면은 흥미로운 전환점이야. 이 사건을 통해 여우는 자신의 지식 습득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돼. 단순히 책을 삼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즉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서점 주인 할아버지의 등장은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이야. 할아버지는 여우를 혼내거나 쫓아내지 않고, 따뜻하게 차를 내주며 이야기를 들어줘. 이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 그리고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 만약 할아버지가 권위적으로 여우를 처벌했다면, 여우는 변화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야.

할아버지의 배려로 여우는 서점에서 책을 ‘읽는’ 기회를 얻게 돼. 이는 지식을 습득하는 올바른 방법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지. 책을 ‘먹는’ 행위는 단편적인 정보의 획득에 그쳤다면, ‘읽는’ 행위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사고력을 확장하며,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이어져.

이야기의 결말에서 여우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존재에서, 책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로 성장해.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은 그가 진정한 지식의 의미를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책 먹는 여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이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독서란 무엇인지, 지식을 어떻게 습득해야 하는지,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여우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 또한,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포용이 개인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보여주지. 중학생인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서 습관과 지식 습득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

The Fox Who Ate Books
The Fox Who Ate Books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5

이야기는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특이한 여우 아저씨로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여우들처럼 사냥을 하거나 먹이를 찾아다니는 대신, 그는 책을 ‘먹는’ 것을 즐깁니다.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실제로 책장을 뜯어 먹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음식처럼 섭취함으로써 지식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특히 두껍고 정보가 많은 책, 예를 들어 사전이나 요리책 등을 선호하는데, 이는 마치 영양가 높은 음식을 고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을 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합니다. 처음에는 돈을 모아 서점에서 책을 사 먹었지만, 책값은 비싸고 그의 식욕은 점점 왕성해졌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집안의 가구들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르자, 그는 국립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마음껏 ‘음미’하는 것이죠.

어느 날 밤, 여우 아저씨는 우연히 도서관 천장 위 다락에서 숨어 살고 있는 두더지를 발견합니다. 두더지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여우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인기 작가가 되고 싶어 여우의 아이디어 수첩을 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이 만남은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는 않지만, 책이 가진 다양한 가치, 즉 지식의 원천이자 성공의 도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 사건은 여우 아저씨가 서점에 몰래 들어가 벌이는 ‘만찬’입니다. 그는 밤늦게 큰 서점에 잠입하여 책들을 마음껏 먹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요리책에 매료되어 엄청난 양을 먹어치웁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배가 터질 듯이 불러 꼼짝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서점 주인 할아버지는 엉망이 된 서점과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여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서점 할아버지는 여우를 혼내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따뜻한 차를 내주고 사정을 들어줍니다. 여우 아저씨는 자신이 왜 책을 먹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할아버지는 그의 독특한 ‘식성’과 책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씨 덕분에 여우 아저씨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여우에게 매일 밤 서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허락해 줍니다. 더 이상 책을 먹지 않고,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진정한 독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여우 아저씨는 단순히 책을 섭취하는 것보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여우 아저씨는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들의 내용을 재미있게 전달하며, 아이들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려줍니다. 책을 ‘먹는’ 존재에서 책의 가치를 ‘전달하는’ 존재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는 지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우 아저씨는 서점의 명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습니다. 그는 더 이상 책을 먹지 않고,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책 먹는 여우』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여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식의 습득 방식과 가치,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진정한 성장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6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여우의 이야기가 아닌, 지식 습득의 본질과 독서의 의미, 더 나아가 인간관계와 성장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동화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독자층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가서며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지식의 진정한 가치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우는 책을 ‘먹는’ 독특한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물리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지식을 내면화하려는 시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의 양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많은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이 곧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했습니다.

여우가 특히 사전이나 요리책처럼 두껍고 정보가 많은 책을 선호하는 점 또한 인상적입니다. 이는 지식의 ‘양’에만 치중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여우가 서점에서 요리책을 과식하여 꼼짝 못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우는 자신의 지식 습득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책을 삼키는 행위로는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즉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과식으로 인해 오히려 몸이 아프듯이, 잘못된 방식으로 얻은 지식은 오히려 자신을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서점 주인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씨는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할아버지는 여우를 혼내거나 쫓아내는 대신, 차를 내주고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 그리고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권위적으로 여우를 처벌했다면, 여우는 변화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개인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할아버지의 배려로 여우는 서점에서 책을 ‘읽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는 올바른 방법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먹는’ 행위가 단편적인 정보의 획득에 그쳤다면, ‘읽는’ 행위는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사고력을 확장하며,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곱씹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며, 작가의 의도를 추론하는 과정을 통해 여우는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여우는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하며, 아이들에게 책의 매력을 전파합니다. 이는 지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여우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책 먹는 여우』는 단순히 재미있는 동화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독서란 무엇인지, 지식을 어떻게 습득해야 하는지,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우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포용이 개인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 이상으로, 책 속의 메시지를 깊이 생각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7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는 어린 시절 단순한 흥미를 넘어,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지식과 욕망, 그리고 진정한 성장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우화임을 깨닫게 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여우가 책을 ‘먹는’다는 기발한 상상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책을 음식처럼 섭취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동시에, 책에 대한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어본 지금, 여우의 ‘식성’은 단순히 독특한 취향을 넘어, 지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우가 두껍고 정보가 많은 책, 특히 사전이나 요리책을 선호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에서 정보 과잉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치 있는 정보인지 분별하기 어려워하며, 마치 여우처럼 ‘양’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 즉 ‘질’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여우가 서점에서 요리책을 과식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장면은, 잘못된 방식으로 얻은 지식이 오히려 자신을 구속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마치 과식으로 인해 소화불량에 걸리듯이, 피상적인 지식의 과잉은 오히려 사고를 마비시키고 성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점 주인 할아버지의 너그러움은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는 여우를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따뜻한 차를 내주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의 관용은 이러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우가 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지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는’ 행위가 단편적인 정보의 습득에 그쳤다면, ‘읽는’ 행위는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지식이 개인의 성장을 넘어 사회적 소통과 연결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여우는 자신이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서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지식의 공유가 개인과 사회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은 『책 먹는 여우』는 저에게 단순히 재미있는 동화를 넘어, 지식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성장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정보 과잉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지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8

Franziska Biermann's "The Fox Who Ate Books" is a charming children's story that, upon closer inspection, offers a surprisingly nuanced commentary on the nature of knowledge, the perils of unchecked desire, and the importance of genuine connection. While its whimsical premise—a fox who literally consumes books—initially appeals to younger readers, the story resonates with older audiences by prompting reflection on how we acquire, process, and ultimately share information.

The protagonist, a fox with an insatiable appetite for literature, embodies the human desire for knowledge taken to an extreme. His act of physically eating books, particularly thick volumes like dictionaries and cookbooks, symbolizes a superficial approach to learning. He prioritizes quantity over quality, believing that consuming more equates to knowing more. This resonates with the modern tendency to equate information overload with genuine understanding. We live in an age of readily available information, yet true wisdom lies not in accumulating data but in critically analyzing and synthesizing it. The fox's preference for dense texts can be seen as a satirical reflection of this tendency, highlighting the futility of simply absorbing information without internalizing it.

The pivotal scene where the fox gorges himself on cookbooks in a bookstore and becomes immobilized is a powerful metaphor. His inability to move signifies the constricting nature of improperly digested knowledge. He becomes a prisoner of his own consumption, unable to benefit from the very information he sought. This incident serves as a crucial turning point, forcing the fox to confront the inadequacy of his methods.

The bookstore owner's reaction to discovering the book-stuffed fox is equally significant. Instead of reacting with anger or punishment, he offers the fox tea and listens to his story. This act of kindness and understanding underscores the importance of empathy and connection in fostering growth and change. Had the bookstore owner chosen a punitive approach, the fox would have likely remained trapped in his destructive cycle. This encounter highlights the transformative power of human connection, emphasizing that true learning often occurs within a supportive and understanding environment.

The owner’s subsequent offer—allowing the fox to read in the bookstore—marks the beginning of the fox’s true intellectual and personal development. He transitions from literally eating books to actively engaging with their content. This shift represents the crucial difference between passively absorbing information and actively processing it. Reading becomes a process of understanding, interpretation, and internalization, leading to genuine knowledge and personal growth.

Ultimately, the fox transforms from a consumer of books to a communicator of their value. He shares stories with children who visit the bookstore, becoming a conduit for knowledge and fostering a love of reading in others. This transformation emphasizes the social dimension of knowledge. True understanding is not just about personal gain but also about sharing and contributing to a larger community.

"The Fox Who Ate Books" is more than just a charming children's tale; it is a thoughtful exploration of knowledge acquisition, the dangers of unchecked desire, and the transformative power of human connection. It reminds us that true learning involves not just accumulating information, but also understanding, interpreting, and sharing it with others. As a high school student navigating the complexities of education and the pursuit of knowledge, this story provides a valuable reminder to prioritize depth over breadth, understanding over mere accumulation, and connection over isolation.

8

フランツィスカ・ビアマンの『本を食べる狐』は、子供向けの愛らしい物語でありながら、知識の本質、抑えきれない欲望の危険性、そして真のつながりの大切さについて、驚くほど奥深い考察を提供しています。その奇抜な設定―文字通り本を食べてしまう狐―は、最初は子供たちの興味を引きますが、どのように情報を獲得し、処理し、最終的に共有するのかについて熟考を促すことで、より年長の読者にも共鳴します。

主人公の狐は、文学に対する飽くなき食欲を持ち、知識への人間の欲求を極端に具現化しています。彼が特に辞書や料理本のような分厚い本を文字通り食べる行為は、表面的学習へのアプローチを象徴しています。彼は量と質を優先し、多く消費することがより多くを知ることと等しいと信じています。これは、情報過多を真の理解と同一視する現代の傾向と共鳴しています。私たちは容易に情報が手に入る時代に生きていますが、真の知恵はデータを蓄積するだけでなく、批判的に分析し、統合することにあります。狐の分厚い書物を好むことは、この傾向の風刺的な反映と見なすことができ、単に情報を内面化せずに吸収するだけでは無意味であることを強調しています。

狐が書店で料理本をむさぼり食い、身動きが取れなくなるという重要な場面は、力強い比喩となっています。彼の動けなくなることは、不適切に消化された知識の拘束的な性質を意味しています。彼は自身の消費の囚人となり、まさに彼が求めていた情報から恩恵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す。この出来事は重要な転換点となり、狐は自身の方法の不十分さに直面せざるを得なくなります。

本屋の主人が、本で腹を満たした狐を発見した時の反応もまた重要です。怒ったり罰したりする代わりに、彼は狐にお茶を出し、話を聞きます。この親切と理解の行為は、成長と変化を育む上で共感とつながりの重要性を強調しています。もし本屋の主人が懲罰的なアプローチを選んでいたら、狐は破壊的なサイクルから抜け出せなかったでしょう。この出会いは、真の学びはしばしば支援的で理解のある環境の中で起こることを強調し、人間関係の変革力に光を当てています。

主人のその後の申し出―狐に書店で本を読むことを許可する―は、狐の真の知的、個人的発達の始まりを示しています。彼は文字通り本を食べることから、積極的にその内容と関わることに移行します。この変化は、受動的に情報を受け入れることと、積極的に情報を処理することの重要な違いを表しています。読書は、理解、解釈、内面化のプロセスとなり、真の知識と個人的成長につながります。

最終的に、狐は本の消費者から、その価値の伝達者に変わります。彼は書店を訪れる子供たちに物語を共有し、知識の伝達者となり、他者への読書の愛を育みます。この変化は、知識の社会的な側面を強調しています。真の理解は、個人的な利益のためだけではなく、より大きなコミュニティに共有し、貢献することにもあります。

『本を食べる狐』は、単なる魅力的な子供向けのおとぎ話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知識の獲得、抑えきれない欲望の危険性、そして人間関係の変革力についての思慮深い探求です。それは、真の学びは単に情報を蓄積するだけでなく、理解し、解釈し、他者と共有することを含むことを私たちに思い出させます。教育と知識の探求の複雑さを乗り越えている高校生として、この物語は、広さよりも深さ、単なる蓄積よりも理解、そして孤立よりもつながりを優先するようにという貴重な教訓を与えてくれます。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홍길동전(洪吉童傳) - 허균 (줄거리)

[Google책] 홍길동전

홍길동전 독후감 모음

1

홍길동전은 조선시대 홍 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길동이 신분 차별에 고통받다 집을 떠나 도적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도술로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던 길동은 나라의 인정을 받아 병조판서가 됩니다.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왕위에 오르지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국하여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립니다.

2

조선 세종 때, 홍 판서의 시비 춘섬에게서 태어난 길동은 얼자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천대를 받습니다.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지만, 길동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을 피해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릅니다. 도적 무리를 만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을 돕습니다.

전국적으로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으려 하지만, 신출귀몰한 도술로 번번이 피합니다. 결국 조정은 길동을 회유하기 위해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고, 길동은 이를 받아들여 도적 생활을 청산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얼 차별이 존재하는 조선 사회에 환멸을 느낀 길동은 무리를 이끌고 남경으로 떠나,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됩니다. 율도국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던 중 아버지 홍 판서의 부음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릅니다. 이후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왕으로서 어진 정치를 펼치며 태평성대를 이룹니다.



3

조선 세종 때, 명문가의 자제인 홍 판서와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술과 무예에 능했으나, 천한 신분 탓에 멸시와 차별을 받는다. 길동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고, 홍 판서의 첩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시기하여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한다. 위기를 벗어난 길동은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고, 도적 무리의 소굴에 들어가 그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된다.

길동은 자신의 무리를 '활빈당'이라 이름 짓고, 부패한 관리와 악덕한 부호를 징벌하여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는 활약으로 그 명성이 전국에 퍼지자,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지만, 뛰어난 도술과 지략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한다. 조정은 결국 회유책을 써서 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제수하고, 길동은 이를 수락하여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결국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남경으로 향하고, 제도라는 섬에 정착한다.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왕위에 오른 길동은 율도국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아버지 홍 판서의 부음을 전해 듣고 조선으로 돌아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 길동은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4

조선 세종 때, 명문가 출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고, 도술과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천한 신분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며, 집안에서도 멸시와 차별을 당한다. 홍 판서의 첩 초란은 비범한 길동을 시기하여 장차 집안에 화근이 될 것이라 여겨 자객을 보내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뛰어난 도술로 위기를 모면한 길동은 결국 정든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게 된다.

정처 없이 떠돌던 길동은 우연히 도적 무리의 소굴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 이름을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진다.

조정에서는 길동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동원하여 체포 작전을 펼치지만, 길동은 뛰어난 도술과 지략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하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결국 조정은 강경책을 철회하고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길동은 이를 수락함으로써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한다.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고, 이후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길동은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을 전해 들은 길동은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형 길현의 간청과 신하들의 충언으로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훗날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길동전 첫 쪽

5

조선 세종 때, 명문가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큰 굴레이자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조선의 신분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즉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형 길현의 간청과 신하들의 충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말년에 길동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긴다.


6

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남다른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7

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용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게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비범한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길동은 학문에도 뜻을 두었지만,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며, 천한 무예를 익힌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고통받던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기 전에 활빈당을 모아 그동안 모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산시킨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은 요괴들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였는데, 길동은 도술을 써서 요괴들을 물리쳐 율도국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율도국에서 어진 정치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태평성대를 이룩한다. 길동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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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시대, 명망 높은 양반 가문의 자제이자 덕망 높은 문신인 홍 판서와 그의 시비(婢) 춘섬 사이에서 서자 홍길동이 태어난다. 길동은 용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게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남다른 기상을 보였다. 특히 도술과 무예에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자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한 신분인 시비의 몸에서 태어난 얼자라는 멍에는 길동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적자와 서얼을 엄격히 구분하는, 신분 제도가 견고한 조선 사회에서 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한탄한다. 집안에서도 적자인 형 인형과는 달리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길동은 학문에도 뜻을 두었지만,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절망하며, 천한 무예를 익힌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은 길동의 비범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깊은 시기심을 품는다. 장차 길동이 집안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 여긴 초란은 무녀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길동을 죽여야 집안에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전문 자객인 특재를 고용하여 길동을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길동은 뛰어난 도술로 자객의 위협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히려 자객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한 배후가 초란임을 알게 된다. 초란에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난 길동은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도적 무리의 소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도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도적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길동은 무리의 이름을 '활빈당(活貧黨)'이라 짓고,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 악덕한 부호들을 징벌하여 그들의 재물을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재물은 가난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의로운 도적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다. 팔도 곳곳에서 신출귀몰하며 활약하는 길동의 명성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고통받던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조정은 큰 골칫거리를 얻게 된다.

조정에서는 길동과 활빈당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길동은 신묘한 도술과 뛰어난 지략으로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며, 오히려 조정을 조롱한다. 길동은 전국 팔도에 방을 붙여, 자신은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며, 자신을 잡으려는 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강경책으로 일관하던 조정은 전략을 바꾸어 회유책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길동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제수하고 그동안의 죄를 사면하겠다고 제안한다. 길동은 고심 끝에 조정의 제안을 수락하고 기나긴 도적 생활을 청산한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기 전에 활빈당을 모아 그동안 모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산시킨다.

그러나 길동은 여전히 서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조선 사회에 큰 회의를 느낀다. 비록 병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신분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결국 길동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고 남경으로 향하던 그들은 항해 도중 제도라는 섬에 정착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다. 이후 이웃 나라인 율도국을 정벌하여, 길동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다. 율도국은 요괴들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였는데, 길동은 도술을 써서 요괴들을 물리쳐 율도국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은 그동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며 선정(善政)을 베푼다.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또한, 조선의 신분제 사회와는 다르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펼쳐 율도국을 태평성대로 이끈다.

한편, 조선에서 아버지 홍 판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전해 듣는다. 길동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돌아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른다. 상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과 어머니 춘섬의 간절한 소망,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 듣고는 가슴 아파하며 율도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형 길현의 간곡한 청과 신하들의 충심 어린 조언으로 결국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율도국으로 돌아온 길동은 더욱 정치에 정진하여 율도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든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을 제정하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쓴다. 또한, 주변국들과의 외교 관계에도 능숙하여 율도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만년에 이르러 길동은 자신의 두 아들, 현과 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남긴다. 율도국의 백성들은 길동의 어진 정치와 업적을 기리며 오랫동안 그를 칭송하였다. 길동의 이야기는 후대에까지 전해져, 조선 시대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웅담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옥상의 민들레꽃 - 박완서

  [Google책] 옥상의 민들레꽃

줄거리

안녕! 오늘은 박완서 작가님의 「옥상의 민들레꽃」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궁전 아파트’라는 곳에서 일어난 두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건과,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야. 마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더 마음이 쓰일 거야.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에서 두 할머니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해. 궁전 아파트는 이름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아파트인데, 그런 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지. 아파트 주민들은 이 일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며 대책 회의를 해. 하지만 사람들은 진정으로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보여줘.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야.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라는 아이가 있어. ‘나’는 어른들의 그런 모습에 의문을 느껴. 어른들은 왜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 ‘나’는 예전에 자신도 힘든 시기를 겪었었고, 그때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꽃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아주 특별한 제안을 해. 바로 아파트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자는 거야. ‘나’에게 민들레꽃이 희망을 주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민들레꽃이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나’의 생각은 어른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어른들을 설득해.

‘나’의 제안을 통해 어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돼. 바로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마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물질적인 가치보다 인간적인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지.

이야기 속에서 민들레꽃은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지녀.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꽃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을 상징해. 또한,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도 해.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을까? 혹시 물질적인 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만은 아니야.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야. ‘나’라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가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겨.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될 거야.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 무심코 지나쳤던 이웃의 미소, 이런 작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큰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생각해 보길 바라.

이 이야기가 네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주었으면 좋겠어. 그 씨앗이 자라서 따뜻한 마음과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꽃피우기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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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옥상의 민들레꽃」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았어. 마치 옥상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쉽게 정리되지 않았거든. 이 이야기는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어.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에서 두 할머니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돼. ‘궁전 아파트’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곳에는 슬픔과 아픔이 가득했지.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건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모습만 보여줬어. 마치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돈이 먼저인 것처럼 느껴져서 씁쓸했어. 어른들은 왜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걸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나’라는 아이는 어른들과는 달랐어. ‘나’는 예전에 힘들었던 시기에 옥상에서 민들레꽃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민들레꽃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지.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자는 제안을 해. 어른들은 ‘나’의 제안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해.

‘나’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안타까웠어.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지만, 마음속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따뜻한 인간애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 마치 껍데기만 남은 과일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가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해. 민들레꽃을 심는 행위를 통해, 어른들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되찾게 되는 거야.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나도 모르게 물질적인 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어.

‘나’에게 민들레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어. 희망과 용기,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였지.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꽃처럼, 우리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 또한,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해 주었어.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어. ‘나’라는 아이의 작은 행동이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 예를 들어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이웃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작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큰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옥상의 민들레꽃」은 나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겼어.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마치 ‘나’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이 책을 읽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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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궁전 아파트에는 슬픈 일이 두 번이나 있었어. 칠 층 베란다에서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신 거야. 실수로 떨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라니 정말 마음이 아팠어.

아파트는 멋있어 보이지만, 슬픔을 막아주지는 못했어. 어른들은 이 일 때문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만 했지, 할머니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정말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어. 마치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

나도 예전에 힘든 적이 있었어. 그때 우연히 아파트 옥상에서 민들레꽃을 봤는데, 그 작은 꽃이 나에게 큰 힘을 줬어. 시멘트 틈에서 꿋꿋하게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니까,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어. “우리, 옥상에 민들레꽃을 심어요!” 하고 말이야. 내가 민들레를 보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민들레를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른들은 내 말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어른들에게 이야기했어. 할머니들이 왜 힘드셨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야.

내 생각에, 어른들은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것 같았어. 겉으로는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부러움을 사지만, 마음속은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많았던 거야. 서로 따뜻하게 대해주고, 힘든 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린 것 같았어.

이야기 속에서 민들레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척박한 곳에서도 씩씩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우리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는 것 같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혹시 힘든 사람은 없는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는지 말이야. 그리고 나도 민들레처럼 씩씩하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야겠다고 다짐했어.

「옥상의 민들레꽃」은 슬픈 이야기지만,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해. 작은 민들레꽃처럼, 우리도 작은 힘으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야.

이 이야기가 너희들에게도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씨앗이 자라서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쁜 꽃을 피우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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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한 아파트의 비극을 넘어, 현대 사회의 단면과 인간 소외,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잊혀져 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야기는 ‘궁전 아파트’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시작됩니다. ‘궁전’이라는 화려한 이름과는 달리, 그곳은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현대 사회의 이면, 즉 물질적인 풍요 속에 가려진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의 재산 가치 하락과 연결 지어 생각하며, 진정으로 고인들의 아픔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현대 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인물입니다. ‘나’는 과거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민들레의 생명력은 ‘나’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합니다.

‘나’의 제안은 단순히 꽃을 심자는 행위를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외침과 같습니다. ‘나’에게 민들레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 그리고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메말라 있던 어른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그들은 점차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물질적인 풍요가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는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가? ‘나’의 행동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즉, 물질적인 가치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우선시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나’라는 인물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개인의 작은 행동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작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도 깊은 울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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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순히 아파트에서 벌어진 연이은 자살 사건을 넘어,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의 폐해, 공동체 의식의 붕괴,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모색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궁전 아파트’는 이 소설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입니다. ‘궁전’이라는 이름은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두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의 무대가 됩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내면적 공허와 고독을 채워줄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그들은 고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애도하기보다는 아파트 가격 하락을 우려하며 대책 회의를 여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붕괴와 개인주의의 심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현대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는 어린 화자는 어른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나’는 과거 자신의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만난 민들레를 통해 위로받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제안은 단순한 조경 사업을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적 유대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민들레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 힘을 상징합니다. 또한, 민들레가 씨앗을 퍼뜨려 번식하는 모습은 나눔과 공존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암시합니다. ‘나’가 민들레를 통해 위로를 받았듯이, 다른 사람들도 민들레를 보며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가? ‘나’의 행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즉, 물질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적인 가치를 회복하며,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삭막한 현실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어른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인간성을 일깨웁니다. 이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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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내포한 작품이다. 고층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의 심화, 공동체 의식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특히, 오랜 사회 경험과 조직 생활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경험한 중년 남성 독자에게 이 작품은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품의 주된 배경인 ‘궁전 아파트’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궁전’이라는 명칭은 외형적인 풍요와 사회적 성공을 암시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이라는 비극의 현장이 된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내면적 결핍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외형적인 번영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물질 중심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이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애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와 개인주의의 심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조직 내의 협력과 공동 목표 달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유대의 약화와 인간성의 상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는 어린 화자의 시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과거 힘든 시기에 옥상에서 민들레를 통해 위안을 받았던 경험을 회상하며, 어른들에게 옥상에 민들레를 심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은 단순한 조경 사업을 넘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독자에게 ‘나’의 제안은 인간적인 가치와 정서적 교류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품에서 민들레는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수행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내면적 힘을 상징한다. 또한, 씨앗을 퍼뜨려 번식하는 민들레의 모습은 나눔과 공존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행위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고, 잊혀졌던 인간성을 일깨우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는 개인의 작은 행동이 사회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는 데 개인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조직 생활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감을 체득한 독자에게 이 작품은 조직 및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이해의 선물 - 폴 빌리어드(Paul Villiard)

 [Google책] 이해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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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이해의 선물」은 짧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따뜻함을 남겨주는 이야기였어요.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처럼 포근하고, 읽고 나니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어요.

이 책은 어린 시절 '나'가 겪었던 사탕 가게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네 살배기 '나'는 사탕 가게에서 갖고 싶은 사탕을 고르고, 그 값으로 주머니에 있던 버찌 씨앗을 내밀었어요. 어른들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사탕 가게 주인 위그든 씨는 '나'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고 사탕을 건네주었죠. 

'나'는 위그든 씨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상처받지 않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위그든 씨와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돼요. 어린 남매가 사탕 값으로 조약돌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고, 위그든 씨처럼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며 사탕을 선물했죠.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의 이해심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어요. 만약 위그든 씨가 '나'를 꾸짖거나 비웃었다면 '나'는 큰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어쩌면 세상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위그든 씨는 '나'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따뜻한 미소로 사탕을 건네주었어요. 덕분에 '나'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성장할 수 있었죠.

저도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어요.

「이해의 선물」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따뜻한 마음과 이해심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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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어. 「이해의 선물」이라니, 뭔가 뻔하고 교훈적인 이야기일 것 같았거든. 게다가 표지 그림도 좀 촌스러워 보였고.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어. 뭔가 찡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어렸을 때 사탕 가게에서 겪었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야. 네 살 때니까, 완전 꼬맹이였지. 주인공은 사탕 가게에 가서 엄청 먹고 싶은 사탕을 발견했는데, 돈이 없었어.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버찌 씨앗을 사탕 가게 주인 할아버지에게 내밀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황당한 일인데, 그때는 진짜 버찌 씨앗이 돈처럼 느껴졌나 봐.

근데 신기하게도 사탕 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화를 내거나 비웃지 않았어. 오히려 친절하게 웃으면서 사탕을 주셨지. 어린 마음에도 그때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어. 덕분에 사탕을 훔친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됐지.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어른이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그 할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돼. 어린 남매가 열대어를 사려고 하는데, 돈이 부족해서 조약돌을 내미는 거야.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고,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아이들에게 열대어를 선물했어. 마치 그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어. 만약 그때 사탕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나를 혼냈다면, 나는 아마 큰 상처를 받았을 거야.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할아버지의 따뜻한 이해 덕분에 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도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친구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른들의 말씀에도 귀 기울여야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겠어.

「이해의 선물」은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야. 이해심, 배려, 그리고 따뜻한 마음. 이런 것들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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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꺼내 읽는다는 건, 마치 잊고 있던 보물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빛바랜 기억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마주하며,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은 바로 그런 경험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책은 네 살배기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이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아이는 사탕 가게에서 갖고 싶은 사탕을 고르고, 그 값으로 주머니 속 버찌 씨앗을 내민다.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버찌 씨앗 또한 사탕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물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른들의 눈에는 단순히 철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맑은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탕 가게 주인 위그든 씨는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따뜻한 미소로 사탕을 건네준다. 위그든 씨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아이의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위그든 씨가 아이를 꾸짖거나 무시했다면, 아이는 세상에 대한 불신과 상처를 안고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주인공은 어린 시절 위그든 씨에게 받았던 '이해의 선물'을 떠올리며,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어린 남매가 조약돌을 내밀며 열대어를 사려는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위그든 씨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의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의 선물」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이해'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의 주변 사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이해심을 잃지 않도록,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해의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샬롯의 거미줄 - 엘윈 브룩스 화이트

[Daum책] 샬롯의 거미줄 http://durl.me/2g6ko

1

샬롯에게
안녕 난 -----초등학교--학년--반---야.

나는 이 책을 읽고 네가 한 일에 감동했어.

네 자신을 희생하면서 친구인 윌버를 구하려는 마음에 너무 감동했고, 나도 너를 본받아서 친구들을 잘 도와 주고 나 자신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처음에 윌버를 만나서 거미줄에 '대단한 돼지'라고 썼을 땐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윌버를 구하려는 너의 소중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그런 생각은 잊었어.

비록 책에선 죽었지만 너는 윌버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2

윌버(돼지)은 원래 죽어야 했을 돼지다. 하지만 동물의 소중함을 느낀 펀은 아빠의 도끼질을 막아 준다. 그래서 윌버는 펀을 정말 좋아한다.

어느 날 펀의 부모님은 윌버를 주커만 부인에게 6달러로 팔기로 했고, 주커만 부인네로 옮겨 졌다. 처음에 윌버는 탈출 시도를 했지만 다시 잡혀 가서 주커만 부인네로 간다. 하면서 윌버는 샬롯이라는 거미 친구를 만나 여러 가지 대화로 친한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윌버는 주커만 가족이 윌버를 베이컨으로 잡아먹는다고 소식에 깜짝 놀라고 윌버는 거미 샬롯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샬롯은 '근사해, 대단한 돼지'등 여러 가지 말들을 거미줄에 넣었다. 그걸 본 주커만가족은 놀라게 되고 여러 사람들이 농장에 찾아왔다.

마지막에 샬롯은 친한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알을 낳고 죽는다. 윌버는 그 알을 맨날 잘 보살핀다.

어느 날 알이 깨지고 거미 수만 마리가 버리에게 찾아와서 '고맙습니다 아저씨'하고 농장 밖으로 날아서 떠난다. 윌버는 다들 떠나서 슬퍼하지만 조금 있다가 거미 몇 마리가 남아서 윌버를 즐겁게 해 준다.

3

나는 심심풀이로 문제를 풀다가 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책을 찾게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윌버라는 돼지와 샬롯이라는 거미가 꾸미는 이야기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샬롯의 거미줄 (2)에 있는데, 윌버가 원래 무녀리였지만 펀이라는 아이가 그 돼지의 주인인 아빠가 무녀리라서 죽이려 하자 펀이 아빠께 인상적인 말을 말하고 그 무녀리 돼지를 살렸다.

그리고 그 돼지의 일생이 시작되는데 샬롯이라는 거미를 만난다. 그 거미랑 이야기를 나누다 돼지인 윌버가 샬롯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윌버가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샬롯은 시간이 흐르면서 샬롯을 오해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끝까지 의리를 지켰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윌버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샬롯이 한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너를 살찌우고 있는지 아니?" / "아니"
"사람들이 널 죽이려고 찌우는 거야."

그래서 샬롯이 윌버를 구해 주기로 약속했다. 여기서 이유가 나오는데 진짜 친구의 우정이 여기 내용에 나와 진짜 친구의 우정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4

윌버는 형제 중에서 가장 작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펀이 살려 주었다. 그 후 윌버는 많이 먹어서 몸집이 커졌다. 윌버는 우리에서 샬롯이라는 거미를 친구로 만든다. 윌버는 자신이 크리스마스에 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윌버는 절망한다. 하지만 샬롯이 윌버를 살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샬롯은 우리 구석에 대단한 돼지라고 적는다. 윌버는 순식간에 유명해 진다. 샬롯은 근사해 라고 거미줄에 다시 글을 썼다. 윌버는 품평회에 가기로 했다. 윌버는 품평회에 가기 전 우유 목욕을 했다. 우유 목욕을 한 후 윌버는 품평회에 간다. 윌버는 품평회에서 우승을 한다. 샬롯은 알을 낳는다. 품평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샬롯을 어쩔 수 없이 두고 왔다.

샬롯의 알이 부화했다. 많은 새끼 거미들이 나왔다. 세 마리 빼고 모두 떠났다. 그 세 마리는 윌버의 새 친구가 되었다. 그 거미들은 조이, 에이라니아, 넬리였다. 이제 윌버와 조이, 에이라니아, 넬리는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윌버는 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어야겠다.

5

처음 어떤 돼지는 돼지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자 마자 죽을 뻔했는데 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다. 펀은 돼지를 윌버라고 지어 주고 열심히 키웠다.

하지만 아빠의 말씀은 윌버가 크면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주커만씨의 농장으로 가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윌버가 외로운 것은 진정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윌버에게 찾아온 거미 샬롯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 윌버는 새 친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 윌버는 양에게 크리스마스에 자기가 햄으로 만들어 진다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는 윌버는 불행한 나날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 윌버에게 샬롯은 윌버에게 지켜 준다고 한다.그날 이후 샬롯은 거미줄을 쳤고, 거미줄에 '대단한 돼지' 라고 쓴다. 그 후 윌버는 유명해 지고, 주인은 윌버를 죽이지 않는다.

윌버는 돼지 대회에서 상도 받아 살게 되어 기뻤지만 샬롯은 늙고 거미줄에 글씨를 쓰는데 너무 힘을 써 버려서 결국에는 죽게 된다. 윌버도 늙었을 때 샬롯의 자식들을 보게 되고,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샬롯의 거미줄을 읽고 우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면 샬롯처럼 열심히 도울 것이다.

6

월버는 시골의 작은 농장에서 태어난 제일 작은 돼지이다. 너무 작으면 사료 값만 많이 들고 건강하지 못 할까 봐 죽이려고 했지만 농부의 딸 펀 덕분에 살아남게 되었다. 키우다가 너무 커져서 아는 농장에 보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외롭고 심심해서 친구를 구하다가 천장에서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라는 소리를 농장 천장에서 듣고 그때부터 샬롯의 친구가 되게 되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 왔다. 늙은 양이 보고 들은 소리 인데 윌버가 겨울이 되면 맛있는 베이컨이나 햄이 된다는 소리였다. 윌버를 살리려고 고심을 하다가 샬롯이 거미줄로 멋있는 글자를 쓰기로 하였다. 다음날 샬롯의 거미줄에 ‘대단한 돼지’ 라는 글자였다. 그 글자 덕분에 윌버는 호강하게 되었고, 기자들까지 와서 설쳐 되었다. 그 뒤 계속 글자를 써넣었고, 품평회 날에는 대회를 나가게 되었고, 상까지 타게 되었다. 하지만 윌버를 도운 샬롯은 많은 알들을 낳고 죽었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윌버의 하루에 빠져들고 있었다.

월버가 자기가 겨울이 되면 죽는 다는 사실을 알 때 나도 가슴이 뛰었고, 샬롯이 월버를 칭찬하는 글자를 거미줄에 쓰고 나서는 샬롯이 고마웠고, 휴~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몸집도 다르고, 성격, 행동, 생김새 등 많은 것이 다르지만 이렇게 서로를 위해 도와 주고, 나누고, 아끼는 모습이 좋았고, 자기만 생각하는 탬플턴도 같이 도와 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또, 생명을 아껴서 죽이려는 윌버를 살려 주는 펀의 행동이 따뜻했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하고, 마음이 훈훈했다. 감동의 이야기였다

7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점은 '감동'과 '의리'이다. 기억에 남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끝까지 의리를 지켰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 끝까지 목숨 바쳐 의리를 지키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샬롯의 모습을 나타낸다.

더욱 감동을 느낀 것은 하찮고 작은 동물이라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거미라는 동물이 돼지라는 한 생명을 살린 일이다. 물론 소설(동화)에서의 일이지만, 현실에서도 거미가 글을 안다고 가정을 하고 생각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무녀리로 태어난 윌버가 크게 유명해 져서 잘 살게 된 것은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비록 하찮고 약한 것이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의 무한한 욕심에 대해서 풍자하고 있다.

어리석으면서도 욕심이 많은 인간들이 샬롯의 꾀에 넘어가 윌버를 품평회에 내고 좋아하는 걸 보면, 돈에 눈이 먼 인간들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진다.

나도 샬롯의 의리와 믿음, 윌버의 순진하고 천진난만함을 본받고 실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8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샬롯의 거미줄이라는 책이 5학년 추천 도서이다. 이 책이 5학년 추천 도서이기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펀의 아버지는 동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데 펀은 동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윌버를 살리고 잘 보살펴 주었다. 돼지를 키우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펀은 끝까지 윌버를 키웠다. 나 라면 윌버를 남에게 주었을 텐데 말이다. 8살짜리 동생 돌보기도 힘든데 돼지를 돌보면 얼마나 힘들까? 아무튼 펀은 참 대단하다.

그러나 윌버는 태어난 지 다섯 주가 되자 펀의 품을 떠나야 했다. 왜냐하면 펀의 아버지가 이제는 그 돼지를 팔아야 할 때 라고 하며 말씀을 하시고, 펀의 어머니께서는 삼촌 댁에 팔라고 하셨다. 펀이 윌버가 보고 싶을 때 삼촌 댁에 걸어가서 볼 수 있다고 하시며 펀을 꼬셨다. 마침내 펀은 삼촌 댁에 팔기로 결정했다. 남의 집에 파는 것 보다 삼촌 댁에 파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펀이었어도 삼촌 댁에 팔았을 것이다. 윌버를 영영 볼 수 없는 것보다는 내가 삼촌 댁에 가서 윌버를 보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버가 마당으로 걸어 나왔는데 암거위가 울타리로 가서 판자를 밀어내고, 판자 사이를 빠져 나와 자유를 얻어 보라고 하였다. 윌버는 암거위가 말한 대로 해보았다. 윌버는 자유를 얻어 신나게 뛰어오르고, 몸을 비틀고, 몇 걸음을 달리고, 멈추어 서기도 하며 자유롭게 행동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숙모가 돼지가 나왔다고 가족에게 알렸다. 윌버는 이제 야단을 맞을 거라 생각했다. 암거위는 언덕 아래로 도망치라고 하였다. 윌버는 껑충껑충 뛰며 도망갔다.

그렇게 뛰던 윌버는 템플턴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다. 템플턴은 돼지랑 친구가 되기 싫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윌버는 샬롯이라는 거미와 친구가 되었다. 늙은 양은 윌버에게 사람들이 윌버를 훈제 베이컨과 햄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윌버는 자신이 햄이 될 거라는 생각에 겁을 먹었다. 샬롯은 그런 윌버에게 자신이 윌버를 지켜 주겠다고 했다. 윌버는 많이 무서웠을 것 같다.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하니 무서울 것이 따름 없다. 하지만 윌버는 훈제 베이컨과 햄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샬롯이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 샬롯과 윌버의 우정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9

내가 이 샬롯의 거미줄이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한참 샬롯의 거미줄이란 영화가 유명할 때 책장을 살피다가 우연히 샬롯의 거미줄이란 책을 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책 제목을 보고 영화를 보지 못한 나는 영화 내용이 궁금해서 그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즐겨 읽다가 오늘이 와서야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책 제목만으로는 느낌이 잘 오지 않는 모르고 있다가 생각을 조금 더 해보니까 잘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세히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끼 돼지 윌버를 죽이려고 하는 펀의 아빠의 행동으로 시작된다.

윌버를 죽이려고 하는 아빠를 본 펀은 그것을 말리고 아빠에게 제발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그래서 펀의 아빠는 윌버를 펀에게 주었다. 펀은 윌버를 꼭 자기 자식처럼 키웠다. 그러나 5주후 윌버는 주커만 씨의 농장으로 팔려 갔다. 펀은 매일 주커만 씨의 농장에 가서 윌버를 지켜 보았다. 며칠 후 윌버는 크리스마스 즈음 되면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버는 친구 거미인 샬롯이 도와 주겠다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을 했다.

나는 도대체 왜 펀의 아빠가 월버를 죽이려고 하는 지 잘 모르겠다. 아기 돼지도 확실히 생명인데 말이다. 그리고 펀이 아빠를 말린 행동은 정말로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윌버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도 우리 집 강아지인 미실이를 내 자식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직 진짜 자식은 없어서 이해가 조금 덜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펀의 아빠는 펀이 그렇게 월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월버를 또 팔았는지 궁금하다. 딸이 좋아하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그걸 또 굳이 파는지 자식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윌버인데 크리스마스 즈음 죽는 것을 알았으면 매우 절망적일 것이다. 단 1년도 못살고 죽는 것도 억울한데 살아 있을 때 그것을 알 면 매우 억울하고 절망적일 것이다. 근데 그 때 친구가 자신을 도와 주겠다고 하면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겠다.

샬롯은 밤 새도록 거미줄에 대단한 돼지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아침이 돼서 주커만 씨가 나와 대단한 돼지라는 글귀를 보고 매우 놀랐다. 그 다음 날에는 훌륭한 돼지, 그 다음 날에는 빛나는 돼지 등등 많은 좋은 말을 거미줄에 새겨 넣어 윌버가 유명해 지게 만들었다. 주커만 씨는 윌버를 농산물 박람회에 데리고 나가기로 하였다. 윌버가 농산물 박람회에 나간 날은 겸손한 돼지라는 글귀를 거미줄에 새겨 넣었다. 그래서 윌버는 농산물 박람회에서 동메달을 탔다. 그 덕에 주커만 씨는 윌버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 그 즈음 샬롯은 자신의 알 주머니를 만들었다. 샬롯은 그날 밤 명을 다해 죽고 윌버는 집에 갈 때 샬롯의 알 주머니를 자신의 입 속에 넣어서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봄 날 샬롯의 알 주머니에서 새끼 거미들이 태어나고 몇 마리 들은 바람을 타서 날아가고 한 두 마리쯤은 윌버의 곁에 남아 있었다. 매 해 마다 샬롯의 후손들은 한두 마리쯤 윌버의 곁에 남아 주었다. 샬롯의 후손도 윌버의 친구가 되어 주었지만 윌버의 마음 속 한곳에 자리 잡은 샬롯보다는 못하였다.

샬롯의 매우 똑똑한 것 같다. 거미줄에 윌버를 칭찬하는 글귀를 새겨 주커만 씨의 마음을 돌려 놓다니 말이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는 매우 힘든데 그 작고 말 못하는 거미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샬롯은 윌버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사람은 도와 주지도 않고 오히려 골탕을 먹이는 친구도 있는데 샬롯은 의리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윌버한테 어떻게 그렇게 좋은 친구를 사귀었는지 물어 보고 싶다. 또 축하 해주고 싶다. 그리고 샬롯의 후손도 착한 것 같다. 한두 마리쯤은 윌버 곁에 남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같아도 샬롯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10


작지만 위대한 우정, 그리고 삶의 의미 - 엘윈 브룩스 화이트, 「샬롯의 거미줄」을 읽고

며칠 전 엄마가 사주신 「샬롯의 거미줄」을 다 읽었어요.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어요. 윌버와 샬롯의 우정이 너무 감동적이었거든요. 마치 제가 윌버가 된 것처럼 샬롯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샬롯의 거미줄」은 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돼지 윌버와 헛간에 사는 거미 샬롯의 특별한 우정 이야기예요. 윌버는 크리스마스 만찬에 오를 운명이었지만, 샬롯은 윌버를 돕기 위해 거미줄에 기적 같은 글자를 써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샬롯 덕분에 윌버는 특별한 돼지가 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죠.

처음에 윌버는 샬롯을 무서워했어요. 거미는 징그럽고 무섭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샬롯은 윌버에게 친절하게 다가갔고, 윌버는 샬롯의 진심을 느끼고 친구가 되었어요. 샬롯은 윌버에게 "돼지는 왜 햄과 베이컨이 되어야 해?"라고 물으며 윌버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죠. 샬롯의 따뜻한 마음에 저도 감동했어요.

샬롯이 거미줄에 글자를 쓰는 장면은 정말 신기했어요. '대단한 돼지', '겸손한 돼지' 같은 글자를 보고 사람들은 윌버를 특별한 돼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샬롯은 윌버를 위해 밤낮으로 글자를 쓰느라 몸이 점점 약해졌지만, 윌버를 걱정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샬롯의 헌신적인 모습에 저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결국 샬롯은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했어요. 윌버는 샬롯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샬롯의 마지막 선물인 알 주머니를 소중히 간직했죠. 봄이 되자 알 주머니에서 샬롯의 아기 거미들이 태어났고, 윌버는 아기 거미들을 친절하게 돌보며 샬롯과의 약속을 지켰어요. 샬롯의 아기 거미들이 윌버 곁을 떠나는 장면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주변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저에게도 샬롯 같은 친구가 있을까요? 저도 친구들을 위해 샬롯처럼 헌신적인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샬롯처럼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샬롯의 거미줄」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에요. 진정한 우정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죠.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거예요. 저는 이 책을 모든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Daum책] 벙어리 삼룡이 http://durl.me/7obmev

[위키문헌] 벙어리 삼룡이 원문 보기 (저작권 소멸)

책 소개

1925년 '여명'에 발표된 단편 소설. 신체적 불구와 함께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을 통해, 고결한 사랑의 가치, 독자적인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불의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작품의 줄거리

십 사오 년 전, '내'가 열 살 안팎인 때의 일이다. 청엽정(동리 이름에 '정'이 붙는 것은 일제 시대이기 때문이다.)을 연화봉이라고 부를 무렵, 그 동네에는 인심이 후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세력도 있는 오 생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오 생원의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있었는데, 볼품없는 외모에 흉한 걸음의 그는 마음이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해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편, 버릇이 없고 성격이 고약한 주인 아들은 삼룡이를 괴롭히나 삼룡이는 언제나 참는다.

주인 아들은 현숙한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매사에 훌륭한 신부와 비교되자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는 자기 아내를 미워한다. 삼룡이는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삼룡이에게 새아씨는 부시 쌈지를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말썽이 되어 삼룡이는 주인 아들에게 죽도록 맞은 뒤 내쫓긴다. 어느 날, 삼룡이는 주인 아씨가 중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걱정 끝에 그 방에 들어갔다가 들켜서 오해를 받고는 매를 맞고 쫓겨난다. 그날 밤, 그 짚에 불이 난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삼룡이는 주인을 구출해 낸 다음 다시 불길로 들어가, 타 죽으려고 불 속에 누워 있는 새아씨를 찾아내어 안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삼룡이는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등장 인물


  • 삼룡: 말 못하는 벙어리이나 충직한 머슴. 새아씨에 대한 사랑을 방화 행위로 표출한다.
  • 오생원: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나 자식을 잘 못 키웠다는 아픔을 지니고 있다.
  • 오생원 아들: 포악하고 무모한 성격. 새아씨와 삼룡이를 비인간적으로 대한다.
  • 새아씨: 영락한 양반의 딸로 돈에 팔려 시집을 와서 남편에게 학대를 받는다.


1

저는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의 줄거리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벙어리 삼룡이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어느 집의 돌쇠로 살아가고 있었다. 삼룡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도 없이 살고 있다.

그 집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할 여자를 보고 삼룡이가 한눈에 반한 듯싶다. 주인의 아들이 결혼한 날 삼룡이는 쓸쓸하게 혼자 있어야 했다. 큰 덩치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주인의 아들이 자신의 색시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넣어 보기도 하였지만, 그 아들은 거부하였다. 자기가 좋다고 결혼했으면서 왜 그러는지 삼룡이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어느 날 색시네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아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색시를 내두고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본 삼룡이는 색시가 너무 안타까워서 자신이 구하러 갔다.

사랑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삼룡이가 너무 보기 좋았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색시를 구했지만, 결국 삼룡이는 죽었다고 한다.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의 줄거리를 끝마쳤으니 제 소감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나도 다음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면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을 무시한 적이 많았는데 함부로 무시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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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어수행평가 계기로 벙어리 삼룡이라는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벙어리 삼룡이는 추한 외모에 벙어리고 보잘 것 없는 하인이지만 영혼만은 순결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천진성과 충직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상룡이 순결한 사람은 이 벽을 없애고야 만다 불 속에 타 죽고자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주인 아씨를 구해 내고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띈 채 죽는 것이다.

내가 벙어리 삼룡이였다면 나 먼저 살려고 자기만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런 벙어리 삼룡이의 희생 정신이 중요하고 죽음이 갖는 추와 고난의 이미지가 없으며 사랑이 완성되는 짧은 순간을 나타낸다 어린 주인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 못하는 벙어리더라도 사람의 인격은 지켜 주어야 되는데 자기 마음대로 벙어리를 괴롭히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벙어리 삼룡이를 부른다 사람은 말 못하고는 못사는데 장애인이나 벙어리 삼룡이처럼 말 못하는 벙어리라도 무시하면 나도 그만큼 죄를 얻는다는 참다운 교훈을 알아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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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란 책은 이름만 들어 봤지 내용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독후감도 쓸 겸 책을 한 번 읽어 봤다.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 년 전 일이다.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연화봉에서 살던 오 생원은 아주 부지런하고 인심이 후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다. 오 생원에게는 주인에게 헌신적인 벙어리 하인 삼룡이와 삼대 독자라 너무 버릇없이 자란 열 입골 살 먹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삼룡이를 심하게 학대하고 구박했다. 인심이 후한 삼룡이를 그렇게 학대하다니 오 생원의 아들은 한 대 맞아야 해!

그 해 가을 오 생원은 몰락한 양반의 집 딸을 삼만 냥의 거금을 주고 데려 와 자기 아들과 결혼을 시켰다. 새색시는 아름다운 외모에 참한 인품을 지녔는데, 흠이 많은 새서방은 이런 새색시를 미워하여 혼인한 지 며칠 후부터 신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오 생원과 주변 사람들이 아들을 나무라자 화가 난 그는 새색시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삼룡이는 구박을 받는 주인 아씨를 몰래 동정하게 된다. '아씨를 동정하다가 오해해서 삼룡이가 왠지 얻어 맞을 것 같다. 어뜩해......'

어느 날 삼룡이는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실컷 얻어맞고 길에 자빠진 새서방을 업어다가 누인다. 아씨는 삼룡이의 충직한 마음에 감동하여 비단 헝겊으로 쌈지 하나를 만들어 준다. 어느 날, 이 비단 쌈지를 본 새서방은 삼룡이와 아씨의 관계를 오해하여 새색시를 마당에다 내동댕이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역시 오해하다니.'

삼룡이는 새서방을 내어 던지고, 아씨를 구해 낸다. 이튿날 아침 새서방은 쌈지를 갈갈이 찢으며 분노하고 삼룡이를 채찍으로 마구 때리며 안방 출입을 못하게 한다. '어떻게......삼룡이만 불쌍하다. 새서방 같은 나쁜 놈은 진짜 없어져야 하는데 꼴 보기 싫을 정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계집 하인으로부터 주인 아씨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삼룡이는 안방 출입이 금지된 것도 잊은 채 안방으로 뛰어들어 목 매어 자살하려던 아씨를 구해 낸다.

이 일로 삼룡이는 더욱 새서방의 오해를 사게 되어 심하게 매를 맞고 그 이튿날 밖으로 내쫓긴다. 쫓겨난 삼룡이는 그 동안 믿고 의지한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 역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날 밤 오생원의 집에 화염에 싸인다. 삼룡이는 주인을 구한 뒤에 아씨를 찾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삼룡이는 구해 달라는 새서방을 뿌리치고, 아씨를 찾아 불길을 헤치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안 그는 그제서야 아씨를 내려놓는데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다. '어뜩해.. 진짜로 삼룡이만 불쌍하게 되었다. 주인에게 정말 충직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삼룡이는 순수한 하인이었는데......죽게 되다니......'

집은 모조리 타고 그의 무릎 위에는 아씨가 누워 있다. 그의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는지, 그의 입가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엷게 나타나 있다.

돈과 신분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벙어리라는 약점을 갖고 있는 삼룡이가 상전인 아씨를 좋아한 것은 불행으로 닥치고야 말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항상 슬프고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 지는데 벙어리 삼룡이는 그렇지만은 않는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었지만 신체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약자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이 모시는 상전이라니......너무 안타깝다. 불쌍히 만날 매만 맞기만 하고......아씨를 구하고 죽고야 마는데......이렇게 슬플 수가......

그래도 항상 주인에게 순종적이던 삼룡이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불길로 뛰어 들어가 아씨를 구하는 것을 보고 사랑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줘서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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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 읽은 후에 옛날의 고통스러운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게 된다. 삼룡이가 하인으로 주인의 집에서 일했다. 주인이 삼룡이한테 잘 주지 않았지만 삼룡이가 원망하지 않고 계속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특히 주인 아들이 삼룡이에게 자주 폭력을 썼다. 그래도 삼룡이가 아주 충성스럽고 주인 아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인 아들이 위급한 경우에는 꼭 자기의 힘을 다 하였다.

그런데 주인 아들의 색시가 들어왔을 때 이런 상화가 바뀌었다. 삼룡이가 색시한테 점점 사랑에 빠졌다. 색시 때문에 삼룡이가 드디어 주인에게 반항했다. 마지막으로 삼룡이가 주인의 집에서 방화했다. 그때 삼룡이가 주인과 색시를 구했지만 자기가 끝내 색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면서 죽었다. 정말 슬픈 이야기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화재 부분이다. 거기서 이 소설의 절정이다. 삼룡이 드디어 참지 못해서 반행하고 복수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아주 강한 감정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삼룡이가 사랑하는 여자를 구해서 죽어도 기분이 좋아서 독자들의 기분도 점점 좋아졌다.

이 소설 중에서 제일 궁금한 부분은 색시가 도대체 무슨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삼룡이가 무슨 맘호가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맘호인지 궁금하다.

프랑스의 소설 노틀담 성당이랑 벙어리 삼룡이는 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콰지모도랑 삼룡이는 둘 다 장애가 있고 또 자기 부모(콰지모도는 엄마/ 삼룡인 아빠)를 죽인 원수의 손에서 자랐다. 못 생기고 지위가 낮은 남자가 아주 착하고 너그럽고 잘 참은 사람이지만 항상 다른 지위가 높은 사람들한테 깔보고 구박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의 힘을 통해서 나쁜 사람들에게 반항하고 복수했다. 이 두 소설은 다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마음씨가 곱지만 못 생긴 사람들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운명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했다. 아주 의미 깊은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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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작가 나도향은 1902년3월30일 생이다 본명은 나경손이고, 초기 작품 젊은이의 시절, 환희에는 감상적이며 애상적이고 낭만주의적 색채가 묻어있다. 그 뒤에 그러한 감성에서 벗어나 1923년부터 여 이발사, 백조 등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는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써 내면서 비로서 주관적이고 애상적인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작가로서 완숙의 경지에 올랐을 때 요절하였다.

나도향의 작품 벙어리 삼룡이는 내가 중학교 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특이하고 웃겨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는 삼각관계처럼 벙어리 삼룡이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그 당시의 신분적 관계로 인해 태어났을 때부터 추남인데다 땅딸보이고 벙어리인 오생원네의 머슴인 삼룡이는 새로 들어온 주인댁의 새아씨가 망나니인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그것이 연정으로 변하여 사모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 속이 시원했던 것은 평생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인댁 어른을 위해 사는 벙어리 삼룡이가 끝내는 그 집에서 쫓겨나 자기 자신의 자아를 깨달았을 때 나는 그때 속이다 시원했다 그리고 불이 난 집으로 뛰어 들어간 삼룡이가 주인님을 구해 오고 이미 죽어 버린 아씨를 불타는 집에서 안고 나오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정말 슬프고 삼룡이의 사랑이 대단해 보이고 그 당시의 신분적 차별로 인해 삼룡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주인 아들은 못되고, 철도 안든 데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마을에서 소문난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삼룡이는 평생을 주인 어른을 위해 부지런하게 살고,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주인 어른을 무지 사랑 하는 머슴이었다. 왜 이렇게 소설에서는 둘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만들어 낸 것일까?

아마도 그건 삼룡이의 순수함과 마지막까지 그 순수함 때문에 자신의 살이 타는지도 모른 채 아씨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린 삼룡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였던 것 같다. 참 다행인 것은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머슴도 없고 주인도 없는, 그래서 이런 신분적 차별로 인한 비극이 없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쓴 나도향은 이때 당시 25살이였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쓴 나도향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 낭만주의 기법을 쓰고 있는데, 특징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인간의 감정에 대한 사실적 해부 등 복합적 요소가 혼합된 작품이다. 아마 이 작품을 쓴 나도향은 이 시대의 신분적 차별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벙어리 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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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 공략일 수도 있다.

1925년 <여명>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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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여명(黎明)>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신체적 불구와 함께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을 통해, 고결한 사랑의 가치와 독자적인 인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불의 이미지 속에 선명하게 그려 져 있다.

이 소설은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防火)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으로 전형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圖式的)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裏面的) 공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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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이"는 나도향의 초기 경향인 낭만적, 감상적 정신과 "여 이발사" 등에서의 자연주의적 객관적 관찰의 정신이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세계 인식은 현실적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불구자로서의 운명과 하인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가지고 있고 아가씨는 아름다운 외모의 정상인으로써 주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어 그 단절은 확고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 소설의 낭만적 요소는 삼룡이라는 인물의 설정이다. 즉 삼룡이는 비록 불구이고 보잘것없는 인물이나 그의 혼만은 순결하다. 이는 문학사에 있어 불구자, 혹은 백치의 천진성, 충직성과도 연관된다 하겠다. 앞서 말한 신분적 제약과 신체적 불구의 벽은 소설의 결미에 가서 삼룡의 순결한 사랑에 의해서 그 벽을 없애 버린다. 즉 그의 죽음은 현실적인 醜와 고난의 마침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그 찰나에서 작품이 멈춤으로 인해 낭만성은 더욱 고조되는 것이다.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해서 15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자의 존재는 비일상적인 삼룡의 행위와 그가 관련된 소설의 스토리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변형된 액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 부분을 제외한 소설의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적 시점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점 통일의 결여성이지만 이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적인 갈등과 사건의 극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이러한 시점의 혼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삼룡은 입체적 성격의 인물이다. 즉 삼룡에게 있어 주인 아씨는 애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주인의 부당함과 자신의 처지를 일깨우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품의 진행에 다라 점차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각성해 가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방화로 이어진다. 즉 부당한 억압에 대한 복수와 반항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신의 애정을 승화시키는 이중의 의미를 담은 방화이다. 불을 통해 자신을 억압해 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근원적인 결말 처리 방식은 1920년대 중반 신경향파 문학의 한 조류와도 연관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주, 소작의 관계라는 대립적 구성을 기본으로 살인과 방화로 끝을 맺는 이른바 '살인, 방화 소설'이 유행한 바 있는데 이 작품도 결말은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향의 소설은 초기의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에서 후기에 이르면 대상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변모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기법과 정신이 공존하는 나도향의 후기 소설이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벙어리의 운명과 맹목적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입체적인 성격 창조와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개를 통한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 정신과 사실주의적 기법이 종합된 이러한 성취는 '불'이라는 적절한 상징적 장치의 사용과 더불어 이 작품을 나도향의 대표적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防火)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으로 전형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圖式的)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돈과 신분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벙어리 삼룡이란 인물이 상전의 아씨에게 품은 연모의 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반항으로 전환되는 갈등을 겪으면서 이 작품은 파국을 맞는다. 바보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 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 지는 일종의 이면적(裏面的) 공략일 수도 있다.

이 작품 속의 삼룡은 벙어리라는 생리적 결함 외에 옴 두꺼비 같은 모습의 소유자며, 물건으로 존재하는 하인의 신분이다. 이런 삼룡이가 새색시를 연모함은 일견 환상적, 낭만적 행위일지 모르나 새색시에 대한 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생원 아들의 새색시에 대한 억압과 학대는 삼룡에게 동정을 넘어서서 연모의 정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명심보감(明心寶鑑)

[Daum책] 명심보감 http://durl.me/7kdg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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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주 교훈이 좋은 책이다.
뚱딴지가 주인공이 되어서 여러 가지 교훈을 알려 주는 책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한마디 말이 황금보다 귀하다 등등 많은 교훈들이 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를 반성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그 밖에도 군자는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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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 명심보감이 이런 것이구나!
책을 읽고 난 후, 착한 마음 가꾸기, 효도하는 사귐의 지혜 등을 배웠다. 명심보감은 우리에게 항상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다.

'명심' 이란 말은 마음을 맑고 밝게 한다는 뜻이고, '보감'은 말의 본보기가 될 만한 보배로운 것이란 뜻이고, 명심보감은 마음을 맑고 밝게 해 주는 데 본보기가 될 만한 보배로운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처럼 명심보감은 기분을 좋게 하고 마음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착한 마음 가꾸기 외 5가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들도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 반 친구들과 선생님께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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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은 ‘밝히다'라는 뜻의 명과 ‘마음’이라는 뜻의 심과 ‘보물. 보배’라는 뜻의 보와 ‘거울’이라는 뜻의 감 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400년간 사랑을 받아 온 이 책은 여러 인물과 저자들을 통해서 엮어 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 맹자 등의 유가 사상가. 장자, 열자 등의 도가 사상가. 태공, 사마광 등의 정치가 등의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의 금언과 좌우명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것에 인용되는 저작물도 다양하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논어, 사기, 한서, 근사록, 설원, 이견지, 경행록 등의 많은 책들이 발췌 본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잠언과 같이 삶의 교훈을 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효도를 하라, 몸을 바르게 하라, 마음을 보존하라, 예절을 지켜라, 훌륭한 여성이 되어라.. 등 총 25가지에 이르는 교훈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 `몸을 바르게 하라'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 "남의 좋은 모습과 안 좋은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춰 보는 것."
  • "다른 사람의 착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착한 점이 있나 살펴보라.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나쁜 점이 있나 살펴보라. 이렇게 해야 보탬이 된다."  -성리서-
  •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켜 사물을 마주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더라도 덕 있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일을 너그럽게 처리하면 복이 저절로 두터워 진다"

이 글들 외에도 너무나 보탬이 되는 글들이 참 많았다.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글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마음가짐과 훌륭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절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외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욱 깊이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현숙하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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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은 책을 지은 작가가 없는 걸로 알고 그냥 공자가 한말을 엮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책에서는 저자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이었던 秋適(추적)이라고 알려 져 있다. 나도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읽은 명심보감은 빽빽이 글로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림과 같이 있어서 조금 읽기가 지루하진 않았다.

이 책은 제1장 착하게 사는 것. 제2장 효도의 길, 제3장 바른 언행의 길, 제4장 원만한 삶의 길, 제5장 배우며 사는 길, 아주 짧게 요악해서 해 놓은 책인 것 같았다.

제 1장은 말 그대로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하여 나와 있다. 착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런걸 느끼게 해주는 글이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어릴 적에도 많이 듣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많이 들었다. 단지 많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일을 실제로 경험을 해서 더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병원을 갔는데 진찰을 하고 진료비를 냈다. 그런데 거스름돈이 1000원이 더 많은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조금 망설여 졌지만 돈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것. 나는 돈을 돌려주었다.

이런 일을 있고 며칠 후 나는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게 되었는데 먹고 돈을 내려고 하니 옆의 아저씨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1000원을 주면서 ˝너 천원 치 더 먹어라˝하고는 가 버리는 거였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 돌려준 천원이 이 돈일까? ´ 어쩌면 돈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것인 줄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느꼈다. 선을 행하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제1장은 내생각에 죄를 짓지말고 선을 행하며 살자는 뜻인 것 같다. 비록 작은 선일지라도...... 나처럼 저렇게 그 선이 돌아 올지도 모른다.

제2장은 효도의 길이라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말할까?
여기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공자가 말하기를,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있어 기거할 때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하늘이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정성을 다해 공경하고 수시로 효도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효도를 아직 까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내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제3장은 바른 언행의 길 <하루 종일 시비가 있을지라도 이를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이 책은 저 내용 외에 다른 내용도 엄청 많았지만 내가 꼭 알아야 할 것들만 읽고 독후감을 쓴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느꼈고 지금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 지금 난 고등 학생이다. 나의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이 공부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고 한다. 난 이 시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명심보감을 통해 얻은 것 아직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계신 부모님께 효도를 해 야할 것 같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공부를 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간단한 효도이다. 난 명심보감을 읽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웠으며 삶의 안내자를 얻은 기분이다.

5

명심보감의 명심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은 거울같이 비춰 보는 교본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어릴 적에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을 읽어 본 걸로 기억되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내용을 꼽자면 효행 편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 부모님이 부르면 입 안에 있는 것을 즉시 뱉어 내고 대답해야 한다' 같은 내용 정도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엄했던 편이라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이제 대학생이 되어 독서 토론 클럽 덕분에 읽을 기회가 생겨 다시 읽어 보니 어릴 때와는 다른 입체적인 시각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금언집 형식으로 엮어 놓은 책인데 각각 주제에 맞춰 많은 격언과 금언들을 나열해 놓은 형식이다. 물론 이런 격언들이 그렇듯이 대체로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라 입바른 소리로 느껴 질 수도 있고, 격언의 나열 형식이라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소설책 읽듯이 속독해 나가면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글이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거나 혹은 현실에서 겪었던 일에 비춰 볼 만하다고 느껴 지면 여러 번 곱씹어 가면서 탐독하는 방법으로 읽는다면 기억에도 남을 것이고 교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명심보감은 여러 서적과 격언을 엮다 보니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상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령 성심 편을 보면 '배부르고 따사로움 속에서 음탕한 욕심이 생기고, 굶주리고 추운 데서 바른 마음이 싹튼다.'라고 하고, '사람의 의리는 다 빈한 한데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모름지기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같은 내용도 있다. 이러면 독자가 읽으면서 격언의 내용 중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혼란이 생길 것 같다. 물론 검소하고 바르게 살면서 주변의 귀감이 된다면 올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절하게 부를 추구하면서 베풀고 사는 인정을 가지는 것도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명심보감의 내용 대부분이 격언의 나열로 이루어진 책이니 어떤 경우에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라거나 하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이 군데군데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의 복잡 다양한 상황은 말 한 두 마디로 온전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격언을 가지고 그것이 황금률인 양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격언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격언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생각해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낸다면 처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심보감의 가치는 책이 주는 교훈 이상의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서삼경 같이 본격적인 학문을 하고자 할 때 쓰이는 책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가정과 서당에서 읽히고, 격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고 들은 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격언들이 우리네 가정에서 교육에 쓰일 정도로 우리 민족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다. 요컨대 계선 편과 천명 편은 권선 징악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목표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효행 편과 훈자편은 각각 자식과 부모가 부모 자식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도리를 지킬 것인가를 설파하고 있다. 정기 편과 존심편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경구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렇게 명심보감은 사람 개인의 행실을 규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금언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내용들이 수백 년 이상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내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민족 안의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큰 틀을 가지게 한 역할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으나, 명심보감에는 개인과 민족의 가치관 형성 이상의 내용 또한 담겨 있다.

말하자면 명심보감에는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중국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으며 다소 사대주의가 가미되어 있지만 고조선부터 조선 건국에 이르는 우리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또 옛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계절과 열두 달의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도 적혀 있어 시간적인 개념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으며 흥미롭게도 '하늘에는 위성이 있으니 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의 다섯 별이 이것이요, 또 경성이 있으니 각수•향수•저수•방수‥(중략)‥진수의 이십팔 수가 이것이다' 같이 천문학적인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즉, 옛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모습으로 세계를 묘사했는지에 대한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렇게 인간 내적인 면에서 세계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그려 놓았기 때문에 명심보감은 옛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자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이 명심보감을 읽는다면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 젊은이들이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옳다고 여겨 진 가치와 도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보완하여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온 어른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성인과 양서에서 따 온 금언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숙독하다 보면 동양적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어 지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명심보감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책이기 때문에 명심보감이 현대에서도 널리 읽히고 재조명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돈 키호테 - 세르반테스

[Daum책] 돈키호테 http://durl.me/3q2t4

1

이 책은 참 웃기고 재미있는 책이다.

돈키호테의 정신만 나가 버리지 않았더라면 돈키호테도 맘 놓고 라 만차 마을의 귀족 생활을 자유롭게 하였을 것이다.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자기가 기사인 줄 알게 된 라 만차 마을의 귀족 돈키호테는 종자 산초를 데리고 여러 모험을 하다가 은빛 달의 기사와도 싸우고 등등 여러 모험을 하다가 라 만차 마을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아무 죄도 없는데 혼자 죽게 된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 삼손 카르라스코는 파란 만장한 삶을 마친 라 만차의 시골 귀족 돈키호테를 기리는 시를 지어 묘비 문으로 만들었다.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라 만차의 사나이.
고향 들녘에 편히 잠드소서.
죽음의 신도 돈키호테의 영혼을 지우지 못하리.
아아, 맑은 그 영혼을
우리에게 부탁하고 떠나가신 그대여,
그 생애가 영원히 후세에까지 전해 지기를......

2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였다. 책이 두껍고 700페이지 정도나 됐지만 이런 두꺼운 책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읽게 되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기사 계급이 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세 유럽의 어느 한 시골에 몰락해 가는 늙은 귀족인 '돈키호테'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그 소설들의 주인공처럼 기사가 되려고 한다. 자신의 말로는 편력 기사로서 많은 백성들을 도와 주고 악행을 막으려고 한다지만 괜한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등 별 쓸데 없는 일만 한다. 그리고 원래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있던 '산초'라는 농부를 홀려서 자신처럼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종자로서 따라다니게 한다. 겁도 많고 잘 도망치지만 돈키호테보다 현실과 이야기를 더 잘 구분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친구였던 이발사와 신부가 돈키호테가 집을 나가 기사가 되려고 한다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키호테를 도와 주러 가고 돈키호테의 행동을 딱하게 여긴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서 유명한 사람도 만나는 등 많은 일을 겪었지만 결국 열병으로 허무하게 죽게 된다.

이 소설에는 중세 유럽의 시대 배경이나 그 당시 사람들의 계급에 관련된 문화, 그 때 유행했던 소설 등 많은 점을 알게 되었고 약간 지루하지만 괜찮은 소설이었다.

<돈 키호테>1605년 초판 표지

3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해림 방송국에서 온 제시카 기자라고 합니다. 오늘 방랑 기사인 돈키호테님을 인터뷰하러 왔는데요.

산초: 아, 네. 반갑습니다, 기자님. 그런데 저희 주인님께서는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니 제가 대신 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저는 얼마 전에 기사님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계기로 오늘 궁금한 것들이 있어서 직접 여쭤 보러 왔습니다.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산초: 그럼요. 궁금한 것들은 다 물어 봐 주십시오. 성심껏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돈키호테 기사님은 처음에 방랑 기사가 되려고 마음먹으셨습니까?

산초: 아…….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주인님은 기사들의 모험을 그린 소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소설들을 읽으면서 밤을 새기 일쑤였지요. 결국 기사 소설에 매료된 주인님은 방랑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갑옷과 주인님이 만든 투구를 장만하고, 사랑을 바칠 여인을 정했지요. 그리하여 주인님도 소설 속의 기사들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아, 그렇군요.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님은 왜 여관 주인을 성주라고 여겼습니까?

산초:  그 날, 주인님 정식 기사로 임명해 줄 기사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를 못했죠. 날이 저물고 쉴 곳이 필요했어요. 그때 마침 가까운 곳에 여관이 있었습니다. 그 여관은 아주 지극히 평범했지만 주인님께는 아주 그럴듯한 성처럼 보이셨죠. 또 주인님은 돼지 치는 사람이 부는 뿔 피리 소리가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나팔 소리라고 여기고, 여관 앞에 있는 평범한 여인들을 귀족 부인이라 생각하여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기도 하셨죠. 여인들은 주인님의 우스꽝스러운 옷과 말투를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님은 오히려 여관 주인을 성주라고 여기며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리고는 정식 기사로 임명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기도 하셨지요. 주인님께서 이렇게 하신 모든 것은 자신이 방랑 기사가 된 것으로 착각하셨기 때문이죠. 또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기사 소설에서 본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주인님을 따라 나서야 했지요. 주인님은 영원한 제 주인님이니까요.

기자: 정말 기사님에게 충성을 다하시는 군요. 얼마 전 기사님은 길을 가다 만난 수도사 일행을 보고 마법사들이라고 했는데요, 그 때 마차에 탄 여인이 돈키호테 기사님을 보고 겁을 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산초: 아, 그때요? 하하하, 그때 저는 주인님께 수도사는 마차 탄 여인과 우연히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 아무 상관없는 사이라고 말했지만 주인님은 여전히 마법사라며 수도사들을 공격하셨지요. 결국 그들은 기사님의 공격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안 놀랄 사람도 있겠습니까? 여인의 눈에는 기사님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요. 돈키호테 주인님의 행동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요.

기자: 저도 그 내용을 읽을 때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제가 그때 그 여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을 하면서요. 자, 이번에는 산초님께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저번에 기사님이 로시난테를 구하려다가 마부들에게 매를 맞고 노새 등에 업혀서 여관에 들어갔죠? 그 때 왜 여관 주인에게 돈키호테 기사님이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나요?

산초: ……. 주인님은 훌륭하신 방랑기사잖아요. 그런 주인님을 여관 주인에게 얻어맞았다고 하면 방랑기 사인 주인님과 하인인 저의 위치가 매우 난처해 질 거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주인님의 명예에 금이 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지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산초님 같은 하인을 둔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겠네요. 전 산초님의 그 충성심은 세계 최고라고 여길 겁니다. 돈키호테 기사님은 산속에서 만난 카르데니오가 기사님에게 돌멩이를 던졌는데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는데요,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요?

산초: 평소의 주인님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를 잘 알려 드릴게요.  주인님은 산속에서 만난 늙은 양치기한테 카르데니오에 대한 사실을 들으셨어요. 그래서 카르데니오를 찾아가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러나 카르데니오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치고는 갑자기 주인님께 돌멩이를 던졌죠. 그리고 저를 머리로 들이받고 주인님께 주먹질을 하기도 했어요.

전 너무나도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주인님께 혼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도 주인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이 이렇게 행동하신 것은 제가 생각했을 때 카르데니오의 사랑 이야기가 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공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인님께도 그리운 연인인 둘시네아 공주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렇죠,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공감이 가면 감동을 받기 쉽지요. 기사님도 그런 거군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산속에서 고행 중이던 돈키호테 기사님이 이를 그만두고 산속을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산초: 저한테 주인님이 산속에서 고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이발사와 신부는 주인님을 집으로 데려 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죠. 그러던 중에 만난 도로테아를 미코미콘 왕국의 미코미코나 공주로 속이고 그녀를 왕국의 거인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빠져 있으니 도와 달라고 주인님께 요청했습니다. 이발사와 신부의 계획대로 주인님은 도로테아를 돕겠다고 선뜻 나서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떠나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주인님이 이렇게 쉽게 산속을 나왔던 이유는, 어려움에 빠진 공주를 돕는 것을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셨던 정의로운 기사의 의무감 때문이었답니다.

기자: 그렇군요. 이제 제의 인터뷰도 다 끝났으므로 이제 가 봐야겠네요.

산초: 아, 벌써요? 정말 제게는 주인님과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소중하고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된 것 같네요. 여기까지 오셔서 주인님은 뵙고 가셔야 하지 않나요? 아, 저기 나오시네요. 주인님~ 인터뷰하러 오신 기자님이 인터뷰를 마치고 가신 다네요. 우리도 이제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돈키호테: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데 여기서 헤어져야 할 생각을 하니 유감이네요. 그럼 저희는 소중한 모험의 세계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바랍니다.

기자: 네, 두 분의 중요한 모험을 영원히 간직하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돈키호테, 산초: 네. 기자님도 저희 잊지 마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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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내가 외국의 명작 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된 소설이다. 누나가 나에게 추천을 해 주었는데 정말 책 앞의 제목과는 달리 명작 소설 치고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줄거리를 말하자면 옛날 스페인의 라 만차 마을에 한 영감이 살고 있었다. 그 영감을 소개하자면 나이가 곧 쉰이 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조카딸과 하녀가 집안 살림을 맡았고 머슴 한 명이 농사일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는데 그가 읽는 책들은 모두 옛날의 기사 담 이었다. 이렇게 기사 담만 읽던 영감은 책 속의 주인공 기사가 자기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영감은 머리가 이상해 진 뒤로 창고로 가서 조상들이 입던 갑옷을 찾아 내었다.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말에게 로시난테 라는 이름은 붙여 주고는 자신의 이름 역시 '돈키호테'라고 바꾸었다.

돈키호테가 엉뚱해 보이기도 하고 점점 흥미로워 졌다. 돈키호테는 몸과 마음을 바쳐 섬길 만한 예쁜 아가씨를 찾다가 멀지 않은 농가에 살고 있는 농부의 딸 알돈사 로렌소에게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 둘시네아 공주라고 불렀다. 돈키호테는 멀리 작은 여관이 보이자 그곳이 성이라 생각하여 가서 자기를 기사로 임명한다는 기사 임명식을 해 달라고 한다. 그 집 주인은 돈키호테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장난으로 기사 임명식을 해 주었지만 돈키호테는 자기가 기사가 되었다고 우쭐해 하였다. 하지만 나는 돈키호테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기사 담을 너무 많이 읽어 머리가 이상해 졌기 도 하고 또 모든 행동이 기사 담을 읽고 정의감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실행하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해 보기도 전에 안되면 어쩔까 하는 걱정부터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런 나에 비하면 정말 용기 있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나도 내 자신을 정확히 밝히고 용기 있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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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돈키호테라는 노래 제목도 있고 영화도 있다. 그래서 돈키호테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는 않는다. 돈키호테의 의미를 찾아 보니까 돈키호테는 허영 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돈키호테라는 영화는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돈키호테라는 책을 읽어 보는 건 처음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돈 키호테는 에스파냐의 라 만차 지방에서 한 시골 귀족이 가정부, 조카, 하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기사 이야기를 탐독하다가 이성을 잃고, 스스로 방랑의 기사가 되어 모험 길에 나서서, 천하의 사악한 것을 쳐부수어 공을 세우기로 작정을 한 돈키호테가 라 만차, 아라곤, 마지막으로 캬탈루나에로 여행을 하면서 모험을 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인 돈 키호테는 책을 많이 읽어서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자기가 편력 기사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고,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둘네시아 델 토보소라는 여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모험을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내가 읽은 책의 1부에서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을 이야기 해주고 있고 2부에서는 세 번째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일부에서는 알론소 카하노는 한가하고 윤택한 시골 귀족으로 나온다. 그의 취미는 기사 소설을 닥치는 대로 구하여서 읽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그가 읽은 이야기를 사실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가 기사 소설 속에 나오는 편력 기사 중 하나라고 믿게 된다. 결국 그는 새로운 이름을 짖느라고 골머리를 앓는데 결국 그가 지은 이름은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중세의 무기와 복장을 하고서 자신의 상상의 의해 만들어 낸 둘네시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야윈 말 로시난테를 끌고서, 불의를 무찌르고 기사 나름대로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모험을 찾아 세상으로 나간다.

처음 돈 키호테가 기사로서의 여행에서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된 것은 라 만차의 들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주막이다. 돈 키호테는 그곳을 성이라고 상상한다. 그 주막집 주인과 두 명의 하녀들의 조소 속에서 편력 기사가 되는 의식을 거행한다. 그 주막에서 나온 돈 키호테는 길에서 만난 상인들에게 둘네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가 매만 맞고서 길에 찌그러진다. 다행이 같은 마을에 사는 농부가 그를 발견하고 그의 집으로 데려 간다.

돈 키호테의 그러한 광기가 기사 소설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의 조카딸과 그의 가정부, 또 그의 친구, 이발사와 신부는 돈키호테의 서재에 있는 책을 끄집어내어 태워 버린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돈키호테는 집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 책이 나쁜 마법사가 가져갔다는 것을 믿는다. 다음날 돈 키호테는 부와 그리고 권력을 약속하면서 자신의 모험에 같이 동참하도록 시골뜨기 농부 산초 판사를 설득하여 어느 날 새벽 아무도 모르게 두 번째 모험을 하기 위하여 집을 떠난다. 그러나 마침내 모두다 아는 유명한 풍차와의 싸움 장면이 이어진다.

곧 이어서 베네딕트 교회 수도사들과의 모험 및 비스카야 인들과의 모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이 책에서는 완결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잠시 장면이 바뀌게 되는데 계속해서 이 소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랍 인 역사 학자 시데 아메테베넨헬리에 의해서 아랍어로 씌어 진 "라 만차의 돈 키호테 이야기"책을 톨레도의 시장에서 발견하게 된 사건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좀 의아하게 된 것은 왜 이 부분에 이 이야기가 들러갔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선 이야기가 일관성이 끊어지며 처음 에는 이야기도 돈 키호테의 연장인 줄로 착각했었다. 계속해서 앞에서 중단되었던 비스카야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 다음에 양구에스 마을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산초가 주막집에서 담요에 헹가래 질로 시련을 겪고, 돈 키호테가 양떼를 군대라고 착각한 모험 이야기, 다음에 시체와 얽힌 모험 이야기, 노를 젓는 죄수들을 풀어 준 이야기, 둘네니아를 위해서 시에라 모레나 산에서 고행한 이야기 등 가지가지 모험을 벌인 후에 고향의 신부와 이발사가 돈 키호테를 수레 마차로 유인하여 집에까지 데리고 오는 것으로 돈 키호테 이 책의 1부는 막이 내린다.

이 책의2부는 돈 키호테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학자 삼손 카르라스코가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유하기 위해 세 번째 모험을 부추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 번째의 기사 여행도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사건들로 이루어 졌다.

먼저 기사로 변장한 삼손 카르라스코가 의도적으로 돈 키호테와 마주쳐서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이 결투에서는 삼손이 패배하게 되고 돈 키호테는 의기양양하게 여행을 떠난다. 다음에 이어서 사자들과의 모험, 이어서 울음 소리에 얽힌 모험, 아라곤의 땅인 에브로 강에 도착했을 때 마술에 걸린 배에 얽힌 모험, 공작 부부와 만나서 일어난 사건들, 클라빌레에 걸린 배에 얽힌 모험,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이 된 산초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주막집에서 가짜 작품인 돈키호테가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돈키호테는 가짜 작품의 거짓을 폭로하기 위해 목적지를 계획과는 다르게 바르셀로나로 가는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 진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향해 가는 이야기 등이 흥미 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돈 키호테에게 `백월의 기사`라는 호칭으로 위장한 삼손 카르라스코가 다시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결투에서 승리한 삼손 카르라스코는 돈 키호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1년간 편력 기사의 모험을 중지할 것을 강요한다. 상심에 빠진 돈키호테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제정신으로 회복 된 후에 죽어 버린다.

돈 키호테를 1부에서는 돈 키호테는 모든 것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서 사물을 대한다. 그 에게는 풍차는 거인이며 양떼는 군인이고 여관은 성이다. 그러나 2부에 가게 되면 상황은 아주 바뀌고 말고 만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여관은 여관으로, 지신과 산초를 밟는 돼지와 황소의 무리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제 2부에서는 돈 키호테는 1부에서는 상상도 못할 찬미와 존경을 받는다. 돈 키호테는 유명한 인물이 된 것이다. 일부를 읽은 사람들이 그를 찬미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웃음으로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음으로써 정말 대작이란 생각을 했다. 이 글의 주요 인물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인데 이들은 모두 이상주의 와 현실주의를 지향한다. 둘네시아 델 토보소는 돈 키호테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 키호테가 읽은 책의 이야기를 따라서 하다가 어려운 일에 닥치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다. 산초도 원래 착한 사람이지만 약간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나온다. 돈키호테가 총독을 시켜 준다는 말 혹해서 돈 키호테를 주인으로 섬기고 따라다니지만 점점 주인과 닮아 간다. 그러나 산초도 그다지 현실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대중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돈 키호테가 제정신을 찾고서 죽음에 갔을 때도 산초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산초를 이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항상 돈키호테의 행동을 변화 정화하는 기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사실 짧은 시간 내에 읽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게 많았다. 모든 사회에서는 편견이 없어져야지 만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분쟁은 편견에서 비롯 된다고 생각 한다. 항상 그 편견의 틀 안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지만 그 편견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 한다

6

작년 초겨울 어느 밤, 올림픽대로였다. 은근한 주황빛이 살얼음 낀 한강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난 감상적인 분위기에 취해 있었고 그 때 내 귓가엔 노랫가락 구절 하나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야, 돈키호테, 라 만차의 기사!"

힘차게 울려 퍼지는 피날레 곡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던 그 때, 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소설 [돈키호테]을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을 공군 대상으로 할인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예매해서 관람하러 갔던 터였다.

되돌아보면 내가 초등학생 때 처음 돈키호테 이야기를 읽은 뒤로 그는 항상 내 삶의 우상이었다. 기사 소설에 심취해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한 나머지 낡은 창과 삐쩍 마른 말, 충실한 시종을 데리고 정식 기사로서의 모험을 수행하기 위해 홀연히 길을 떠난 돈키호테. 여행길에서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그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굴하지 않고 맞서 나간다. 결국 큰 상처를 입고 마차에 실려 집으로 실려 오지만 그가 길 위에서 보여 준 용기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여태껏 읽었던 여러 문학 작품들 중 내게 이만큼 영향을 끼친 것은 [돈키호테]가 유일무이했다.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대로 실현하고자 달려가는 것이 항상 내 삶의 방식이었다. 돈키호테는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 영웅이자 내가 지칠 때마다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준 조언자 같은 존재였다.

시작은 고등학교 자퇴였다. 일학년 때 마음껏 놀았던 탓에 내 내신 성적은 내가 지망했던 명문대를 가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내신을 떨쳐 내기 위해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다들 말렸었다. 하지만 난 내게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난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한참 대학을 다니다 보니 이번에는 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것도 한국 남성 사이에선 전설 속 존재와도 같은 일본인으로. 그래서 외국인과 교류하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대표도 지내고, 일본인들이 자주 온다는 한국어 학당을 전전했으며 한국에 새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을 마중하러 인천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가기도 했다. 몇 달간 노력한 끝에 난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어릴 적 꿈을 한 번 이뤄 보고 싶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환경 운동가였기에 각종 야생 동물로 유명하고, 또 원시적 자연이 보존된 대지의 크기가 한반도 절반에 달하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는 것은 일생의 꿈이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옐로스톤 공원의 바로 근처 학교로 갈 수 있었고 시간이 될 때마다 난 공원에 가서 늑대와 사슴을 관찰하며 지냈다.

그렇다고 가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공인 경제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안목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게 된 나는 귀국한 뒤에 단신으로 동남 아시아 배낭 여행에 뛰어들기도 했다. 신흥 시장을 탐방하고 세계 경제의 미래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언급할 수 없는 수많은 모험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난 세상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항상 내 삶의 목적을 더 중요시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모해 보이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즐기는 것이었다.

보통 그렇듯이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처절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지금도 생생한 악몽이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새벽, 넘쳐 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터바이크를 몰아 대던 난 학교 캠퍼스를 고속으로 빠져 나오다가 굳게 닫힌 철문에 정면으로 들이박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그 사고로 난 몇 달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으며 심각한 전신 부상과 상당한 후유증이 남았다. 내게 있어 그 철문은 뭐랄까, 돈키호테의 풍차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자아 도취로 충만했던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문이 닫혀 있으리라고 예상했으면서도 자만심에 똘똘 뭉친 나는 무의식 중에 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작중에서도 기사 소설을 읽고 간접적으로 자아 도취에 빠진 돈키호테는 여행 초반기 자신의 눈앞에 놓인 풍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찔러야 할 거인으로 착각해 뛰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게 되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원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 때, 그 사고는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는 무한한 추진력과 자신에 대한 굳은 신뢰로 모험적 삶을 살아간 인물이었다. 내가 실제로 미친 기사로 유람을 나선다면 곤란한 일이겠지만 삶에 대한 그의 자세만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삶에서 용기와 낭만성을 간직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돈키호테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한 번의 사고는 날 낙담시키기에 충분치 않았다.

병원에 누운 채 난 돈키호테를 다시 한 번 읽고 있었다. 2편의 말미에서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임종의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아직도 주인을 따르고 그의 말을 믿는 산초는 이렇게 그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주인님, 죽으면 안 돼요. 저의 조언을 들으세요. 그리고 오래 사셔야 해요.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하는 가장 큰 광기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거예요." 결국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 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예전보다 조금은 겸손해 진,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로 새 세상을 맞이했다.

초판이 발간된 지 어언 400년이 흘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 돈키호테의 해석은 점점 풍부해 지고 그에 따라 가치도 올라갔다.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교훈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세르반테스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 받게 되었다. 돈키호테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요새 유행하는 힐링의 원조 격인 셈이었다.

시대의 엄중함 때문에 정상인이 아닌 광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했고 그나마도 다른 작가의 글을 번역한 마냥 글을 써야 했던 세르반테스. 그리고 종교의 광기, 남녀간 자유로운 사랑의 억압, 세습 제도, 부당한 재판 등 사회의 부조리를 목도하고서 그걸 풍자했던 세르반테스의 위대한 주인공, 돈키호테.

이상주의의 상징인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인 산초 판사 두 주인공이 합동으로 이루어 내는 유쾌한 모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키호테를 통해 어린이들은 만화적 재미를 찾을 것이고, 10대들은 자신이 앞으로 진출하게 될 사회의 창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며 성인들은 굴곡의 연속인 삶에서 자신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내 나이 스물 넷. 나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적인 자세는 아직 무르지 않았다. 제대 뒤에 난 1년 동안의 유라시아 대륙 일주를 계획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 볼 예정이다. 그 때의 나는 2년만에 다시 읽은 돈키호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한 사람이 꾸는 꿈이 결국에는 허무하게 끝나 버릴지라도, 난 그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울인 삶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시 한 구절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을 함께 인용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나의 달콤한 희망이여,
불가능과 잡초를 헤쳐 나아가며
그대가 만들어 놓고 이끄는 그 여정을
강건히 가고 있네.
그대가 죽음과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게으른 자들은 명예로운 승리라도 어떠한 호박도 얻지 못하고,
행복해 질 수 없다네.
운명에 대항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온화한 게으름에 넘겨주는 자들이라네.
사랑이 그 영광을 비싸게 파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며 정당한 일이라네.
기호에 따라 감정하는 보석보다
더 비싼 것은 없으니.
싸게 주고 산 물건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확연한 일이어라.
아마도 사랑의 집념은 불가능한 일을 해낼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나의 집념으로 역경을 헤치며 사랑을 계속하리라.
그리고 나는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노래 중)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가자! 갈 수 없더라도. 이 몸! 지쳐 쓰러져도. 모든 악을 물리쳐서,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세상 품격 높이는 것.
이게 내 길! 그 꿈을 따라, 쓰러지더라도 굴하지 말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싸우자. 하늘의 뜻이라면 지옥엔 못 가랴!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이 한 몸 조롱 받더라도.
싸우리! 끝까지 용감하게. 가자! 저 별을 향하여.
(뮤지컬 주제곡 '이룰 수 없는 꿈')

2014년 10월 3일 금요일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쉘 실버스타인 (2)

[Daum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 http://durl.me/3oh65

1

아낌 없이 주는 나무는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한 소년의 사랑/우정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는 책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무의 행동에 큰 감동을 받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나무와 소년 모두의 잘못에 대한 내용을 이 독후감에 담으려 한다.

먼저 소년이다. 소년은 나무에게 뭐든지 얻는다.

나무의 잎/나무의 열매/나무의 줄기.. 나무의 모든 것을 모두 가져간다. 여러분도 느끼다 싶이 소년은 엄청난 이기주의자이다. 자신의 이득만 얻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은혜라도 갚으면 모른다. 하지만 이 소년은 가져가고 가져가고 또 가져가고......주는 것이 없다. 이런 소년은 결코 바람직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나무이다. 나무는 소년에게 뭐든 주려 한다.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무조건 주고도 아쉬운 줄 모른다. 뭐든지 다 주고 다 주고 더 줘도 모자란 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사랑 앞에 다 내려 놓아 버린다.

자신이 아무리 처참해 지고 무너져 버려도 사랑을 잃지 못하고 뭐든 다 내놓는 이 나무가 과연 현명한가!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 너무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한다면 사람들끼리의 관계는 결코 진실하고 공평한 관계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2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말 배워야 할 교훈을 배웠다. 책 속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 남자를 위해 말 그대로 아낌없이 다 주었다. 나무는 그 남자를 위해 몸소 희생을 하며 그에게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아마 사람이었으면 간, 쓸개까지 아마 다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세상은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점차 줄어드는 것만 같아, 참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제는 무안 백련 축제에 갔었다. 가족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두 다리가 없는 채로 나무판자에 바퀴를 단것을 밀고 다니며 구걸하는 모습을 봤다. 어느덧 그 아저씨가 내 옆쪽까지 왔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며 외면을 하였다. 내 주머니에는 돈이 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줄 수가 없었다. 왜 줄 수 없었을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시선을 외면하며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그 아저씨를 지나고 몇 분 뒤에도 다른 아저씨가 오자 이번에도 외면을 하고야 말았다. 그 아저씨 바구니에는 천 원짜리 몇 장과 오천 원짜리 밖에 없었다. 이처럼 요즘 세상은 정이라는 게 많이 없어졌다는 것을 몸소 체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나무처럼 되지는 못하는데, 나무의 도움만 받는 그 남자가 돼 가는지......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정이 철철 넘치는 그런 따뜻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변해 버렸다. 나눠 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이용하고 부려먹는 게 쇄도하고 있다. 이렇게 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을 보면 정말 화까지 날 것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현실에서는 잘려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많긴 많은가 보다. 나도 내 마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심을 것이다. 그래서 이용하지만 말고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베풀고 사랑한다면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가 마침내는 모든 사람들이 못 베풀고는 못 사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책이었다.

3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한 소년이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 먹고 피곤하면 나무 그늘에서 단잠도 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동안 소년은 나무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소년이 청년이 되어 돈이 필요하다며 나무를 찾아 왔다. 나무는 “내겐 돈이 없어 하지만 내 사과를 따다가 도화지에서 팔아 그러면 너는 돈이 생겨 행복해 질 거야“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사과를 따서는 가지고 가 버렸다.

나무는 행복했다. 그런데 그 뒤로 소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나무는 너무 슬펐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돌아왔다. 집이 필요하다며 집 한 채만 마련해 달라고 말이다.
나무는 내 가지들을 베어다가 집을 지으라고 했다. 그러자 소년은 나무 가지들을 베어서는 집을 지으려고 가지고 갔다. 그 뒤로 소년은 또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소년은 청년이 되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쓸 돈이 필요했다. 나무에게 찾아 왔다. 그러자 나무는 자기 줄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라고 했다. 청년은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나 버렸다.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청년은 노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나무는 노인에게 줄 것이 없어 미안해 했다. 하지만 이젠 노인도 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편안히 앉아서 쉴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밑동밖에 남아 있지 않은 몸을 펴면서 노인에게 와서 쉬라고 했다. 노인은 그렇게 했고 나무는 행복해 했다. 나무는 노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것만 보아도 나무는 노인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나무에게 찾아와 나무의 모든 것은 가져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밑동 마저 의자로 사용했지만,

노인은 나무에게 받기만 했을 뿐 주지는 않았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소년처럼 받기만 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4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내 어린 시절 읽었던 추억의 책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몇 년이란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 지금, 책장에 끼워 져 있는 책 한 권을 뽑았을 때, 나는 이 나무와 소년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이 정신 나간 나무는 소년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사랑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리고 소년과 나무가 함께 늙어 가고 하나 하나 잃어 가는 것을 지켜 보며, 조금 서글프지만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의 운명을 보았다.

나무가 소년에게 베푼 이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표현하고 싶다. 약간 바보 같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살아간, 아주 사랑다운 사랑을 한 나무이지만, 정작 남을 사랑할 줄은 알아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는 조금 서투른 것 같다. 정말로 소년을 사랑해서 그 사람만 행복하다면 한평생 더는 바랄 것이 없다는 천사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방금 말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이라 연관시키기 쉽다. 정말 내가 자식을 낳아도 그렇게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무조건으로 사랑하는 것.
그러나 너무 받기만 하면 줄 주는 모르는 사람으로 클 것만 같다. 소년은 받을 줄만 알지 줄 주는 모르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자신이 받은 그대로 베풀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이 나무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비추어 나무를 부모의 은혜와 동등하다 한다면, 엄청난 은혜를 공짜로 넘겨 버린 것이 아닌가? -_-;;

사랑해서 모든 것을 주었다. 조금 허무하고 슬픈 것 같다. 나는 내 자식에게도 그렇게나 많은 사랑은 주지 못할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10:0으로 모든 것을 줄 만큼 맘이 넉넉지 못한가 보다.

아무리 무조건적이고 바보 같은 사랑이어도 사랑은 주는 만큼 받는 것이라고 느낀다. 나무는 소년을 사랑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서 행복해 했기 때문에 주면 줄 수록 행복해 지는 것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베풀어서 자식이 잘되면 잘 될 수록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새삼 느낀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점점 더 잘 된다면 나의 엄마와 아빠도 그만큼 행복해 지는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 진다.

왜 슬퍼 지냐고 묻는다면.. 미안함과 슬퍼 진다는 말 그대로의 서글픔이다. 내가 소년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준 만큼 받는다는 섭리를 깨뜨린 죄책감인가? 역으로 하면 받은 만큼 준다는 뜻이니, 지금 내가 섭리를 깨뜨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갚으려 해도 못 갚는다는 부모님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지만.. 굉장히 죄책감이 드는 이 느낌은..;;

나는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이 사랑과 이별과 증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랑이란 정말 진실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요 증오는 정말 뼛속 깊이 증오하는 것을 말한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갑자기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책이 생각난다-_-)

사랑하고 싶다. 그 어려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진정으로 부모님이 날 사랑하는 만큼 나도 진짜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려 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0:0의 사랑을 해보고 싶다. 정말로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단 거다. 쉬운 거 말고..

말로써 엄마 사랑해.. 라고 하기보다 뼛속 깊이 너무 사랑해서 사랑한단 말도 쉽게 안 나오고 드리기만 하는 사랑을 해 드리고 싶다. 15년이란 긴 세월을 나라는 영혼에게 사랑 주며 살아온 두 분에게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주고 싶다. 그렇게 큰 사랑을 해줄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사랑하고 싶다..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랑을 드리고 싶다.

5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정말 짧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가져온 책이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이 책을 맨 처음에 읽은 것은 중학교 때였다. 왜 나무는 그 아이를 위해 희생하였고, 그 아이는 왜 나무를 배신하였을까? 난 아이가 나무의 곁을 떠난 것이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중에 늙어 버린 아이와 나무가 함께라는 것을 보고 안심했었다.
그땐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무는 아이에게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줬다. 아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고 중년이 노인이 돼서까지......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도 나무는 행복해 했다. 왜 나무는 행복해 했을까? 현실에서도 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림 책에서도 그랬듯이 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어도 행복해 했다. 혹시 나무는 인류에게 있어 어머니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득, 쓰면서 느낀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절대적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웅대함은 나약한 인간과 동등할 수 없다. 내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이들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된 인간이 과연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나는 갑자기 테레사 수녀가 떠올랐다. 테레사 수녀......

나는 그녀와 같은 세기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영광이다. 그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나무 같은 존재이다. 틀림없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행복한 아주 친절한 나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르다.

과연 이 냉담한 현실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박수 쳐 줄 것인가? 모두들 비웃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데 보니,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사회에서 살아 남느냐가 하는 문제이다. 나 역시 그 속에 주민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무가 존재 할 수 있는 것은 다정한 책 속에 주민들과 가족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