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9일 수요일

홍길동전(洪吉童傳) - 허균

[Daum책] 홍길동전 http://durl.me/xiph

1

'홍길동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는 홍길동이 이 말을 할 때 참 감동적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이를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홍길동은 참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참고 열심히 살아갔다.  홍 판서의 아내가 홍길동을 죽이라고 시켜서 홍기롱은 홍 판서와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구해 주고 가난한 백성들도 도와 주며 살았다. 그래서 왕이 되어 잘 나라를 이끌다가 이제 자신의 첫 번째 아들 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음 2년 뒤에 홍길동은 결국 죽고 말았다.

나도 커서 홍길동 같이 나라를 위해 큰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

내가 방학 동안에 홍길동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살아온 줄거리를 책으로 나타낸 것이다. 길동이는 어렸을 때부터 양반집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게 너무 슬펐다. 길동이는 어렸을 때부터 무술과 학문이 뛰어나 밤에는 수련도 하였다.

길동이는 어머니께 이제 저는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겠다고 하고 집을 나갔다. 어느 산을 걷고 있는데 왠 산적의 소굴이 나타나 들어가 보았다. 무술과 힘도 세기 때문에 산적들은 길동이를 두목으로 모셨다. 길동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나쁜 관리들의 제물을 빼앗아 불쌍한 서민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서민들은 길동이를 의적이라고 불렀다. 길동이는 스승을 만나 여러 가지 도술도 배웠다. 인상적인 장면은 길동이가 암행어사 출두요 한 것이다. 이 책을 친구들이 한번씩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길동이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은 좋은 것이 아니다.

나 같으면 서민들의 일을 돕고 재물을 빼앗으려는 관리에게서 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착하게 살자.


3

홍길동전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잇고 친숙하던 소설 이다.

중1 1학기 국어 책에서 홍길동전이 나와서 다시 한번 재미있게 읽어 봤었다.

홍길동전이 우리나라 최초에 한글 소설이면서도 매우 흥미롭고 오늘날 나오는 소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홍길동전을 독후감으로 쓰면서 길동이가 느낀 적서 차별, 사회의 대한 비판 등 어려서부터 검술과 글공부에 뛰어 났으나 적서 차별로 인해 크게 갈등을 느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호부호형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보는 소재다.

결국 길동은 집을 떠나서 활빈당을 만들고 탐관오리들을 벌하고 결국에는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고전적이지만 많은 생각과 재미를 주는 소설이었다......

4

이 책은 신분제도와 적서 차별 제도 때문에 집을 떠나 의적단의 두목이 돼서 나쁜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는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총명했던 홍길동은 홍 판서가 용을 구해 주는 꿈을 꾸고 낳은 아이다. 그러나 종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호부 호형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이 서러워하였다.

그러나 홍 판서가 길동을 귀여워하고 예뻐 했는데 그것 때문에 곡산댁이 길동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자객을 시켜 죽이려 했지만 그 자객은 길동의 무술 앞에 무릎을 꿇고 홍 판서에게 길동이 크면 반역을 꾀할 자라고 말한 무당도 죽였다. 그리고 홍 판서에게 한번만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 달라고 하고 집을 떠난다.

금강산에 들어가려고 어떤 아이(마숙)에게 길을 물었는데 마숙이 힘내기를 하여 이기면 길을 알려 준다 했다. 결국 길동이 이기자 마숙은 길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산신령에게 무술과 학문을 배우고 산을 내려 오는 도중, 도적떼를 만나서 도적을 전부 패 주었다. 그래서 도적 대장에게 가 봤더니 마숙이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숙은 부모님을 잘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원님이 돈을 바치라며 마숙의 부모님을 매우 쳐서 돌아가시게 했다. 마숙은 도적떼의 두목이 되어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홍길동은 그 도적떼의 두목이 되었고 마숙은 부두목이 되었다. 그 의적단의 이름은 ‘활빈당’ 이다. 활빈당이 탐관오리들을 때려잡고 빼앗은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 활빈당이 이렇게 활약을 하자 임금의 귀에도 들렸다. 임금은 홍길동의 아버지를 잡고 안 오면 쳐죽이겠다고 전국에 방을 올렸다.

효성이 지극한 길동은 결국 잡혔다. 길동은 풀려 난 후 율도국 이라는 신분 차별이 없는 나라를 세웠다. 나는 홍길동이 신분 때문에 한이 많았겠다고 생각했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다니......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길동전 첫 쪽

5

홍길동은 홍판서의 아들이고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홍길동은 첩의 아들이라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질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홍길동은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길동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와서 방랑의 길에 올랐다. 그러다가 한곳에 이르니,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집은 없고 큰 바위 밑에 돌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홍길동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많은 집이 즐비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홍길동을 맞이 하였고 홍길동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홍길동은 자신과 그들을 '활빈당'이라고 칭하고, 말 그대로 나쁜 관리들의 재물은 약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한편 그 일이 임금님의 귀에 까지 들어가 홍 판서와 홍길동의 형 인형이가 임금님에게 잡혀 갔다. 홍 판서는 의금부 감옥에 갇히고 인형은 홍길동을 잡아야 한다고 명을 받았다. 홍길동은 짚으로 8명의 인형을 만들어 주문을 외우며 혼백을 불어 넣었다. 그리하여 8명의 홍길동이 나타나 각자 다른 곳에 가서 나쁜 관리들을 벌을 주었다. 8명의 홍길동은 임금님에게 잡혀 갔고, 가짜 홍길동들은 다시 짚으로 변해 임금님은 다시 홍길동을 잡아 오라고 했습니다.

홍길동이 임금님 앞에서 절을 하고 아뢰었습니다. "이제 평생의 한을 풀고 조선을 떠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임금님께서는 만수무강을 누리시옵소서."하고 말한 뒤 홍길동의 몸은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홍길동은 활빈당을 데리고 어느 섬에 들어가 율도국을 세우고 길동은 왕위에 오른 지 삼십 년 만에 태평 성대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니, 그 때 나이 칠십이 세였다

6

나는 방학 숙제를 위해 1월 27일 오전 11시 28분에 금강대 캠프 후 어디 있는지 모르는 가방을 찾고 묵은 방학 숙제 종이를 꺼내면서 홍길동전이라는 책을 독후감 쓰기로 마음먹고 홍길동전의 줄거리를 인터넷에 쳐 보았다.

책을 읽지 않아서 이야기도 모르고 책 읽기엔 늦었다 생각하여 인터넷이라는 친절한 선생님을 보면서 쓰겠습니다. 나는 방학 숙제 때문에 사이버 홍길동전.txt를 읽게 되었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서의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친구다.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지 못해 홍길동은 신분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집을 떠나 의적이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홍길동은 탐관오리들의 재산들을 훔쳐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

나는 홍길동의 행동을 보면서 홍길동의 용감함과 남을 도와 주는 선한 행동을 보고 홍길동이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병조판서가 된 후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란 나라를 쳐들어가 왕이 되고 자식을 낳고 나라를 번성시키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라는 이야기이다.

난 홍길동이라서 전우치 생각을 좀 했지만 그 이야기랑은 좀 먼 거 같다.

홍길동이 날아다니고 장풍 쏘고 요상한 기술을 쓰는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와서 좀 아쉽다. 사이버 홍길동전이라서 찾기 힘들 줄 알았는데 지식인에 널려서 참 좋았다. 지식인에는 홍길동전 감상문도 친절하게 올려 져 있었다.


7

'홍길동은 영웅인가'

홍길동, 한국인 중에 그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홍길동은 조선 시대 적서 차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허균에 의해 소설 주인공으로 재 탄생한 실존 인물이다. 그는 가렴주구한 관리의 보물을 빼앗아서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의적이라 불렸고, 영웅이라 칭송 받았다. 그러나 과연 그의 행동은 영웅이라 불리만큼 의로웠을까?

홍길동이 백성을 위하여 악질적인 관리들의 재물을 뺏어다 도와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백성을 위해서라지만 그는 우리 민족이 전통 가치관에 위배되는 행동인 도둑질을 하였다. 고조선 8조법 중에는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 단, 노비를 면하고자 할 때는 50만 전의 돈을 내야 한다.'라는 법이 남아 있고, 당시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구 대전에서는 가장 첫 번째로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홍길동은 이를 행하였으므로 영웅답지 못하다.

홍길동은 도적질을 해서 임금에게 불충하였다. 그는 가난한 백성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었지만, 가난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임금은 계속되는 홍길동을 잡아 달라는 상소문 때문에 더욱 괴로워했으며, 그를 잡는데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더더욱 골머리를 앓았다.

도한 홍길동의 아버지는 그가 떠나갈 때에 '죄를 지어 아버지와 형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만은 삼가거라' 라고 하였으나, 홍길동은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도적질을 하였고,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가 옥에 잡혀 들어갔으니 불효를 저질렀다 할 수 있다.

또한 자식 된 도리로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어야 하는데, 홍길동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홍길동은 결코 영웅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홍길동은 백성을 위하여 도적질을 하였으나 도적질을 하며 저지른 도둑질과 임금을 향한 불충, 아버지께 대한 불효는 결코 영웅답지 않다. 따라서 홍길동은 영웅이 아니다.

8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이리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나는 처음엔 숙제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듯 했다.

'호부호형'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홍길동전은 유명하고 그 가치 또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했던 홍길동의 마음, 지금의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홍길동은 홍판서의 자식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홍판서의 첩의 자식이다. 하여 홍길동은 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감히 높은 신분의 형과 아버지를 편히 부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뼈저리게 느껴 왔던 신분의 벽...... 얼마나 구슬펐던가! 그리하여 홍길동은 집을 나와 도적단의 두목이 된다.

그리고 신출귀몰한 존재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친다 이에 왕은 홍 판서로 하여금 홍길동을 회유하고 형인 인형도 가세하여 홍길동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하고 병조판서 벼슬을 제수하기로 한다. 스스로 임금 앞에 나선 길동은 자신의 한을 풀어 준 임금의 천은에 감사하며 공중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홍길동은 후에 율도국이란 나라에서 이상국을 건설하고 백성들에게 안락한 삶을 선사하였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 가장 중심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길동의 마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분의 차이를 죽고 싶을 만큼 실감해 왔던 신분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그 시련의 벽을 딛고 넘어서 율도국이라는 이상 국가를 실현한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던가.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홍길동의 삶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결국 최고에 이른다. 나는 이러한 홍길동을 본받아 항상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비록 지금은 남들보다 떨어진다 하여도 나는 인일기백하여 뜻을 이룰 것이다

9

나는 얼마 전 고전 독후감 숙제 때문에 홍길동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읽은 책 홍길동전은 매우 특별한 책이었다. 나는 고전 소설은 모두 그렇고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홍길동전에서의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그와 같은 처지이다. 천출은 호부호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길동이 설움과 적자와 서자의 차별 없는 국가를 세우겠다는 다짐에 집을 떠나 의적이 된 야기가 되었다. 길동은 탐관오리들이 부정당한 방법으로 갈취해 낸 재산들을 빼내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

길동의 이렇듯 악의 없는 뜻은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천출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불굴의 의지 하나로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길동을 보며 아무리 지금의 환경이 내 뜻대로 따라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환경을 환경일 뿐 내가 노력하면 그 뜻은 분명히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길동은 형님과 아버지의 부름에 병조판서를 시켜 준다 하면 조선을 떠나겠다 하여 병조판서가 된 후 조선을 떠나 산천이 깨끗하고 인물이 번성한 '율도국'이란 나라를 쳐들어가 왕이 되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자식을 낳고 나라를 번성시키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읽은 책 홍길동전에는 옛날의 적서 차별 제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적서 차별은 오늘날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부자들은 자기의 재능을 찾아내서 잘 먹고 잘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아직 자기의 재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에 굶주리며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하면 되고 노력하려 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렇다고 해서 꼭 공평한 것 만은 아니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도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많다면 자기 자신을 자만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본다.

그래서 홍길동도 자신의 노력으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면 그 것은 자신이 진심으로 노력한 것이 아닐 것 같다. 무언가 하고 싶고 되고 싶어서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되지 않는 것은 없을 거라고 난 믿는다. 그런데 홍길동이 도둑질을 하고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을 죽인 것이 노력에 속하느냐?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홍길동이 자기 자신뿐만 아닌 모든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이 진심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이러한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은 것이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온다면 나도 또 내 친구들에게도 소개 해주고 싶다.

10

조선 세종 때 홍 판서는 명문 거족으로, 정실 부인 유 씨와 아들 인형이 있었다. 어느 날 청룡의 꿈을 꾸고 부인과 동침하려 하였으나 비루하다는 핀잔을 듣고 돌아 와서는 시중드는 춘섬과 정을 통해 길동을 얻는다.

길동은 대단히 총명하나 서자 출신으로 인해 호부 호형을 못해 슬퍼하는데, 아버지가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니 어쩌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말하여 가출하려 하나 그것도 어렵다. 어느 날 홍 판서의 첩인 초란이 길동을 모함하여, 무녀를 초대하여 점을 치니 길동이 반역을 하리라 예언하게 한다. 이에 초란이 정실 유 씨와 의논하여 길동을 죽이려 자객 특재를 보내나, 길동이 도술로 물리치고 특재를 죽인 뒤 공에게 하직 인사를 하니, 이 때 공이 호부 호형을 허락한다. 길동이 떠난 뒤 공은 사실을 밝혀 초란을 죽인다.

길동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천 근 되는 돌을 들어 두목이 되고는 도적을 훈련시킨다. 공부하는 선비로 가장하여 해인사를 습격하여 재물을 털어 오는 등, 활빈당의 행세를 하여 탐관오리를 죽이고 재물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니, 조정에서는 현상금을 걸고 잡으려 나선다. 조정에서는 길동의 아버지와 형 인형을 인질로 잡아 두게 된다. 길동이 자기를 병조판서에 봉하면 자수하리라 하여 나라에서 병조판서에 임명하여 주니, 자수하여 임금 앞에서 이제 조선을 떠난다고 하고는 중국 남경으로 떠난다.

오봉산에서 일행을 훈련시키고 망탕산에서 약초를 캐던 중, 울동이란 짐승이 요괴가 되어 여자를 훔치는 것을 알게 되는데, 길동이 백 룡과 조 철의 두 딸을 구해 주고는 그들과 결혼한다. 성진으로 점을 보아 부친이 위독함을 알고 조선으로 건너가, 적서 차별 없이 어머니를 모셔 주기를 당부하는 아버지의 운명을 지켜 본다. 이에 길동이 어머니 춘란과 형 인형을 모시고 중국에 건너와, 산에 부친의 시신을 단장하게 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려 보낸다.

율도국을 쳐서 항복 받고 스스로 왕이 되며, 어머니와 인형을 모시고 잔치하는데, 유 씨 부인이 죽는다. 이어 율도 왕 길동의 친어머니 대비도 죽고, 길동도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다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나, 나라는 계속 태평을 누린다.

느낀 점: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벼슬을 얻지 못하였음이 한이었던지 임금에게 병조판서를 요구 하는 것을 보고 그것만 보더라도 차별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나 그 한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11

가족과 함께 경포대로 피서를 갔었다. 바닷가였지만, 유적지 관광을 워낙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인지라 그 근처를 돌아 보게 되었다. '소리 박물관', '오죽헌, '야생화 생산지' 그리고 '허균의 생가'…… 그때서야 난 깨달았다. '아...... 나에게 홍길동전 독후감 숙제가 있었지!'

마침 언니가 선물해 준 문화상품권이 있었고, 난 휴가 중임에도 강릉 시내까지 나가서 홍길동전을 사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피서지에서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말이다.)

홍길동전. 어렸을 때 한국 동화 전집이니 고전 동화 전집이니 하는 책에서 한 번쯤 봤음 직한 책이다. 그리고 만화영화나 드라마로도 수없이 제작되었을 정도로 사람들이 끊임 없는 관심을 갖고 있는 책이다. 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까? 아무리 바꿔 만든다고 해도 다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를 뭐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것일까? 나는 그 관심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휴가 기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내 나름의 글을 써 보았다.

홍길동전이 오래 전에 지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살고 있는 지금은 홍길동전이 지어 졌을 때 보다 강산이 변해도 수십 번이 변했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은 어머니가 노비라 하여 신분적인 멸시를 받는 세상도 아니요, 서자라 하여 호부호형 하지 못하는 세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은행이나 우체국의 견본 서류에 등장할 만큼 우리가 홍길동을 친숙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대표하는 이름이 될 만큼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에 IMF가 터졌을 때였다. 감봉이니, 물가 상승이니 하는 얘기로 한참 시끄러울 때, 소위 말하는 강남의 부유층들은 하룻밤에 몇 백만 원씩 하는 돈을 유흥비로 날린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흥! 부모 잘 만난 놈은 흥청망청 이구만!'.

홍길동이 몇 백 년 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홍길동이 우리 모두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홍길동처럼 총명하지는 않지만, 서자로 태어났다는 점과 호부호형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서자라는 점, 이것은 완벽하지 못한 출생에서 갖게 되는 우리의 억눌림의 표상이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 태어났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더 나은 집의 자식'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출생에 대한 뒤처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늘 존재하는, 내가 따라 잡을 수 없는 '나 보다 더 나은 놈'에 대한 억눌림이다.

호부호형 하지 못한다는 점, 이는 기본적인 욕망도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의 상징이다 (이 욕망은 본능적인 영역이 아니라, 아주 비싼 옷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거나, 정말 신나게 놀아 보고 싶은데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는 등의 현실적 제약에 부딪치는 욕망을 말한다.) 언제나 있는, 하고 싶은 것의 제약의 실현이다.

이 책에서 홍길동은 서자로써 받는 차별과 멸시 때문에 집을 나서고 율도국을 세운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율도국을 부유하게 만든다. 율도국을 세운다는 점과 그 율도국이 이상 세계라는 점 또한 우리가 홍길동전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누구나 현실을 탈출 하고픈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가출이 될 수도 있고, 하룻밤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나이트 속 한바탕 춤 잔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든지 우리는 현실을 이탈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이라는 그네에 매달려 더 멀리 가고 적게 갈 뿐,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홍길동은 아니다. 그네를 단호하게 끊고도 몸만으로 하늘을 날았다. 그가 가진 거라고는 '몸' 하나였지만, 그는 성공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 탈출의 꿈이 길 동을 통해 대리 실현된다. 이 또한 우리가 홍길동전을 즐기는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율도국이 꿈의 나라라는 점이다. 우리는 늘 우리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불행한 현실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살기를 꿈꾼다. 영어 공부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만 갖다 놔 보라고 해! 누구 보다 잘 할 테니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욕망도 홍길동전에서는 실현된다. 우리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것들이 홍길동전을 통해서 실현되고, 우리는 거기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변한다고 하여도, 언제나 우리는 더 나은 것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것은 욕망이 아닌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서 그것들을 실현 할 수 있다. 예술이 주는 대리 만족, 이것을 홍길동전에서도 할 수 있다. 이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홍길동전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창조 될 것이며, 앞으로 태어날 수 많은 아이들이 가슴에 담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늘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네 속에도 그런 욕망이 잠자고 있니?

너도 의식 중에서, 아니면 무의식 중에서 그 욕망들을 실현하니?'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은 모르겠다. 독후감을 끝마칠 때 마다 등장하는 글귀가 있다. <왠지 모를 이끌림>. 너무 식상했지만, 나의 짧은 글 재주 가지고는 이 이상의 말을 쓸 수가 없다. <왠지 모를 이끌림>에 나 또한 영원히 끌려갈 것이다.